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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노동자당 13년의 유산은 사라질 것인가

[워커스 인터] 노동자당이 남긴 허물, 이를 먹고 자란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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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브라질 노동자당의 몰락을 목격했다. 8년 동안 룰라를 향했던 환호와 2011년 지우마 호세프를 향했던 기대는 배신감으로 돌아왔고, 냉소로 가득 찼다. 지우마 호세프는 탄핵당했고, 룰라는 12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노조에서 출발해 15년 간 여당의 자리를 지킨 노동자당은 라바 자투(Lava Jato) 스캔들로 도덕적 타격을 받았다. 좌파로 분류되는 정당이 이유 있는 도덕적 공격을 받을 때 정치적 몰락을 피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라 불리는 부패 스캔들은 노동자당 몰락의 계기라기보다는 몰락의 결과였다. 노동자당의 몰락은 당내 혁신과 개혁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우소나루 집권의 계기가 됐다.

  수십만 명의 브라질 청년과 노동자들이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Brasil de Fato]

파벨라의 나라, 브라질

2002년 페르난두 메이헤예스의 영화 〈시티오브갓〉이 개봉했다(한국은 2005년 11월 개봉). 감각적 영상과 매력적인 브라질 음악으로 가득 찬 이 영화는 신조차 버린 도시, 브라질 파벨라의 담담한 일상을 절실하게 담아냈다. 총성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총기와 함께 자라고, 총에 의해 삶을 마감한다. 영화는 그 담담함을 깨지 않으려 부단히, 절실히 노력한다. 관객의 마음에 이는 파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을 막아선다. 감독은 파벨라가 있음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렸다.

‘파벨라’는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 외곽에 형성된 농민과 빈민의 주거지역을 지칭한다. ‘빈민촌’이라는 번역어로 옮길 수 있음에도 번역되지 않는다. 브라질 ‘파벨라’는 고유명사다. 브라질 사회의 빈부격차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범죄와 폭력에 의해 ‘파벨라’라는 하나의 새로운 사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곳은 브라질에 있지만, 브라질이 아니라 파벨라다.

노동자당의 부상

2003년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 룰라가 노동자당을 기반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파벨라는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는 기대와 달리 반신자유주의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2006년 재선에 성공해 2010년까지 8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2006년 파벨라는 룰라에게 희망을 걸지는 않았지만, 그를 선택했다. 지우마 호세프도 마찬가지였다. 룰라에 이어 지우마 호세프의 당선까지, 노동자당의 집권은 발전주의적 경제 모델과 복지 정책 확대를 양손에 거머쥔 덕분이었다. 발전주의적 경제모델은 노동자당의 오른손에 2000년대 경제 성장을 쥐여주었다.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은 결과였다. 브라질은 그 여세를 몰아 제조업 육성과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룰라는 왼손에는 복지 정책 확대를 움켜쥐고 보우사 파밀리아 프로그램과 사회적 소외계층을 우대하는 교육정책을 펼쳤다. 직역하면 ‘가족 지갑’이라는 뜻의 보우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은 연방 정부에서 빈곤층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조건부 현금지원 정책이다. 빈곤층 가정의 아동이 학교에 출석하고 예방접종을 받는 조건으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한다. 2004년부터 시행된 이 프로그램 덕분에 파벨라에 거주하는 수 백만 명이 정책의 수혜자가 됐다.

룰라 정부는 오른손으로 거머쥔 자금을 왼손에 건넸다. 왼손에서 흘러나간 재원은 빈부격차를 감소시켰고, 오른손이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브라질 인구의 8%에 해당하는 극빈층 1천600만 명이 거주하는 파벨라에서는 기적을 기대하게 됐다. 2004년 스페인 출신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기적의 칸딜〉에서 파벨라의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며 총성을 잊는다.

노동자당이 남기고 간 허물

2011년 지우마 호세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지난 정권이 양손 가득 움켜쥔 결실이 무엇의 대가인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돈줄에는 브라질 정치, 경제, 언론 권력자들의 손이 함께 얹혀 있었다. 오른손의 돈줄을 함께 움켜쥐고 있었던 기득권층은 왼손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상황을 반기지 않았다. ‘연립 대통령제’라고 불릴 만큼 여야 간 협약이 통치성 유지에 필수적인 브라질 정치 환경에서 그들의 손을 잡지 않을 방도가 없었지만, 그들의 손을 잡음으로써 노동자당은 그 사회적 기반과 점차 분리됐다. 룰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외환 시장을 개방하고, 외국 자본 투자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노동자당은 오른손으로 기득권층과 악수하는 대신, 노조 및 사회운동세력과 악수하고 있던 손을 놓았다. 어쩌면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오른손이 새로 맞잡은 손은 분명한 경제적 성장으로 화답했고, 그 덕분에 왼손은 사회복지정책을 계속 움켜쥘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우마 호세프 취임 이후 오른손의 악수는, 바로 지금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는 가장 보수적인 의미의 악수였음이 드러났다. 원자재 가격의 하락과 2014년 월드컵 개최, 2016년 리우 올림픽 준비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악수 시간은 끝이 났다. 룰라는 물론이고 지우마 호세프와 연립 정부를 구성했던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이 지우마 호세프 탄핵절차를 진행했고, 부통령이었던 미셰우 테메르는 대통령이 됐다. 라바 자투와 관련된 부패사건을 조사하던 사법부는 노동자당을 표적으로 삼았다. 오른손은 빈손이 되어버렸다지만, 왼손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노동자당이 야심차게 추진해왔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은 보우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2천만 명이 왼손을 잡아주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신이 버린 도시 파벨라는 노동자당 집권 동안 기적을 기대하게 됐고, 일부가 중산층에 편입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문제는 ‘기적’이 은유적 표현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출처: Brasil de Fato]

허물을 먹고 자라는 우파

노조와 사회운동부문이 노동자당과 맺었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는 동안, 노동자당의 근거지였던 브라질 변두리 지역은 복음교회의 세력권으로 편입됐다. 2016년 10월 30일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에 당선된 마르셀루 끄리벨라는 ‘하느님왕국세계교회’(Iglesia universal del Reino de Dios)의 주교다. 교단의 창시자 에디르 마세두의 조카인 그는 이 교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브라질공화당(PRB)의 후보로 출마했다. 노동자당의 중앙세력이 정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동안 당 내부 개혁파는 대학을 중심으로 반(反)자본 투쟁을 담론화했고, 정작 노동자당의 기반이었던 파벨라의 흑인 청년, 여성, 성소수자 손은 놓쳐 버렸다. 그 사이 세속국가를 거부하는 브라질 보수 우파의 정서가 대중에게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올해 1월 1일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브라질 국민의 55%는 ‘명시적으로’ 인종주의자, 제노포비아, 마치스타, 군부독재 및 고문 옹호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명시적으로’라 말하는 이유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그렇게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독재정권을 지지한다”, “고문을 찬성한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17세기 도망친 노예들이 일군 터전인 “킬롬보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명시적으로’ 드러난 개인의 정치적 지향과 일치하는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에 맞서 가족과 종교적 가치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앞선 테메르 정부가 취한 공적 자금 삭감, 노동법 개혁, 민영화 정책을 이어받으며 그동안 브라질 사회에 자리 잡은 교육, 환경, 노동, 사회적 권리에 균열을 예고했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연금개혁과 대학교육 예산 삭감이다. 연금개혁은 정부 재정부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현재는 연금 수령에 연령 조건이 없으나, 개혁안에 따르면 수령 시기를 남녀 각각 65세와 62세로 규정하고, 납부기간이 40년이어야 연봉 100%를 수령할 수 있다. 최소 수령액을 받기 위한 가입기간은 15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인 올해 2월 연금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나 노동계와 야당의 강한 반발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화살을 대학에 돌렸다.*

올해 4월 30일 오전, 국립대학 세 곳의 정부예산을 30% 삭감한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다. 세 곳이 예산 삭감 대상으로 지정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밤, 전체 국립대학과 연구소에 예산삭감이 적용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주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대학의 예산이 삭감될 것”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은 5일 전인 4월 25일, 3개 대학 주최로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였던 페르난도 아다지와 사회주의와자유당 소속 후보였던 질예르메 보루스가 참석한 행사를 의미했다. 덧붙여, 철학 및 사회학 교육에 책정된 예산을 철회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노동자당 집권 기간 이뤄진 대학교육지원을 중지하겠다는 발언이었다.

우파를 향한 쓰나미

대학교육을 받은 흑인은 2005년 5.5%에서 2015년 12.8%로 증가했고, 대학교육을 받은 저소득층의 비율도 증가했다. 노동자당 정책의 직접적 수혜자이자, 지지기반의 마지노선으로 남아있었던 대학과 맞서면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좌파 청산’을 전면적으로 시도하는 듯하다. 그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5월 15일 200개 이상 도시에서 2백만 명 이상이 참여한 대중시위가 발생했다. “교육 쓰나미”라고 불리는 이날의 시위를 시작으로 브라질에서는 노동자당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한 달 만인 6월 14일 총파업이 벌어졌다. 노조 측 집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00개 도시에서 4500만 명이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파업에 참여했다. 2019 코파 아메리카를 하루 앞두고 벌어진 총파업이었다. 2019 코파 아메리카가 개막된 상파울루의 지하철 노선 5개 가운데 한 개는 운행을 중단했다. 여러 도시에서 대중교통이 부분적으로 운행을 중단했으며 상점도 문을 닫았다. 노조들은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회복지프로그램이라는 브라질 노동자당 13년의 유산은 분명하다. 노동자당의 정치적 몰락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보우소나루 집권은 무엇의 계기가 될까? 브라질의 빈부격차, 인종주의, 마치스모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까 아니면 노동자당의 재건과 도약의 계기가 될까? ‘파벨라의 나라 브라질’이 고작 회고적 영화의 제목으로 회자될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워커스 56호]

[각주]
* 지면 원고가 발행된 이후인 지난 4일 이 법안은 브라질 연방하원 연금개혁 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