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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구조고도화, ‘투기 산단’ 만드나

“KEC 노조파괴 배경에 구조고도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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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산, 수출의 70% 이상은 산업단지에서 나온다. 그만큼 산단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2008년 금융위기는 제조업 경쟁력 악화를 불렀고, 이어 산단에도 타격을 입혔다. 또 대부분 산단은 노후화된 상태. 한국 정부는 2009년 ‘산업단지 리모델링 및 관리시스템 개선방안 발표’로 구조고도화 사업을 시작했다. 취지는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노동자 일터 환경을 개선, 지역 경제까지 활성화하겠다는 것.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구조고도화의 실상은 달랐다. 대부분 사업이 호텔, 백화점, 오피스텔 등 부동산 이익 획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이런 문제로, 금속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실은 지난 4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구조고도화 사업은 과연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는가’ 토론회를 열었다.


“집적단지, 부정적 기능 많아”

국가가 주도하는 구조고도화 사업의 핵심은 ‘산업 집적 시설’ 건립이다. 지식산업센터를 중심으로 노동자 복지시설, 주거시설, 상업시설이 복합된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게 구조고도화의 큰 그림이다. 하지만 김철식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개발 중심의 구조고도화, 집적 시설은 산업 기능 활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구조고도화의 핵심은 지식산업센터로, 지식산업센터가 산업 집적을 위한 대표 시설로 건설되고 있지만, 지식산업센터의 산업 활동 여지는 제한적”이라며 “오히려 지식산업센터는 새로운 부동산 개발 사업, 민간 주도의 ‘아파트형 공장’ 건설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구조고도화가 단기적 경기 부양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개발로 인해 지가가 상승하면, 신흥업체의 단지 입주가 어려워진다”며 “특히 구조고도화 사업은 펀드를 연계한다. 정부가 민간 자본 참여와 금융 자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시드머니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구조고도화 사업만 벌여놓은 상태에서, 개발 수익 획득이 어려워지면 펀드 자체가 빠지고, 산업단지 자체가 황폐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단지공단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산업단지 환경개선 펀드 실적만 지식산업센터 7개, 기숙사형 오피스텔 4개, 비즈니스호텔 2개에 달한다.


“구조고도화, 공공은 빠지고 민간 자본이 장악”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구조고도화 사업에서 공공의 역할이 사라지고 민간자본이 장악한 점을 문제 삼았다. 윤 변호사는 “(구조고도화 관련) 법률은 정부를 사업 승인, 관리 주체로 정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이 사업 시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두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껏 시행된 구조고도화 사업은 대부분 민간에 의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6월 기준, 완료되거나 진행된 구조고도화 사업 62개 중 민간이 참여하지 않은 사업은 16개, 총 사업의 25%에 불과하다. 총 사업이 2조 2천억 원 중 민간자본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윤 변호사는 “민간자본은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구조고도화 사업에 참여한다. 따라서 이윤 창출의 대상인 구조고도화 사업은 공적이기 어렵다. 민간자본이 주도하는 구조고도화 사업은 자칫 수익 확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특히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단지공단이 밝힌 구조고도화 사업 현황을 보면, 2017년~2019년 구조고도화 사업 11개 사업 중 8곳이 오피스텔, 기숙사, 근린생활시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6곳이 산업용지에서 지원시설용지로 구분을 바꿨다. 산업용지는 공장 건축물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자본이 주도하는 구조고도화 사업이 부동산 개발에만 치중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변호사는 “민간 업체와 달리 산업단지공단은 공공기관이므로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산단 관리, 입주기업 지원 등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그러나 공단은 공공기관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구조고도화 사업에 더 많은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구조고도화 사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 결과, 구조고도화 사업을 하더라도 실제 산단 내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효과는 미미하다”고 꼬집었다.


“구조고도화, KEC 노조파괴의 배경”

금속노조 KEC지회(이하 노조)는 사측이 노조파괴에 나선 배경에 구조고도화 사업이 자리했다고 주장했다. KEC 사측 입장에서 구조고도화 사업으로 제조업에서 탈피하려는데, 이때 반드시 따라오는 노동자 구조조정을 손쉽게 이루기 위해 노조파괴에 나섰다는 것이다. 구미 국가산단 1호 기업인 KEC는 2010년부터 파업 유도, 용역 투입, 금속노조 탈퇴 공작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온 기업이다.

KEC가 노조파괴를 시작할 무렵, 구조고도화 사업에 전념했다는 정황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일단 2011년 KEC는 사업보고서상 사업 내용을 대폭 확대했다. 추가 사업 내용은 △관광, 숙박시설 및 운영 △대형쇼핑몰 운영, 프랜차이즈업 △백화점 영업 관련업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 △식품 도소매업 △영화관운영업 △오피스텔 임대업 △호텔업 등이다.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한 구조고도화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당시 KEC 매출액은 3400억 원, 구조고도화 신청 총사업비는 6200억 원이었다. 반면 제조 사업장에 대한 투자는 지난 10년간 없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출처: 금속노조 KEC지회]

KEC는 구조고도화 사업 승인을 위해 전방위 로비도 가했다. 2011년~2012년경 KEC 임원은 자신의 업무수첩에 산업단지공단 본부장급, 지식경제부 국장급, 구미시 국회의원, 지역 언론 등을 만나 구조고도화 사업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적었다. 최근 KEC는 네 번째 구조고도화 사업을 신청했는데, 구미시 부시장은 사업과 관련해 KEC 측과 사전 협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은 “이미 KEC는 구미 공장의 대부분 라인을 외주화했다. 그 가운데 구조고도화로 대형 상업 건축물, 버스터미널 등을 세우려 한다. KEC 반도체 공장은 ‘클린룸’을 가지고 있다. 진동과 먼지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구조고도화로 제조 공장이 폐업될 것이란 의심은 합리적이다. KEC 노조파괴로 35명이 해고됐고, 1백여 명이 직위해제, 301명이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손배 청구 과정에서 15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KEC가 구조고도화에만 목맨 결과다. 수많은 노동자가 사라졌고, 지금도 일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간절히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최근 산업단지공단 관계자가 KEC지회 측에 의견 수렴을 이유로 KEC의 사업 신청을 거절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사업 주무부처)가 홍의락 국회의원실에 ‘산업부는 동 사업(구조고도화)과 관련, 지역 소상공인, 시민단체, 이해관계자의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신청 받지 않을 예정’이라 답한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예상된다.

[출처: 금속노조 KEC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