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이토록 불평등한 ‘공정’

[가방끈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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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선은 인서울 명문대 투어 코스다. 수도권 대학교 이름을 딴 지하철역만 50곳이니 말이다. 지하철역과 대학교가 멀다 싶으면 ‘○○대 입구역’, 역명을 바꾸지 못하면 괄호 안으로라도 대학 이름이 꾸역꾸역 들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지옥 같은 ‘학벌 열차’에 매일 몸을 싣는다. 그런데 이 열차에서 벗어나 학벌주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과 입시를 거부한 투명가방끈들이다. ≪워커스≫는 기획연재를 통해 이들의 선명한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패널 소개



비인가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2019년 대학 입시를 거부했다. 비인가 학교였기에 검정고시를 봐야만 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또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차별을 감내하기도 싫었다. 학력이 개인과 사회의 가치가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아
성적으로 쓸모를 입증하는 게 싫었고,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탈학교, 탈가정을 했다. 그러다 2017년 대학 입시 거부선언을 만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투명가방끈 공동주거 프로젝트인 ‘거부하우스’에 참여하며 불안을 잊었다. 지금은 투명가방끈의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윤서
“그렇게 힘들고 화나면 훌륭한 사람이 돼서 사회를 바꿔라.” 고등학생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자퇴하지 않았다. 수능도 봤다. 그러나 저당 잡힌 삶이 이어졌다. 내 인생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투명가방끈을 만나고 바로 대학 입시 거부선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난다
종일 학교에 있는 생활이 답답했다. 매 맞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그래도 대학교는 갈 생각이었는데 자꾸 반문하게 됐다. 내가 진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인지, 그저 불안 때문인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틀에 박힌 대학 교육 속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2011년 대학 거부선언에 참여했다.


공현
대학을 다니다가 자퇴했다. 원래 대학에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 서열, 입시 경쟁 문제에 관심이 많아 2005년부터 청소년 운동을 했다. 2011년 투명가방끈이 결성돼 대학 거부선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동참했다. 요즘엔 ‘능력주의’, ‘나이주의’ 비판에 관심이 많다.


초등학생 때는 키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중학생 때는 이름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고등학교 때는 아예 등수대로 반이 나누어졌다. 과목마다 심화반, 기초반이 있어 교실이 달랐다. 쉬는 시간마다 승자와 패자가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복도를 오갔다. 차별이 만든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부를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윤서 학교에 ‘빵의 부름’이란 게 있었어요. 모의고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교장 선생님이 1등부터 10등까지 교장실로 불러요. 교장실에 등수대로 앉혀 놓고 빵을 나눠주는 거죠. 전교생이 이 문화(?)를 알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어요. 대놓고 다른 학생들을 차별한 거죠.

난다 학교는 차별이라고 생각해도 반박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요. 지금은 옛날처럼 야자(야간자율학습)가 강제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런데 1등부터 50등까지만 독서실 같은 좋은 공간을 내줘요. 나머지는 추운 일반 교실에서 공부하라 하고요. 성적이 다르니까 공정한 대우는 당연하다는 분위기. 그런 폭력들이 만연해 있죠.

공현 고등학생 때 짝사랑했던 친구에게 고백했다 차였어요. 우울해서 학교를 안 나갔어요. 무단결석인데 무단결석 처리가 안 됐어요. 담임이 공부 잘하는 애가 왜 빠졌겠어, 어디 대회 나갔겠지, 하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개근상까지 받았어요. 사실 모욕적인 일이죠. 똑같이 졸아도 성적 좋은 학생은 그냥 두고, 성적 안 좋은 학생은 더 혼내고.

난다 선생님이 학생을 평가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학생들더러 서로 평가하라고 시키는 게 싫었어요. 미술 시간에 서로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둘러앉도록 했어요. 그리곤 A부터 F까지
서로 점수를 매기게 하죠. 그럴 때마다 서로 당황해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무슨 점수를 줘야 할지 애매한 거죠. 짓궂은 친구가 일부러 장난치려고 친구에게 F를 주면 다들 웃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그걸 토대로 최종 점수를 줬어요.


대학을 거부하고 사회에 나선 이들에게 사회는 이들을 낙인찍었다. 어떤 사람이길래 대학도 안 갔느냐는. 공부도 못하는 사람이 노력도 안 한다는. 어차피 스스로 내린 선택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낙인보다 괴로웠던 건 한국 사회가 나를 취급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 투명인간을 바란 건 아니었을 텐데.

윤서 친척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어요. 집안이 기독교라서 모이면 항상 돌아가면서 기도를 해요. 나보다 한 살 많은 대학생 언니에게는 ‘대학 생활 잘하게 해 달라’, 나랑 동갑인 애한테는 ‘유학 생활 잘 적응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대학을 안 간 나는 뭐라고 기도할 게 없죠. 친척들에게 대놓고 대학을 거부했다고 말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내 선택으로 대학을 가지 않은 건데, 그게 가정에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피아 사람을 만나면 항상 ‘대학생이세요?’라는 말을 먼저 들어요.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대학생이냐, 직장인이냐로 신원을 확인해요. 그래야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다고 믿는 거죠. 저는 그 신용을 증명할 수 없어 늘 곤란해 하고요.

한 번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어요. 모집 공고에는 학력 무관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졸업증명서를 내라는 거예요. 저는 대안학교를 다녀서 최종 학력은 중졸이에요. 일하고 싶어서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어요. 사실 거짓말하고 카페에 들어간 거죠. 카페만 그런 게 아니라 피시방, 편의점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중졸과 고졸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커요. 제 주변에는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친구들이 많은데 제가 중졸이라고 얘기하면 측은하게
바라봐요. 고등학교를 돈이 없어서 못 갔다거나, 사고를 쳐서 중간에 퇴학당했구나 생각하는 거죠.

피아 측은함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약국에서 보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직업 특성상 대졸 출신이 많아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제게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다시 공부해서 대학 들어갈 수 있어’, 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실수해도 질책 받지 않았어요. 반면에 나이는 많지만, 학력이 높지 않은 다른 사람에겐 같은 실수를 해도 혼을 내죠. 그 사람을 빼고 따로 밥을 먹을 땐 ‘배운 것도 없는데 일도 못하는 여자’라고 뒷담화도 하더라고요. 대졸자가 아닌 내 미래의 삶이 저런가 하고 무서워했죠.

난다 대학 입시 거부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인권 주제로 강의 초청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강의비마저 학사, 석사, 박사 같은 학력으로 나뉘더라고요. 지자체 기준이라면서요. 활동하면서 연구용역에도 참여하고, 연구보조원 활동도 했는데, 이런 경력은 안 쳐줘요. 그들이 원하는 건 학력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12번이나 썼다.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는 대학생들이 ‘근조 공정’이라는 피켓을 치켜들었다. 일터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공정하지 않다고 아우성친다. 감사원도 여러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이 공정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란 뭘까?

난다 대학생들의 조국 집회를 봤을 땐 다른 세상 같았어요. 당시 SNS에 그런 글들이 많더라고요. ‘내가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공부 못 하는 애랑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나.’ 그러면 한쪽에선 ‘특권을 독점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역차별 문제를 제기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또 엄청난 욕이 난무하고. 사실 교육과정에서부터 차별이 존재해 온 것인데도요.

공현 따지고 보면 박근혜 탄핵 국면에 터졌던 정유라 입시 비리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불법을 저지른 정유라만 문제였을까요. 사실상 합법적인 ‘정유라들’을 수없이 만들어낸 제도가 문제죠. 정말 비리 없이 합법적으로 혜택을 받고 남을 차별하는 건 괜찮을까요. 저는 조국 사태에는 공감이 정말 안 됐어요. 오히려 냉소적으로 보는 마음이 생겼어요.

윤서 조국 사태 이후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냐 정시냐 라는 이슈가 터졌어요. 예전에 EBS에서 ‘대학 입시의 진실’이라면서 학종이 불공평하고, 수능이 공평하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어요. 수능은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갈수록 이런 얘기가 더 잘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언제까지 시험의 영역, 대학의 영역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이 너무 좁은 것 같아요.

난다 정시든 수시든 누군가를 선발하려는 입장에서 출발해요. 기업에서 어떤 사람을 채용할지, 대학에서 어떤 학생을 뽑을지는 기업과 대학 일방의 입장이죠. 그 입장을 노동자와 학생들이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말하는 교육권은 청소년의 교육권이 아닌 교권에 치중돼 있어요. 공부를 잘한다, 못한다는 표현도 시험 점수로만 치환하는 문제가 있죠. 교육을 통해 학생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그것을 찾기 위해 어떤 과정이 있어야 하는지를 얘기해야 해요.

피아 사회 문제를 권리의 언어로 되찾아 와야 해요. 정규직들은 ‘시험 봐서 당당히 합격했다’는 능력 중심의 언어로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있어요. 권리는 이런 식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권리는 우리의 삶과 차별 없는 사회를 연관 짓는 일이죠.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능력과 시험, 학벌 중심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어떤 전형이든 고위직 자녀의 부정입학은 반드시 또 일어날 거예요. 이제는 정말 교육과 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1년째 국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청소년 네 명 중 한 명은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 응시자가 성적 비관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매해 반복된다. 학교 안팎의 생명들이 사라져가는 과정은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피아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나왔어요.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대회 나가서 대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학교를 빠져도 선생님이 결석 체크를 안 했어요. 그러다 고2 때 우울증이 심하게 왔어요. 독해 능력을 잃을 정도로 심각했죠. 글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니 혼란스러웠요. 내 가치를 증명하는 건 성적이 유일했는데 그것마저 사라졌으니까요.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자살 시도까지 했어요. 성적이 사람의 가치를 규정한다는 것이 너무 명확한 사회였으니까요.

난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가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나요? 학벌로 직업이 주어지는 사회에서 다른 길을 간 사람들에게 안전망은 없어요. 복지는 허술하고, 주거 문제도 어렵고, 숨만 쉬어도 돈인 세상이잖아요. 이런 과정에서 겪는 무력감, 슬럼프가 많을 것 같아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반복하다 결국 절망에 빠져버리죠.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이어도 먹고사는 걱정을 사회가 덜어주면 잠깐 쉬었다 갈 수 있을 텐데.

윤서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말이기도 해요. 한 번의 시험에 인생이 좌지우지되는데, 이 시험에서 실패하면 견디기 힘들죠. 사람은 인정받는 경험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오직 시험 점수로 인정받아요. 다른 것으로 인정받으려 하면 ‘날라리’가 되곤 하죠. 사회가 칭하는 ‘날라리’는 사실 자기표현 욕구의 실현이잖아요. 인간은 욕구를 표출하는 존재인데 학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피아 학원을 빠지고 박근혜 탄핵 집회에 간 적이 있어요. 저는 이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원으로 돌아오니 제게 ‘이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했어요. 마치 저를 불온하다고 여기는 느낌이었죠. 이것도 청소년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난 날라리의 기준인 건가요?

공현 투명가방끈은 매년 수능 즈음 대학 거부 선언을 해요. 기사가 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악플이 ‘공부 못하는 것들은 입시 거부 자격이 없다’, ‘수능 만점 받고 대학 거부하면 인정한다’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바라고 원하는 걸 말하는데. 이를 성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자격조차 없다고 말하는 사회인거죠. 사실 우리는 모두가 대학을 거부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대학 가고 싶은 사람은 마음 편히 가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고 얘기하는 거죠.


존중을 받으려면, 권리를 챙기려면, 학력과 능력이라는 명분부터 쌓으라고 한다. 이제는 학벌주의를 넘어 능력주의의 벽까지 갈수록 높아진다. 투명가방끈은 그 장벽을 허물기 위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가방끈은 투명하지만, 더욱 선명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윤서 대학을 가지 않아도 답은 있더라고요. 여기에 위안을 얻는 편이에요. 학교 안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불안도 떨쳐냈고요. 조금의 불안이 있었던 건 대학을 거부한 직후 찾아왔던 혼란 때문이었어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취업하고 싶다면 학력이 무관한 곳으로 가면 되죠. 또 연애하고 싶다면 지금 만날 수 있는 사람과 하면 되죠. 생계가 불안정하더라도 마음이 안정적인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꽤 오래전부터 저는 대학을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공부도 못했고, 대인관계도 좋지 않았거든요. 학벌주의가 싫었고요. 어릴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더라고요. ‘굶어 죽진 않겠지’ 생각하며 지냈어요.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니까 더 막막하더라고요. 대학을 거부한 삶이 마냥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확신은 있어요.

피아 대학 졸업을 앞둔 친언니는 밤마다 울고 있어요. 불안해서 그러지 않을까요. 학벌 반대 운동을 한 사람인데도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요. 한 번은 언니가 제게 부럽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중졸에 변변찮은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제게서 불안감을 사라지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위안이 되고요. 죽음을 기다리려고 살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는 진짜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활동도 하고 있어요. 그게 또 제게 보람을 주고 있고요.

난다 저는 스물세 살 때 불안했어요. 제 또래 친구들이 졸업하던 때였거든요. 졸업한 친구를 보면 저와 비교가 돼요. 방황과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이렇게 불안했던 이유는 사회가 나 같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대학을 거부하고 주변에서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제가 지나온 삶을 부정하는 질문이죠. 저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위해 살아왔는데. 그래서 그런 질문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텨서, 우리 존재를 드러내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꿔봐야죠.
  • 아저씨

    개인마다 차이는 나겠지만 사회생활은 역경과 고난을 주기적으로 겪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자신의 의지로 계속 똟어나갈 때는 다름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의 자질과 능력을 갖는 때가 옵니다. 그때는 물론 자만이 금물일 것입니다. 자신과는 반대였던 생각과 논리 뇌에 가끔씩 나타납니다. 사실 그러한 부분은 나쁘거나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을 지속적으로 반성적으로 보면서 성찰을 할 시간을 받는 것이어서. 님들의 가치에 용기와 현학이라는 책을 한권씩 보내고 싶습니다. 그곳은 바로 서점이겠습니다.(ㅎ) 젊을 때부터 나이 들 때까지 서점은 인간으로서의 양식과 지혜 등을 충분히 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