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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압과 북한의 ‘새로운 길’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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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제시한 연말 시한이 성큼 다가오면서 한반도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은 성과 없이 끝났다. 비건의 제안에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건은 중국까지 방문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떠났다.

지난 한 달 동안 북미관계는 빠르게 전개됐다. 북미가 연일 주고받는 입장과 성명서가 양적으로 증가하면서 일일이 분석하기에 숨 가빴다. 하지만 긴장감은 생각 보다 높지 않았다. 2017년의 경험과 학습효과로 인해 익히 예상했던 대응과 태도였고, 쉽게 합의될 성격의 사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제관계는, 특히 북미관계는 외생변수가 많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그만큼 걱정과 우려도 많다.

  최근 백두산을 다시 찾은 김정은의 모습

북미 간 대응과 맞대응

12월 2일 김정은 위원장은 본인이 핵심적으로 추진한 삼지연시 읍지구 2단계 준공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이곳에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총리,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 등 북한의 핵심 권력이 대거 참석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 방송도 삼지연 개발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날 준공식의 키워드는 자력갱생이었다. 북한 방송은 “천지개벽된 삼지연군”, “산간문화도시 본보기”라며 삼지연 개발은 자력갱생의 대승리라고 주장했다. 새삼스럽게 자력갱생을 유난히 강조한 것은 김정은의 북한이 어떠한 결정을 할지 예고케 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강력한 대북제재 하에서 북한이 가진 선택지는 협소하다. 그나마 관광산업은 제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원산갈마지구, 금강산 관광지구, 그리고 삼지연 지구를 묶어 관광 상품으로 내놓아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쿠바가 미국의 강력한 제재 하에서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관광산업이었다.

김정은은 곧이어 중대결심을 할 때마다 찾았던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또다시 올랐다. 김정은은 백두산의 주요 혁명전적지를 둘러보고 부인인 리설주와 개울도 건너고 간부들과 모닥불을 쬐는 등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투쟁 모습을 재현했다. 항일 투쟁 유적지에서 대미항전 투쟁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 등 군 간부들이 대거 동행했는데,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조선중앙TV도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 원수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우심해지고 있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언제나 백두의 공격 사상으로 살며 투쟁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로켓맨이라는 별명을 다시 꺼냈다. 2년 전 북한과 말 폭탄이 오가는 국면에서 사용하던 이 표현을 다시 입에 올린 것이다.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필요하면 무력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대북 군사 옵션은 한 번도 철회된 적이 없다. 클링크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국무부가 아닌 미 국방부가 상황을 주도하는 국면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재개 등의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경고다.

이는 모든 의제는 테이블에 있다는 전형적인 트럼프 식 화법이다. 트럼프는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올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줬다. 또한 트럼프의 시간표는 연말에 맞춰져 있지 않다는 것도 확실하게 확인했다. 미국의 일부 상원의원들도 북한이 도발을 강행하면 미 의회에서 대북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무력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트럼프의 발언에 북한은 즉각 반발했다. 12월 4일 박정천 총참모장은 담화를 통해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면 우리도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겠다”며 맞대응 의지를 밝혔다.

12월 7일에는 북한이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고 발표했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의 산실이다. 또한 김정은이 지난해 9월 영구폐쇄를 약속한 곳이기도 하다. 중대한 시험은 ICBM이나 위성 발사를 위한 고출력 신형 엔진 시험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 미국은 안보리 소집이라는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12월 13일 오후 10시 41분부터 48분까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이 또다시 진행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번 시험이 중대한 의의가 있다면서 조만간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다시 한 번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ICBM과 관련한 엔진 시험으로 보인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중대조치, 즉 핵실험과 ICBM 발사 중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해왔다. 잇단 담화 발표로 압박 수위를 높여오던 북한이 중대조치 철회와 관련해 실질적 행동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한동안 중단했던 전략 무기 개발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백두산을 다시 찾은 김정은의 모습

의미 있지만 실효성 없는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

이에 대해 12월 16일 비건 미 대표가 공개적으로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낭비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비건은 일본을 방문한 후 예정에 없던 중국을 거쳐 북한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으로 북·미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유엔안보리에 제출했다. 북한이 요구해온 제재 해제·완화를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초안에는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 폐지, 즉 북한 노동자를 송환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북한 수산물과 섬유 제품의 수출 금지 해제, 남북 철도 도로 연결 사업의 제재 면제,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2017년 11월 북한은 미국이 사정권에 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화성-15형) 시험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유엔안보리는 한 달 뒤 초강경 대북제재 결의인 2397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북한에 공급하는 정유제품 90% 차단, 제재 위반 선박 감시·억류 조치 등이다. 최대 10만 명에 달하는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를 2년 내 송환시켜서 연간 수억 달러의 외화벌이 돈줄을 끊는 것도 포함했다.

이 결의에 따라 러시아는 올해 3월 기준 북한 노동자 3만 명 가운데 2만 명을 송환했고, 유럽과 중동, 아시아 국가들도 송환조치를 해 왔다. 당시 유엔이 정한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은 바로 12월 23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가 2017년에 결의한 대북제재 3건 2371호, 2375호, 2397호 가운데 일부를 해제해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복귀시키자는 입장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또 북미 대화를 촉구한 데 이어 6자회담의 부활까지 제안했다.

이 같은 제재 완화 요구는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북한을 달래는 한편,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북·중·러 동맹을 강화하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도 다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진입해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특히 남북 철도 도로 연결 사업을 포함시킨 대목은 중러 두 나라의 이익뿐만 아니라 한국의 암묵적 지지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안보리 거부권을 가지고 있어 제재완화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미국만 반대해도 제재완화 요구안은 무산된다.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미국은 유엔의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보고 싶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새로운 길의 미래는?

12월 17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일이다. 이날 새벽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을 참배하기 위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들어섰다. 김정은 옆에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 등이 동행했다.

북미관계에 관련된 내용이나 김정은의 별도 메시지는 없었지만, 최근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반영하듯 달라진 모습이 포착됐다. 군 인사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김수길, 박정천, 노광철 등 군 최고위층이 대거 참석했다.

이는 북한이 최근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 연말 비핵화 시한을 앞두고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며 자력부흥, 자력번영이란 개념을 연일 부쩍 강조하고 있다.

12월 22일에는 조선중앙TV 비롯해 북한 매체들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3차 확대회의를 개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 당 중앙군사위를 군 중심으로 재편하고 ‘자위적 국방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에는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북미협상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무력시위의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은 이미 ‘새로운 길’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회의 시정연설에서 세 가지의 내용을 새로운 길로 제시했다. 그것은 자력갱생, 강력한 군력, 세계평화 애호세력과의 연대이다. 북한은 지금 이 세 가지 길 모두를 추진 중이다.

북한은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국의 대화 시도와 중국의 지원으로 극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추가 도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동창리를 통해 미사일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영변 핵 시설을 통해 핵탄두 수량을 늘리는 핵 무력의 질량적 증가를 도모해나갈 것이다. 새로운 길이 북미협상의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까. 막다른 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