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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이 권유합니다 “세상과의 직접 교섭”

[워커스 인터뷰]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준)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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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이 미조직, 작은 사업장 노동자와 함께 나타났다. 박근혜가 가뒀던 그는 출소 후 1년여 만에 새로운 계획을 꺼내 들었다. 그와 동료들이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약칭 권유하다)’ 단체 준비모임을 만든 것이다. 그는 준비모임 대표를 맡았다. 민주노총 위원장 이후 첫 직함이다. 한상균은 이 단체를 통해 미조직 노동자,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 찾기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권유하다’는 이달 기획 토론회를 거쳐 10월 9일 발기인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워커스》는 그가 한국 사회에 무엇을 ‘권유’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김한주 기자]

감옥에서 나온 지 1년 2개월이 됐다. 어떻게 지냈나?

학교도 학기를 다 채워야 졸업을 하는데 가석방으로 6개월 빨리 나왔다. 노동 현실과 단절된 감옥에서 고민이나 계획을 충분히 세우지 못했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 출소 후 지금까지 1년 넘게 여러 현장을 뛰어다녔다. 현직(민주노총 위원장)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보냈던 것 같다. 이 시간 동안 분명히 확인했다. 노동자들의 억울함은 여전히 극한투쟁을 벌여야만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지더라.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촛불 이후 노동부문에는 분명한 변곡점이 생겼다. 노동 문제에 정부의 개입이 커졌다. 과거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노동 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는다. 그런데 노동자는 지금 방패만 들고 싸우고 있다. 그러니 막거나, 밀리기만 한다.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창’을 드는 싸움이 필요한 때다.

지금 민주노총 100만, 한국노총 100만, 기업노조 50만까지, 모두 250만 노동자가 조직돼 있다. 이들을 제외한 1750만 노동자가 노조 밖에 있다. 이중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사회 밑바닥에 있는 약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해야 ‘새 창’이 돋아날 수 있지 않을까. ‘진짜 2천만 노동자’, 모두를 위한 사회를 꿈꾸고 싶다.

미조직 노동자, 특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노동권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이다. 그래서 이를 악용하는 사용자도 많아졌다. 노동자 9명을 고용하는 사업체가 회사를 두 개로 분리해 4.5명씩 고용하기도 한다. 10인 사업장을 3개로 쪼개 3명씩 운영하기도 한다.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로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노동자들이 전보다는 노조의 문을 쉽게 두드린다. 문제는 노동권이 열악한 ‘무권리’ 노동자도 늘었다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그렇다. 이들과 노조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또 대개는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권리를 찾으려 하다 보니 벽에 부딪친다. 낡은 사회 구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먼저 인터넷에 검색하고, 상담소를 방문하며, 변호사를 찾고, 고용노동부에 문의한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을 때에야 노조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최후의 수단을 최선으로 삼을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권유하다’를 시작했다. 무슨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우선 서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운동장’을 만들려고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라고 서로 알아가는 것이다. 최저임금이나 근로기준법, 산업재해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했을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권유하다’는 그 운동장을 만들 것이다. ‘무권리’ 노동자 당사자가 지역별이나 업종별 대화방에 모여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요구사항을 만들어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무권리’ 노동자 당사자의 운동장이란 건 무엇인가?

‘권유하다’가 만든 온라인 플랫폼 ‘유니온크래프트’이다.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우주 전쟁에서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지금 한국 사회는 ‘계급 없는 노동자의 계급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1700만이 촛불을 들었다가 흩어졌는데, 지금도 모두 먹고사는 문제를 말한다. 지금처럼 치열한 계급 전쟁 시대가 있었나,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인류도 한계를 극복한다며 우주로 떠나는데, 무권리 노동자들도 권리를 찾기 위한 계급 전쟁에 나설 때다. 계급적 문제가 사라진 지금, ‘계급 없는 노동자의 계급 전쟁’으로 항해할 우주선을 ‘유니온크래프트’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왜 온라인 플랫폼인가?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게 온라인이다. 또 한국 사회는 촛불을 경험했다. 온라인에서 직접 행동이 조직되면 그 힘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미 포데모스(스페인 좌파 정당, 온라인 직접 민주주의로 다양한 운동 전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시위(2011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진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이를 보여줬다. 온라인을 통한 직접 정치는 늘어나는 추세다.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단결하는 데 온라인에서의 활동이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유니온크래프트에 어떻게 접속하게 할 것인가?

‘모이면 힘이 된다’를 잘 전달하는 게 승부수다. 이를 잘 전달하게 하려면 ‘밀알’이 필요하다. 일차적으로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가 그 역할이라고 본다. 조직 노동자 가족부터 비정규직, 작은 사업장 노동자가 없는 가족이 과연 있느냐. 이들이 자기 가족의 문제를 넘어 우리 미래의 얘기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조직 노동자들이 ‘모이면 힘이 된다’를 주변까지 확산하면, 무권리 노동자를 모아낼 수 있는 추동력이 분명히 생긴다. 한상균 혼자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함께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한다.

유니온크래프트에 모인 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나?

당사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담이나 강의, 뉴스 서비스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눈으로 사회를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이트가 많지 않다. 이를 유니온크래프트가 만들어갈 것이다. 일종의 ‘노동 포털’을 꿈꾸고 있다.

‘권유하다’도 유니온크래프트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것이다. 일례로 ‘근로계약서 감별하기’ 서비스와 같은 사업을 생각해보고 있다. 한마디로 근로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부당함이 없는지 자동으로 확인해주는 것이다. 근로계약서를 사진 찍으면 자동으로 불법성을 따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권리 노동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투쟁 사례를 소개하는 영상도 제공할 수 있겠다. 미조직 노동 운동에 대안을 이끌어내도록 미조직 노동 운동의 역사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권유하다’ 사업은 유니온크래프트 말고 또 무엇이 있나?

많은 활동을 계획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청소년은 학교라는 생애 주기에서 노동을 배우지 못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배우고 있다. 사회는 비정규직,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경쟁에 밀려서’,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산다고 말한다. 본질은 일자리를 나쁘게 만든 사회 구조다. 교육을 통해 노동과 평등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유럽에선 초등학교부터 노동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 찾기를 위해 근로기준법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이 사업장에 근로 기준법을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매주 시위 같은 직접행동을 당사자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어떤 형태로 뭉쳐야 하나? 또 교섭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자기 문제가 사장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독점 재벌의 착취 구조가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3차, 4차 하청 부품사 노동자일지라도 착취 구조를 모두가 알고 있다. 작은 사업장은 임금 줄 형편도 못 되고, 기술 혁신은커녕 유지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이를 바꾸기 위해 노조를 만든다?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세상과의 교섭이 필요하다. 싸움의 대상은 소규모 사업체의 사장들이 아니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를 보라. 이들은 세상과 싸우고 있다. 주말 고속도로 로터리에 천막을 치고 구호를 외치는 이 시위에 주동자는 없다. 이 시위가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하자 대통령이 테이블에 나왔지만 협상자는 없었다. 여기서 협상자는 분노한 민중 그 자체다. 노란 조끼를 입은 민중과의 협상 결과는 언론을 통해 나타난다. 세상과의 교섭은 이렇게 실현된다고 본다.

‘무권리’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으려면 노동자 정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현재는 노동 현장과 노조가 분리돼 있고 또 노동과 정치가 분리돼 있다. 해외 노조 지도자에게 ‘노동자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 우리는 노동자 집권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그사이 극우 보수는 다시 준동하고 있다. ‘가장 힘든 노동자를 위한 정치’,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다.

노동자 정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지금의 각기 다른 노선이 가로막아선 안 된다.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명제에 각 정치 노선들이 화답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계급적 단결이라는 절박한 시대 정신에 좌든 우든 서로 성찰의 테이블로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1750만 미조직 노동자에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게 ‘권유’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들이 사회 변혁을 꿈꾸며 만든 조직이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했기에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 감옥에 있는 동안 이 문제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어떻게 보면 오늘 인터뷰한 내용도 반성문일 수 있겠다. 가장 힘들게 노동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인데 왜 노동운동은 분열되어 있을까라는 문제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더 이상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운동이 사회 변혁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는 조직된 노동자와 조직하지 못한 1750만 노동자가 절망의 노동을 희망으로 만들어가는 한편이 돼야 한다. ‘권유하다’는 끊임없이 손을 내밀 것이다. 희망이 싹 트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모두가 동반자가 됐으면 좋겠다.[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