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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상륙한 그린뉴딜, 이제 출발점이다

[녹색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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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린뉴딜 같은 국가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은 해외 사례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한국에서도 그린뉴딜 논의가 본격화했다. 정의당은 지난 2월 12일 ‘그린뉴딜로 한국사회 대전환을 이루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대표 기자회견을 통해 그린뉴딜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다음날 녹색당도 총선 1호 공약으로 ‘기후위기 막고 삶을 지키는, 그린 뉴딜’이라는 제목의 그린뉴딜 공약을 공개했다. (민주당도 선거대책본부 안에 그린뉴딜위원회를 설치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그린뉴딜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기후위기가 비상사태에 준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와 100% 재생 에너지를 목표로 삼는다. 국가의 적극적 투자 및 정책집행을 통한 재생 에너지로의 재편과 녹색 일자리 창출 외에도 주거, 교통, 노동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약속한다.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도 주요 의제로 설정됐다.

반면 두 당의 그린뉴딜 공약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가장 큰 차이는 국가정책으로서 그린뉴딜의 지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다. 정의당의 그린뉴딜은 탈탄소 녹색산업으로 이동하는 세계 경제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경제전략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3대 전략으로 △회색경제에서 녹색경제로의 획기적 방향 전환 △혁신가형 국가로 국가 역할 혁신 △동아시아 그린동맹 구축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2030년 전기자동차 1,000만대 시대’나 ‘200만호 그린 리모델링’ 등의 공약도 볼 수 있다.

반면 녹색당은 ‘기후위기 비상체제로의 국정목표 전환’ 등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전략에 그린뉴딜이 위치해 있다. 아울러 2030년 탈핵, 전환기 기본소득, 3주택 소유금지, 대중교통 완전공영제, 순환경제 등 그린뉴딜을 통해 만들어낼 미래사회의 포괄적 비전이라는 측면에서 더 강한 면모를 보인다.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정의당과 이상의 정치를 추구하는 녹색당의 색깔 차이가 잘 확인되는 지점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두 당 모두 ‘지역 분산형’ 재생 에너지 시스템을 강조하지만 지역 공동체, 광역 시-도, 중앙 정부를 아우르는 에너지 산업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공공성 확보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에너지 협동조합은 공공성을 담아내기 위한 훌륭한 그릇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공공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뉴욕의 브룩클린 지역에서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기존 전력사의 지역 서비스가 부실해졌고, 이로 인해 협동조합원이 아닌 시민들은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지역의 협동조합이 더 큰 에너지 시스템에 효과적으로 통합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여준다.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수세적이고 제한적인 형태로 이해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경제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생존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으로, 1970년대 미국의 석유 화학 원자력 노조에서 처음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이 개념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가 최소화돼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즉, 탄소 자본주의의 채굴주의와 성장주의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모든 생명이 치유 받고 탈탄소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정립돼야 한다는 원칙으로까지 확장됐다. 미국 버니 샌더스의 그린뉴딜에서 원주민 권리가 주요하게 설정된 것이나, 영국 노동당 그린뉴딜에서 과거 식민지를 포함한 저발전 국가들의 탈탄소 전환 책임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에 비해 두 당의 그린뉴딜이 말하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협소하다. 정의당의 경우 ‘전환 시 어려움을 겪게 될 노동자, 중소기업, 지역경제에 대한 집중적 지원 대책’의 문제로 접근한다.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실업수당 확대나 재교육 등의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안전망 구축이 제시될 뿐이다. IMF 위기 때의 정부 대책과 큰 차이가 없다. 녹색당의 경우 전환기 기본소득과 생활, 주거, 식량을 포괄하는 안전망, ‘정의로운 전환위원회’ 구성 등 깊은 고민을 담기는 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사회안전망의 일환으로 제안하는 등 수세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탈탄소 사회에 대한 미래 비전과 어떻게 탈탄소 사회로 갈 것인지의 방법론을 담는 틀로서의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아쉬움은 그린뉴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참여의 폭이 넓지 못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의 그린뉴딜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발한 사회운동과 이를 통해 표출된 목소리들이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반면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운동이나 기후위기를 둘러싼 토론이 활발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린뉴딜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으려 하는 두 당의 노력도 크지 않았다. 재생 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약속하면서도 정작 이 문제의 한 가운데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은 역설로 느껴진다. 내용의 정합성을 떠나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이 강한 설득력이나 파급력을 갖기는 어렵다.

실제로 정의당이 그린뉴딜을 발표한 후, 발전노조 등 에너지 관련 노동조합들은 이 공약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필수적인 공공성에 대한 고려가 결여돼 있고,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전환 전략도 부재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민영화를 통해 대기업들이 에너지 산업에 진출하고 ‘시장형 공기업’이라는 방향성 아래 수익성 경쟁에 내몰린 현 공기업 체제에서 제대로 된 에너지 전환은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장기적 안목을 요하는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 보다, 손쉽게 이윤을 낼 수 있는 화력발전에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채 사회안전망의 부분적 보완만으로는 정의로운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들의 비판은 정의당을 향했지만 녹색당도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우리는 정의당과 녹색당이 제안한 그린뉴딜을 완결된 형태로 파악하기 보다는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봐야할 것이다. 두 당은 이를 위해 문을 열고 열린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양당을 포함한 노동조합, 시민운동단체, 지역 공동체 등의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보다 다양한 경험과 고민이 담기지 않고서는 그린뉴딜의 내용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도 구경꾼의 옷을 벗어 던지고 그린뉴딜 논의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결국 수동적 객체로, 시혜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