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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도 최저임금을 받는다면

[워커스] ‘진심 섞인’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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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_문재인 대통령
“갈등관리의 모범적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_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인상금액으로 보면 과거보다 낮은 금액이 아니다”_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경제 안정적 측면이 더 많이 고려됐다”_임승순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공익위원)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모두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남성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 스치는 생각. ‘최저임금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 발언들은 사회 고위층들의 ‘아무말 대잔치’쯤 될까. 약속을 못 지킨 것이 죄송하다고 했다. 갈등 관리의 모범적 사례라고 추켜세웠다. 인상‘액’은 낮지 않다고 강조했다. 경제 안정을 고려한 결정이라고도 했다. 제3자적 입장들뿐이다. 어쩌면 제3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말들일 게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저 발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5% 그리고 물가상승률 1.1%. 그 합계보다도 낮은 수치인 2.87% 인상된 시급 8590원. 그것이 내년도 시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행정을 한다는 이들의 입에서 나올 말은 ‘죄송하다’로 끝나선 안 된다. 경제 환경, 고용상황, 시장 수용성 등을 고려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아니라 실질임금이 깎이게 된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한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 그것이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더 커지는 2020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다.

언론사·기자의 의도가 담긴 기사들

제3자적 입장, 언론 보도는 다를까. 2.87% 인상 8590원 표결이 나온 다음 날 보수 매체들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도 더 많은 요구들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13일 ‘이미 우물에 독 퍼졌는데 독 덜 탄다고 무슨 의미 있나’ 사설을 게재해 ‘주52시간 근무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문재인 케어’ ‘4대강 보 철거’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현실 고려한 최저임금 2.9% 인상…속도 조절할 정책 더 많다’ 사설을 통해 “업종별 지역별 기업규모별로 사용자의 지급 능력이 다르고, 필요한 생활비가 다른데 임금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을 들고 나온 것이다. 〈중앙일보〉 권혁주 논설위원 또한 ‘이것은 걱정인가 핑계인가’ 칼럼(15일)에서 “최저임금, 손도 못 댄 부분이 남아 있다. 업종·지역·규모별 차등 적용과 결정구조 개선”라며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장단을 쳤다.

경제지는 한 발 더 나아갔다. 〈한국경제〉는 ‘최저임금 ‘졸속·과속’ 인정한다면 차등화도 수용해야’ 사설(13일)에서 ‘최저임금의 지역·업종·기업규모별 차등화’를 넘어 최저임금 산입범위의 조정을 요구했다. 〈한국경제〉는 최근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숙식비가 최저임금 산정 시 제외돼 있다며 역차별이라는 여론몰이 중이다. 〈매일경제〉 또한 ‘논란 많은 주휴수당, 최저임금 산입범위 합리화 서둘러야’ 사설(16일)에서 최저임금 산정에 ‘주휴수당’, ‘현물이 지급되는 숙박비’을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외국인 근로자에 똑같은 임금 불공정하다”는 발언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아시아투데이〉의 ‘2.87% 인상된 시급 8590원’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16일) 결과 기사 역시 헛웃음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설문결과, ‘적절하다’ 29.7%, ‘인하돼야 한다’ 25.6%, ‘동결해야 한다’ 25.2%, ‘더 인상해야 한다’ 15.4%이라고 집계됐다고 한다. 그것을 두고 〈아시아투데이〉는 첫머리에서 “적절하다는 의견이 가장 높았지만 ‘동결’이나 ‘인하’라는 응답을 합하면 절반이 넘는 50.8%였다”고 수식했다. 기사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설문결과를 놓고 다른 수식도 가능했다. 〈아시아투데이〉 편집국에서 ‘시급 8590원’로 결정된 최저임금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 어땠을까. “적절하다는 의견이 가장 높았다”고 썼을 것이다. 정 반대 논조 기사의 생산도 불가능하지 않다. ‘더 인상’해야 한다고 판단된다면 “‘더 인상’이라는 의견도 15.4%나 나왔다”라고 덧붙였을 것이다. ‘동결’과 ‘인하’ 수치를 묶었듯 ‘적절’과 ‘인상’을 묶는 방법도 있다. 50.8% VS 45.1%라는 수치가 나온다. 재밌는 것은 해당 설문조사의 표본오차가 3.1%p였다는 점이다. 오차범위 내의 결과, 우위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자들이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이들 매체 기자들 역시 ‘최저임금에서 비껴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관찰하는 위치가 잘못되었다면, 내리깐 눈에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고 꾸짖은 언론학자가 있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6월 〈경향신문〉에 ‘기자들은 어디서 세상을 보는가’라는 칼럼을 실었다. 주제는 ‘뉴스 신뢰도’였지만, 최저임금뿐 아니라 전반적인 노동·사회복지·정치·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적용이 가능한 칼럼이다.

“최근 서울시는 4개 버스 노선의 새벽 시간대 배차를 늘렸다. 새벽 노동자들을 꽉꽉 채워서 운행하던 노선들이다. 몇몇 기자들이 마치 새로운 사건이 생긴 듯이 새벽 버스에 올라타 승객들의 애환과 사연을 취재했다. 수십 년 동안 거기에 있었으나 기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꽤 오래전에는 기자들도 거의 매일 이들과 같은 버스를 탔다 ₩기자들이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출퇴근을 하던 그 시절에는 버스 노선의 문제, 기사들의 난폭운전, 버스회사 비리 등이 심심치 않게 사회면을 장식했었다. 기자 월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생활수준이 오르자 승용차의 성능, 교통 체증, 휘발유 가격 같은 주제가 만원버스 이야기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_2019년 6월 23일 <경향신문> 칼럼 중

윤태진 교수는 한국사회 주요 언론사들의 중견 기자들이 대부분 유사한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 이유로 ‘대기업과 노동자들이 대립할 때, 기업에 더 쉽게 감정이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기자들의 주변에는 공장 노동자보다 기업 임원이 더 많기 때문에. 수도권 밖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일련의 상황들은 삼성해고자 김용희 씨의 생존을 건 고공농성 단식투쟁에 대한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의 개인 SNS를 떠오르게 한다. 김용희 씨의 고공농성장을 찾은 소방관이 “이 정도 했으면 언론에 많이 나와야하는데 왜 이리 잘 안 나오죠?”라고 질문했다던 메시지.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기도 하다. “기자들이 그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가끔 지인들과 했던 농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 세상에 정말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 있는 것 같아. 그것은 바로 국회의원과 기자야’. 물론, 이성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자꾸 감성은 다른 말을 한다.[워커스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