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동두천의 이집트 여성 난민, 모나

[3·8 세계여성의날 특별기획⑤] 이집트 민주화를 위해 싸운 의료지원 활동가, 난민 인정 못 받는 한국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모나 씨(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한국에 오기 전 아랍여성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출처: 모나]

다시 한파가 찾아온 2월, 난방을 켜 놓지 않은 모나의 집에 한기가 돈다. 3인 가족인 모나가 사는 집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1년 전 모나가 인천에서 동두천으로 이사 올 당시 노원에 있는 난민 조직이 180만 원을 지원해준 덕에 살게 된 곳이다. 그의 집은 동두천시 상패동에 있다. 동두천시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히는 동네다. 상패동 인근의 보산동은 동두천에서 난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모나는 2017년 4월, 세 살난 딸을 데리고 남편과 한국으로 피난을 왔다. 그가 이집트를 떠난 지 불과 5개월 뒤, 모나의 오빠가 살해됐다. 주변 지인들이이집트를 떠나라고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모나도 꼼짝없이 체포되거나 사형을 당했을 터였다. 오빠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공포에 시달렸고, 이집트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만 갔다. 거기다 경제적 어려움도 모나를 병들게 했다. 결국 모나는 6개월 전, 배속의 2개월 된 아이를 유산했다.

이집트를 떠난 까닭

모나가 한국에 온 2017년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압델파타 엘시시 정부가 집권 4년 차를 맞은 해였다. 모나는 당시이집트 나일강에 위치한 와라크 섬(Warraq Island)에서 의료·교육 지원 활동을 했다. 엘시시 정부는 이 섬을 아랍에미리트에 팔기 위해 10만 명의 주민을 내쫓으려 했다. 무자비하게 가옥을 철거했고, 반발하는 주민들을 체포하고 죽였다. 이집트의 인권 상황은 날이 갈수록 후퇴해갔다. 국제인권감시기구(HRW) 2019년 세계보고서에 따르면, 엘시시 정부의 체포명령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집트는 2017년 기준,,전 세계에서 사형 집행 6위, 사형 선고 3위를 기록했다.

2011년 무함마드 모르시 정부 때까지만 해도 모나의 활동은 위험하지 않았다. ‘아랍의 봄’ 이후 첫 직선 대통령이 된 모르시 정부는 청년·사회단체의 활동을 지지했다. 모나는 2013년‘국제여성운동(Women’s Campagin International)’ 단체에서 아랍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르시 정부는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식료품에 대한 국가보조금을 삭감했다. 시민들의 삶은 무바리크 독재 정권 때보다 오히려 힘들어졌다. 모르시는 시위대에 실탄까지 발포하며 탄압했다. 현 엘시시 대통령은 이 상황을 이용해 군사 쿠데타를 벌였고, 또다시 군부독재가 시작됐다.

이집트 민주화를 싸운 난민, 한국에서의 지위

한국 정부가 모나 가족에게 부여한 비자는 G-1(인도적체류허가)이다. 인도적체류허가는 ‘난민 협약상 난민의 정의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난민신청자의 출신국 정황상 본국에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보충적으로 부여되는 지위’다. 처음 3개월이던 비자연장 기간만 최근 6개월로 연장됐을 뿐, 정부는 모나에게 제대로 된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단 살고자 이집트를 떠났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결국 모나의 투쟁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모나와 남편 와리드는 2018년 9월 14일,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공정한 난민 심사를 촉구하며 노숙·단식을 벌였다. 이들이 단식에 돌입한 이유는 비자 연장 과정에서 발생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의 멸시와 부당함 때문이었다. 두 번째 비자 연장 기간이던 2018년 8월, 와리드는 인천 출입국에 연락을 했다. 연장 마지막 날에 방문이 불가해 4일 뒤에 방문해도 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직원은 ‘상관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4일 뒤, 출입국 직원은 모나의 가족에게 총 48만 원의 벌금을 내라고 통보했다. 모나는 “내 잘못이 아니다”, “돈이 없다”며 하소연하고 절규했다. 결국 직원은 결혼 서류를 제출하면 딸 몫의 벌금인 8만 원만 낼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으나, 모나의 수중엔 8만 원도 없었다.

팍팍한 한국에서의 삶…여전히 사람들을 돕고 싶은 모나

2018년에는 와리드가 허리를 다쳐 일을 하지 못했다. 모나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겨우 면접을 보러 간 곳에서 담당자는 “힘들어서 못 할 텐데”라며 모나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는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 없었다. 지금은 어깨 통증 때문에 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보험이 없으니 이마저도 포기해야 한다.

6개월 전, 모나가 임신 2개월이던 차에 하혈이 심해져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병원비 80만 원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길에 내쫓겼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를 발견한 인근 주민들은 모나를 의정부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다행히‘의정부 EXODUS 이주민센터’가 모나의 병원비 일부를 지원했다. 모자란 돈은 친구에게 빌렸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유산됐다. 병원에서는 추가로 17만 원의 돈을 청구했다. 유산의 충격이가시기도 전에, 그는 돈부터 구하러 다녀야 했다.

모나는 임신 전부터 자주 악몽을 꿨다. 낯선 땅에서 그는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모나 가족의 소득은 와리드가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일해 버는 돈이 전부다. 현재 와리드의 월급은 200만 원. 그러나 와리드 어머니가 암에 걸려 치료비용을 매달 100만 원씩 부담하고 있다. 또 월세와 관리비를 제하고 나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고작 50만원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이주인권센터에서 딸 비산에게 매달교육비 3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나네 생활비는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고시한 3인 가구 생계 급여 선정기준인 116만 원에도 못 미친다.

모나의 소원은 딸 비산이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사진 속의 비산은 언제나 몸에 맞지 않는 큰 가을 외투를 입고 있었다. 비산에게 있는 하나뿐인 외투였다. 예쁘고 따뜻한 옷을 입히고 싶지만, 그렇게 해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올해 다섯 살이 된 비산은 한창 나가서 뛰어 놀 나이가 됐다. 하지만 나가기만 하면 돈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한국에서 삶을 꾸린 지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모나네 가족은 한 번도 옷을 사본 적이없다.

모나는 이집트에서 4년 동안 의과대를 다녔다. 그는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료기술 분야 공부를 마치고 연구원이 되는 게 꿈이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 백신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 일단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 한국어학과가 있는 대학을 수소문했지만 등록금이 1년 기준500만 원이 넘었다. 결국 모나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 교실과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한국어능력시험(TOPIC)을 준비하기로 했다. 아직 첫 걸음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비영리조직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꿈에 조금씩 다가가려 한다.
  • 아저씨

    나도 예전에 미국이나 중국을 선택해서 살아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때가 있었는데, 위 사람들은 대단하네요. 와! 공장에 다니네요! 정부도 지원을 하고 있고. cheer up입니다.

  • 아저씨

    어떤 자유게시판

    어용이라고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실제로 어용인 사람들과 노조가 더 강하게 투쟁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후자가 전자의 논리와 똑같다면 항변의 여지가 없다. 어용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최소한 어용과 노조 그 이상의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노조가 투쟁하기를 바라면서 지지와 연대를 하지 않고, 오히려 뒷통수를 치려고만 한다면 야비한 사람 그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자유게시판이 해를 넘긴 교섭에 대한 책임 전가가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한다. 명예와 불명예에 대해 생각해볼 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본과 노동(력)의 승패에 대해 한쪽 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세월에 흩날려가고 있을 뿐.

  • 현준배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로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세상'이였으면 좋겠습다. 적어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올바르게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주민에 대한 혐오,여야 혐오,가진자와 못가진자, 비판하고 비방하여 그 혐오로 정치하려는 언론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움을 두려워 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우리의 양심을 지키고 존엄성을 지켜 낸 다는 것은 우리 사회 약자를 지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