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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M에서 BDS로

[워커스] 힙합과 급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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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퍼거슨 시위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퍼거슨으로. 지금 인종주의를 끝장내자”라는 푯말을 든 시위대. (Photo by Christopher Hazou)

지난 6월 독일 뒤셀도르프 오픈소스 페스티벌 주최 측은 미국인 래퍼 탈립 콸리를 섭외했다가 취소했다. 콸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위해 이스라엘 BDS(불매·투자철회·제재) 운동을 지지했었는데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5월이다. 이때 독일에선 집권 기민·기사당연합과 사민당을 비롯해, 녹색당 등 주요 정당이 BDS 운동을 반유대주의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얼마 후 뒤셀도르프 시의회는 오픈소스 페스티벌 주최 측에 BDS 운동 지지자로 알려진 콸리의 공연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고, 그가 결국 지지 철회를 거부하자 주최 측이 섭외를 취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SNS에서 “독일에서 공연하고 싶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검열하고 돈벌이를 위해 BDS에 대한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당당한 인간으로서 옳은 일을 위해 일어서겠다”라고 밝혔다. 곧이어 영국과 미국 지식인·문화예술인 103명도 영국 일간 <가디언>에 공연 주최 측의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더 쿠(The Coup)의 부츠 라일리, 데이비드 배너, ATCQ의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 데드 프레즈의 엠원 같은 유명 힙합 음악인들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

사실 미국의 래퍼에게 반유대주의 딱지가 붙은 것은 콸리가 처음이 아니다. 퍼블릭 에너미의 멤버 프로페서 그리프는 1989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쁜 일의 대부분은 유대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발언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던 힙합 그룹을 한동안 해산시켜야 했다. 그리프의 발언은 나치 동조자이기도 했던 기업가 헨리 포드의 반유대주의 출판물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아이스 큐브는 1991년 발매한 솔로 앨범에서 수익 배분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전 소속 그룹의 유대인 매니저를 매섭게 비난한 적이 있다. 여기서 비롯된 논란은 한국인 비하 논란과 함께 큐브를 당대의 가장 악명 높은 갱스터 래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공교롭게도 퍼블릭 에너미와 큐브가 빈번하게 반유대주의자로 비판받는 이슬람 민족의 지도자 루이스 패러칸의 사상에 심취한 이들이라는 점이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외에도 제이지, 스카페이스, 야신 베이, 루페 피아스코 같은 유명 래퍼들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데, 주로 유대계 백인들이 힙합 사업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유럽의 힙합 음악인들도 물론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8년에는 반유대주의적 가사가 포함된 래퍼들의 음반에 상을 준 것이 문제가 돼 독일의 유명 음악상인 에코상이 폐지되기도 했다.

그런데 콸리의 공연 취소 사건은 힙합의 다른 반유대주의 논란과는 맥락이 사뭇 다르다. 그는 유대인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하는 가사를 쓰는 인물이 아니었다. 즉 이 사건을 일으킨 원인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정치적 활동이었다. 무슬림도 아랍계도 아닌 이 래퍼가 BDS 운동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이스라엘 공연을 취소해 달라는 요청을 고심 끝에 받아들이면서 이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17년 그는 이스라엘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한 유대계 미국인 래퍼 레메디와 트위터에서 설전을 벌이고 디스곡을 발표했다. 래퍼들의 수많은 갈등 가운데 정치적 견해 차이가 발단이 된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았다. 로린 힐이나 스눕독 같은 다른 유명 힙합 음악인들도 BDS 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에 이스라엘 공연을 취소한 적은 있지만 콸리처럼 지속적으로 운동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BlackPalestinianSolidarity/]

눈여겨볼 점은 콸리의 행동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다른 억압받는 집단과 연대해 온 오랜 전통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 2010년대를 대표하는 흑인 운동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가 시작한 이후 나타난 새로운 흐름도 잘 드러내고 있다. 2014년 8월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뒤 퍼거슨 시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발생했는데, 콸리도 이 시위에 가장 적극적으로 결합한 유명인사였다. 그런데 이때 놀랍게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온라인 지지에서부터 미국 내 단체를 통한 연대, 학생과 활동가의 미국 방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흑인들의 시위에 동참했다. 물론 이 연대의 배경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팔레스타인인이 미국 도시와 가자·서안지구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는 공통된 의식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동이 미국 흑인 운동과 맺어 온 역사적 관계 역시 중요했다. 팔레스타인 운동 단체들이 퍼거슨 시위 이후 발표한 지지 성명을 살펴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오랫동안 계속돼 온 여러분의 투쟁들과 혁명적 지도자들로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영감과 힘을 찾고자 합니다. 맬컴 엑스, 휴이 뉴턴, 콰메 투레, 앤절라 데이비스, 프레드 햄튼, 바비 실과 다른 지도자들로부터 말입니다.” 이 흑인 운동 지도자들은 아무렇게나 나열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미국의 유대인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온 시민권 운동의 노선을 거부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를 규탄하며 팔레스타인인과의 연대를 강조해 온 이들이었다.

미국의 흑인 운동도 연대에 화답했다. 2015년에는 앤절라 데이비스와 콸리를 포함해 1100명이 넘는 인물과 단체가 흑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연대를 선언하면서 BDS 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움직임은 콸리의 사건에서 드러나듯 미국 흑인 운동에 계속해서 논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올해 1월 미국 버밍엄 시의 시민권위원회는 데이비스가 받기로 예정된 인권상의 수상을 철회했다. 그가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옹호하고 BDS 운동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 항의가 이어지면서 위원회는 입장을 번복하고 공개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BDS 지지 입장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의 비난을 받고 이스라엘 정부가 입국을 금지하기도 한 민주당 하원의원 라시다 틀라입과 일한 오마가 각각 팔레스타인계와 소말리아계라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시기와 대상, 방법은 다르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은 늘 억압받는 집단들과 연대해 왔다. 흑인에 대한 린치를 묘사한 가장 유명한 예술작품으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부르기도 한 곡인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는 1939년 유대인 작가 에이블 미어로폴이 가사와 곡을 썼다. 세계적인 가수였던 폴 로브슨은 숙청당해 감옥에 있던 소련의 유대인 작가 이치크 페퍼의 구명을 위해 1949년 모스크바에서 이디시로 유대인 빨치산의 노래(Zog nit keyn mol)를 불렀다. 콸리 역시 한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공격하는 도구였던 BDS 운동에 계속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최근 SNS에서 인용한 맬컴 엑스의 발언이다. “우리 자신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를 세계의 모든 억압받는 민중과 일체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이티, 쿠바 민중들과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그래요 쿠바도 말입니다.”[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