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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 우익’ 아베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

[워커스 인터] 수출 규제의 의미, ‘전후 레짐’의 탈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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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쓰바라(레이버넷 일본)]

지난 8월 2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고, 28일 새로운 수출규제를 시행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결정에 대해 수출 규제의 강화가 아니라 안전보장상의 이유로 수출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처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과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일본 기업 압류자산 현금화 조치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일본 정부는 올해 1월, 강제징용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불화수소를 비롯한 전략물자들의 수출 금지를 검토했다가, WTO 규칙을 위반할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수출입 금지 외에도 한일 간 국제 송금 금지, 비자 발급 정지 같은 조치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적 문제나 일본 기업들이 받을 타격, 국제적인 비판 등을 고려해, 결국 WTO가 예외적 조치로 인정하는 안전보장상의 이유를 들어 ‘수출 관리 엄격화’라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WTO 위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전략물자의 수출을 늦추거나 금지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수출 금지만큼 타격이 크지는 않더라도, 예측 불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자유경제에서,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로 한국 경제에 일정 정도 타격을 주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일본에게도 양날의 검이다. 불화수소 등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도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등의 공급이 불안정하면, 한국 반도체를 사용하는 일본 기업들의 제품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 한일양국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하더라도,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원활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이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 영향은 이미 일본제품 불매운동, 여행 거부, 민간교류 축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초래한 아베 정권에 대해 일본 지식인이나 시민운동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7월 25일,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지식인과 시민운동 단체의 대표자들은 “한국은 ‘적’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잇따라 전노협, 전노련 등 노동계,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등 진보 정당들,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울러 8월 8일에는 일한 시민교류를 진척시키는 <희망연대>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국회참의원 의원회관에서 긴급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평화에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대한국 정책에 강한 항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8월 19일에는 ‘전쟁은 안된다·9조 부수지 마라! 총력 행동 실행 위원회’와 ‘아베 9조 개헌 NO! 전국 시민 액션’ 등 시민단체가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어 “한일 관계를 파괴하는 아베정권에 맞서,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연대해서 싸우자”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일본 주류언론들은 “한국은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신속하게 바로잡아야 된다”라는 일본정부의 입장만 무비판적으로 되풀이할 뿐, 시민단체들의 비판은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강제징용배상판결에 관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보도하기는커녕, 한국 보수언론의 “일본의 주장이 옳다”는 주장을 부풀리며 심각한 왜곡 보도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 왜곡은 일본 여론을 잘못 유도하고 있다. 교도통신사가 8월 17~18일에 실시한 전국 전화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에 대해 ‘지지한다’가 68.1%, ‘지지하지 않는다’가 20.1%로, 지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말하는 ‘상식’

그렇다면, 일본에서 수출 규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아베정권이 정보를 통제한 결과일까?

그렇지는 않다. 일본 사회에서는, 한반도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고, 일제강점기의 피해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했다는 인식을 ‘상식’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같은 보복 조치도 옳다는 여론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이것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쪽이 ‘몰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베 정권은 그러한 일본의 ‘상식’ 위에서 수출 규제 조치를 실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상식’은 아베 이전에도 역시 ‘상식’이었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담화, 한일 간 교류를 진척시킨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수상의 시대에는 한일 정치지도자들이 서로 일본의 상식, 한국의 상식을 이해하며, 타협할 노력을 하고, 서로 모순되는 ‘상식’의 수렁을 메웠다. 유감스럽지만, 양쪽 상식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어도, 표면적으로는 한일 양국이 좋은 관계를 구축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 성공했다.

현재 강제진용배상판결은, 이 어려운 문제를 에두르며, 한국정부도 정면에서 부딪히지 않도록 조용히 해결하자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혹은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아베의 목표는 일본을 ‘보통 나라’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아베 신조가 처음 일본 정부의 총리로 취임했을 때, 정부 슬로건은 ‘아름다운 나라’와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었다. ‘아름다운 나라’는 바로 지금까지의 일본이 ‘아름답지 않은 나라’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은, 2차 세계대전 후 군대를 가질 수 없는 ‘아름답지 않’은 패전국으로 일본을 강제해 온 체제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아베의 슬로건을 보면서 많은 일본사람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일본의 상황을 타개해 줄, 대단한 철학처럼 기대했다. 그러나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슬로건은, 트럼프의 ‘미국 퍼스트’ 같은 치졸하며 내용이 없는 문구일 뿐이었다. 사실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일본’, ‘전쟁 책임을 반성하는 평화스러운 일본’을 지향했던 전후 레짐을 파괴하고, 일본 사회에 치열한 경쟁을 도입하며, 일본 국익을 위해서는 군사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지금 ‘일하지 않는 자를 세금으로 먹이는 것은 잘못됐다. 기초생활보장을 중단하라’라고 외치는 천박한 사회가 돼 버렸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국제관계에 있어, 상식과 충돌할 경우, 머리를 싸매고 충돌을 피할 방법을 모색해 왔다. 하지만 이제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통해 이해관계가 어긋난다면 무조건 일본의 상식을 관철하려는 모양새다. 외국으로부터 제재받을 것은 있어도, 외국에 제재를 가할 일은 없었던 ‘전후 레짐’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강제징용배상 판결로 시작되는 ‘상식’의 대립을 ‘화이트 리스트 제외’, 수출 규제로 해결하려는 태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라고 해도, 아베에게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나 미일안보조약을 파기해 전쟁 전의 대일본제국으로 회귀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아베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토대로 일본군이 미군의 하청을 받고 해외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자본 축적을 보장하는 것이다.

아베의 지지 기반인 일본회의를 비롯한 수구우익 사이에서는, 진지하게 전쟁 전의 대일본제국으로 회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아베의 마음속은 알 수 없지만, 아베는 대일본제국헌법의 시대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고 주장할 정도의 골수우익은 아닌 것 같다.

우익적인 포즈를 취한 적은 있어도, 아베는 유치한 내셔널리즘에 취한 사람이 그대로 총리대신이 된 것 같은, ‘워너비 우익’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롤모델인 할아버지 키시 노부스케를 ‘A급 전범’ 오명에서 구해 준 미국에 반항할, 그리고 미국이 만든 샌프란시스코조약의 틀을 파괴할 배짱도, 의지도 없다. 일본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실패했다고 인정하여,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전후 처리가 끝나 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시점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된 시점에 일본은 이미 모든 전쟁을 포기한다는 현행 평화헌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미국의 요청에 의해, 일본은 자위를 위한 무장 능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징 천황제’로서 천황제도 존속했고, 대일본제국헌법 하에서의 천황주권 의식이 아직 일본 국민 사이에 남아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21세기의 세계에서, 현실적으로 일본이 시계 바늘을 되돌릴 수 있는 한도는 여기까지다. 그 한도로 다시 후퇴하며 아베는 전쟁 후, 일본 민중이 이룩해 온 많은 진보적인 가치들을 부정하며, 이를 대일본제국시대의 케케묵은 가치로 바꾸려는 것이다.

아베는 자민당 총재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1년까지,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위해 최소한 전쟁을 포기하는 현행 헌법을 개정하고자 한다. 그것만 실현되면 그 이후의 문제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즉 ‘전후 레짐’의 긍정적인 측면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소중히 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일본이라는 가치 위에 구축된 사회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국가를 위해 국민의 봉사를 요구하는 국가주의적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베가 계획하고 있는 헌법 개정의 요지다. 단지 현재의 ‘자위대’라는 단어를 ‘군대’로 고쳐 쓰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전후 레짐’ 하에서, 이웃나라들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해왔지만, 이제 강제징용배상판결에 대해 날카로운 공격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강제징용배상판결이 샌프란시스코 조약 틀 아래 체결된 일한기본조약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이유는 결국 국가보다 개인의 가치를 무겁게 본 강제징용배상판결이 ‘전후 레짐’으로부터 벗어난 이후의 일본에 장애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라는 강경한 수단으로 강제징용배상판결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아베 정부를 일본 좌파나 자유주의 세력들이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국제법 해석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미래, 그리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