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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주의 리부트, 미래 없는 밀레니얼의 선택

[이슈①] 기후·사회재생산·부채·경제 위기…불안과 걱정에서 자유로운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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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위한 사회주의” [출처: 로자룩셈부르크재단]

“신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는데, 탐욕스러운 집주인은 가족끼리 독차지하고 생존권이란 명목으로 남은 이들을 착취하죠.”

1854년 시애틀 추장의 연설과 2011년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구호를 합친 듯한 이 말은 미국 영화 <쏘리 투 보더 유(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의 한 대목이다. 지난해 주요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밀레니엄 사회주의’를 특집으로 다루며 그 현상 중 하나로 소개한 영화다. 래퍼 겸 활동가인 부츠 라일리 감독이 2018년 제작한 이 영화는 20대 흑인 텔레마케터 캐시의 성공과 갈등, 그리고 반란을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영화를 두고 “이만큼 노동조합을 멋있어 보이게 한 영화는 없었다”고 평했다. 이밖에도 영화는 여러 화제를 낳았는데, 수익이 제작비에 6배에 달했고 유수의 전미비평가위원회의 독립영화상과 인디펜던트스피릿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영화의 흥행처럼, 지금 미국 청년들에게 사회주의만큼 ‘핫’한 것은 없다. 힙합 클럽에는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이 돌아다니고, 미국 아이오와 민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는 사회주의자 후보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핫걸포버니’ 해시태그가 팔로우 1위를 기록했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유거브>가 지난 10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70%는 사회주의자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지도는 2018년 갤럽 조사 당시 51%에서 약 20% 증가한 수치다. 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 회원은 10년 전 5천 명에서 현재 약 5만7천 명으로 불어났다. 또한 지난 2월 12일 실시된 뉴햄프셔 경선에선, 밀레니얼 세대의 47%가 샌더스를 지지했다. 반면, 경쟁자 부티지지는 20%, 바이든은 4%에 그쳤다. <뉴욕타임즈>나 <뉴 리퍼블릭>, <뉴스위크> 등 주요 매체는 도대체 왜 청년들이 사회주의에 빠지게 됐는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미국 청년들이 시작한 ‘사회주의 리부트’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밀레니얼 사회주의의 돌풍은 미국만의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유럽에서도 사회주의는 청년들의 ‘핫템’이다.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녹색당이 미래세대의 정당으로 떠올랐다. 세계 10대들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ForFuture)’ 파업 시위가 낳은 여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후 치러진 선거에선 사회주의 정당의 부상이 눈에 띈다. 최근 실시된 선거 결과를 보자.

지난해 12월 12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제레미 코빈 노동당수는 보수당에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청년들에게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유거브>가 총선 직후 4만19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동당은 18-24세 투표자로부터 56%를 득표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당이 같은 연령에게서 얻은 21%보다 약 3배 많은 수치였다. 더구나 청년 여성의 노동당 지지율은 65%로 훨씬 압도적이었다. 보수당에 대한 청년 여성의 지지는 15%에 지나지 않았다. 녹색당에 대한 청년들의 지지도 4%에 그쳤다.

2월 8일 실시된 아일랜드 총선에서 최다 득표한 사회주의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도 청년층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 18-24세의 31.8%가 신페인을 지지했는데, 이는 2016년 치러진 전 총선보다 약 2배 늘어난 수치다. 반면, 종전까지 제1당을 고수했던 보수당 피너 게일에 대한 청년들의 지지는 15.5%에 불과했다. 이 연령대에서 녹색당이 득표한 수치도 14.4%에 머물렀다. 25-34세의 31.7% 역시 신페인을, 17.3%는 피너 게일을 지지했다.(1)

2019년 11월 스페인 총선에서도 18-28세 사이 유권자 19.8%가 사회민주당을 지지했다. 포데모스와 통합좌파정당이 함께 한 ‘우리는 할 수 있다’ 연합도 18.8%의 지지율을 얻었다.(2) 독일에선 지난 10월말 실시된 튀링엔주 선거에서 18-29세 사이 유권자 29%가 사회주의자들을 선택했다. 이는 각 정당이 이 세대에게 받은 지지율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또한 2월 14일 독일 여론조사 기관 INSA가 수행한 조사에서 튀링엔주 좌파당은 지지율 40%를 기록해 주목을 끌었다. 비록 독일 전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반향은 정체되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사민당과 좌파당에 가입하는 청년들은 늘어나고 있다. 좌파당에선 2007년 34개의 독립학생조직과 좌파당학생그룹이 연합해 ‘좌파당 사회주의민주학생연합(Die Linke.SDS)’을 결성했고, 현재 참여 학생그룹은 64개까지 늘어났다. 독일 사민당 청년조직 유소스(Jusos) 내에선 BMW 집산화와 같은 의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곳의 회원도 2013년 5만 명에서 현재 8만 명으로 불어났다. 한편 지난 2017년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선거 당시, 사회주의 진영에서 출마한 멜랑숑은 18-24세 사이 유권자에게 30%의 지지를 얻었다. 이 수치는 집권한 마크롱이 받은 18%와 극우 르펜이 받은 21%의 지지율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출처: 버니 샌더스 트위터]

밀레니얼 사회주의는 왜?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왜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일까? 부모보다 더 가난한 이 세대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자신에게 더 해로운 체제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에 인류의 미래가 없다고 본다. 이들은 기후와 재생산, 부채와 경제 위기 등을 자본주의가 낳은 모순으로 보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자유를 추구한다. 그리고 자신을 99%라 부르며 체제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현재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는 다양하다. 미국 언론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5-34세의 임금은 1974년 이후 고작 29달러밖에 오르지 않았다. 반면, 대학 등록금은 1980년대 기준, 2배 이상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학생 대출 채무는 1조5천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18년 기준 졸업생 1인당 평균 등록금 대출금은 29,800달러(약 3만5천5백만 원)에 달했다. 이 같은 채무 부담은 밀레니얼 세대의 13%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할 만큼 심각하다. 학자금 대출자들은 형편을 문제로 집을 사는 것을 미루거나 자제하고 있다. 주택 가격은 40년 전에 비해 약 40% 뛰어올랐다. 밀레니얼 응답자 27.7%는 주택담보대출이 있으며 이중 23%는 10만 달러, 절반은 10만 달러 이상을 빚지고 있다고 답했다.

또 밀레니얼 세대의 절반 이상(51.5%)이 신용카드 부채를 지고 있다. 카드빚이 있는 사람 중 절반(54%)이 5,000달러(약 595만 원) 미만이라고 답했고,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를 빚졌다고 답한 사람도 24%나 됐다. 나머지 4분의 1은 1~2만 달러, 9%는 2~3만 달러, 4.5%는 3만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의 81%가 약 2조 달러(약 2238조 원)에 가까운 집단 부채를 지고 있는 셈이다. 이 부채는 자동차 대출과 주택담보대출도 포함되지만 주로 학생 대출 부채와 신용카드 부채로 구성됐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23-38세 사이 청년 세대에서 우울증과 자살률이 모두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외로움과 경제적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미국 청년층의 걱정거리는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 다국적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가 지난해 42개국 청년 1만3416명을 인터뷰한 결과, 43%는 임금이나 재정적 보상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가장 걱정하는 문제로 29%가 기후변화, 환경보호, 자연재해, 22%가 소득불평등, 21%가 실업, 20%가 범죄와 개인 안전, 20%가 정치와 기업의 부패, 19%가 테러리즘을 꼽았다.

즉 밀레니얼 세대의 소득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낮지만, 더 많은 등록금과 임대료를 낸다. 그래서 연애, 결혼, 출산, 집 등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어난다. 녹아내리는 지구와 전쟁과 내전, 테러로 인한 불안도 집 문턱까지 도달했다. 그들은 체제에 대한 질문을 가지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고 반문한다.

미래를 위한 사회주의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들은 소수에 집중된 사회를 다수를 위한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1%만을 위해 작동하는 현재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의 원천인 생산을 노동자 등 99%가 통제하고 사회가 개인을 돌볼 수 있는 체제가 작동해야 한다고 본다.

밀레니얼 세대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공약에도 이러한 철학이 담겨 있다. 샌더스는 ‘나보다는 우리’를 모토로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전 국민 의료보험), 무상 대학교육, 그린뉴딜, 성평등 임금, 임기 내 노동조합원 2배 확대 등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와 여성, 성소수자의 편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조사는 뉴미디어 뉴스 매체 <액시오스>의 의뢰로 미국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 폴>이 지난해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18세 이상 유권자 2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수가 2017년 영국 총선에서 내건 구호도 ‘소수가 아닌 다수’였다. 지난 총선에선 ‘진짜 변화를 위한 시간’이라는 모토로 “노동당은 은행가, 억만장자, 기득권자가 아닌 민중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영국 노동당이 제안한 사회 전략은 철도나 우편, 상수도와 에너지 같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그린뉴딜을 통한 녹색산업혁명, 그리고 보편적 복지였다.

미국 영화 <쏘리투보더유>에서 주인공 캐시와 갈등 관계에 있는 기업의 이름은 ‘워리 프리(Worry Free, 걱정에서 자유로운)’다. 인력 공급업체인 ‘워리 프리’가 생계 걱정에서 해방시켜주겠다며 제시한 선택지는 노예 계약이다. 현실을 보면 비단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결국 문제는 사회가 누구의 미래를 위해 작동할 것이냐다. 2017년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파업에 적극 뛰어들었던 아르헨티나의 페미니스트 정치학자 베로니카 가고는 “혁명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밀레니얼 세대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100년 전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고 던진 물음을 다시 묻고 있다.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의회 진출 2013-2020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사회주의는 ‘루저’라는 험담을 들었다. 좌파 정당들도 손사래를 치며 우향우했다. 중국이나 쿠바, 북한도 자본주의 시장주의 정책을 확대했다. ‘티나’라고 불린 영국 마가렛 대처는 “(자본주의에는) 어떤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Alternative)”며 신자유주의를 강요했다. 이어 영국 토니 블레어와 미국 빌 클린턴은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블레어는 1994년, 기업의 국가 소유에 대한 노동당의 강령을 폐지하면서 “이것이 나의 사회주의”라고 선언했다.(3)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밀레니얼 세대가 “대안은 있다”며 사회주의의 ‘산소 호흡기’를 뗐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빼앗고 있다며 사회주의에서 미래를 찾는다.

2013년 미국에선 사회주의자 크샤마 사완트가 시애틀 시의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언론이 100년 만에 사회주의 후보가 시애틀시의회에 진출했다고 평할 만큼 사회주의자 의원은 드문 일이었다. 그는 사회주의대안당(SA) 소속으로 이후 두 차례의 선거에서도 승리해 현재까지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15달러 투쟁과 2018년 거대 온라인 유통 기업 아마존에 세금을 물리기 위한 노력 덕분이었다. 2019년 선거에선 아마존이 사완트의 상대후보에 약 18억 원을 후원했는데도, 그의 승리를 막지 못했다.

사완트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이는 버니 샌더스다. 그가 무소속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며 2016년 미국 대선 경선 후보에 뛰어들면서, 미국 사회주의 리부트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당시 경선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표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표를 샌더스에게 몰아 줬다. 이 흐름에 이어 2018년 하원 선거에서 미국민주적사회주의자모임(DSA) 회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OC)가 뉴욕주 제14선거구에 출마해 승리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10선 경력의 조 크롤리 민주당 하원 원내의장을 물리쳤고, 본선에서도 78%라는 높은 득표율로 사상 최연소 여성 의원이 됐다. 또 다른 DSA 소속 후보인 러시다 털리브도 이 선거에서 당선해 최초의 팔레스타인-아메리칸 여성 하원의원이 됐다. 이어 2019년에는 시카고시의원 선거에서 사회주의자 6명이 승리했다. 시카고인들은 “야만이냐, 사회주의냐. 우리는 후자를 택한다”,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 웰컴 투 레드 시카고”와 같이 사회주의자들이 내걸은 구호에 호응했다. 그리고 최근 2020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 버니 샌더스가 재출마했고, 현재까지 가장 많은 표를 얻고 있다.

[각주]
(1)https://www.irishtimes.com/news/politics/how-the-youth-vote-played-out-forsinn-f%C3%A9in-and-the-greens-1.4167316
(2)https://elpais.com/politica/2019/12/17/actualidad/1576623321_530256.html
(3)https://www.economist.com/leaders/2019/02/14/millennial-socialism
  • 아저씨

    열의를 지니고 썼겠지만 단말마적인 느낌입니다. 사실, 봉건제와 자본주의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잠시(4년~8년, 10년) 스쳐가는 권력은 단말마 성격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