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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 수상한 성교육

[워커스 이슈(1)] 세계여성의날 특집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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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교실 안 수상한 성교육
(2) 페미니즘의 도전…학교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3) 스쿨미투 방아쇠를 당긴 것


[출처: 김한주 기자]

‘여자가 유혹해서 남자를 유인하는 게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울산의 D 고등학교 3학년이던 K씨는 지난해 외부 강사로부터 ‘엽기적’인 성교육을 경험했다. 지긋한 나이대의 여성 강사는 성폭력을 조신하지 못한 피해자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순결을 지켜야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수 있다. 너희도 결혼할 사람이 순결하면좋지않냐.삶에서가장중요한것이생식기이니잘지켜야 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뱉었다.

당시는 학교 현장에 미투운동이 번져나가던 때였다. K씨는 “반 친구들도 모두 문제라고 느낄 만큼 이상한 수업이었다. 학교 측이 준비한 거니 믿고 따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들었는데, 당시 미투도 그렇고, 문제라고 느끼면 제 때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라고 말했다.

같은 반 P씨도 불쾌하긴 마찬가지였다. 해당 강사는 “반 이상의 남성이성매매를한다.이자리에있는너희들도둘중한명은 성매매를 할 것”이라며 남학생을 향해서도 문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P씨는 “남자인 저도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여학생들은 더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성폭력도 여자가 잘못해서 일어난 거라고 했고, 성매매도 성을 판 여성의 잘못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한 친구는 그 수업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마음 고생을 꽤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K씨와 P씨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담임교사를 찾아가 문제의 성교육 수업 내용을 자세하게 전달했고, 담임교사 진재희(가명) 씨는 다른 반의 사례까지 수집했다. 10개 반에서 이뤄진 수업 내용은 가관이었다. 같은 수업자료를 사용했던 탓에 문제적 발언은 다른 반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됐다. K씨와 P씨의 반을 포함해 5개 반에서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 발언 사례가 나왔다.

A반 ‘출산은 꼭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면 4명은 낳아라. 여자가 아이를 안 낳으면 사회가 망한다.’ ‘예쁜 여자를 보면 할아버지도 어린 남자도 그런 마음이 생긴다. 남자의 뇌 구조가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겼다. 성폭력을 안 당하려면 여자가 조신하게 옷을 입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B반 ‘남자는 여자에게 잘 질리므로 여자는 예쁘게 꾸미고 있어야 한다. 여자가 잘 꾸미면 남자도 성매매를 안 한다.’

C반 ‘성폭행의 경우 옷을 벗거나 야하게 입은 여자의 잘못도 있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는 마치 전쟁터에 가서 다친 사람처럼 XX이다.’

D반 ‘가만히 있으면 성폭행 당할 일도 없다. 가만히 있어라.’

학교는 117학교폭력긴급지원센터를 통해 성희롱 사건을 접수하고, 각 반의 학생대표를 불러 의견을 모았다. 학생대표들은 사과와 재교육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도 어려웠다. 문제의 강사들은 사과하는 자리에서 ‘자식 같아서 그랬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니 이해해 달라’는 등의 말을 했다.

교사 진재희 씨는 “이런 식의 남존여비를 강조하는, 아주 오래된 성교육 자료를 토대로 한 교육이 아직도 현장에 남아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며“이번에 학생들의 신고로 제동을 걸 수있게 됐지만, 다른 학교는 그냥 넘어간 곳도 많다”고 우려했다. 진 씨는 “울산시청에서 추천해준 단체였지만, 강사진은 학교에 제출한 명단하고도 달랐다. 단체에서 강사가 모자라자 전국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모이게 한 것”이라며 “교육청에서 성교육 시간만 확보해놓고, 성교육 강사풀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제가 된 외부 강사들은 울산시 양성평등 공모사업에 선정된 ‘다문화가정자녀후원회’ 소속이었다. ‘다문화가정자녀후원회’ 소속 강사들은 D고등학교를 포함해 5개 고교에서 110여 시간 성교육 강의를 진행했다. 울산시는 해당 단체에 경위서를 받는 한편, 내년 공모사업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D고등학교 학생 대표들이 요구했던 재교육도 이뤄졌다.

순결운동본부?

학생들에 따르면 이들의 수업 자료엔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라는 단체 이름이 적혀있었다. ‘다문화가정자녀후원회’와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이하 순결운동본부)’는 모두 통일교 산하의 단체들이다. 다문화가정자녀후원회의 현 원장과 전 회장은 통일교의 장로이기도 하다. 통일교는 교리적 이유로 인종 간의 결혼을 장려하면서 꾸준히 합동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다문화 관련 행사와 사업도 활발하다. 다문화가정자녀후원회도 통일교의 이러한 사업 안에서 추진됐다.

한편 순결운동본부는 1998년부터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시행하며 순결을 강요해 논란이 됐던 곳이다. 이 단체는 순결강의를 한 뒤 순결다짐선서를 따라하게 했다. 순결사탕과 은장도 그림이 그려진 순결책받침 등은 그 당시 학생들에게 나눠준 순결의 아이템이었다. 2000년대 들어 학부모들의 반발로 다짐선서 등을 없앴지만, 순결운동본부는 여전히 공교육 현장에서 성교육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순결운동본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는 사업방향을 성 가치관 교육으로 전환하고, 학교 현장에서 2008년 152회, 2009년 244회, 2010년 487회, 2011년 607회, 2012년 693회, 2013년 874회, 2014년 682회, 2015년 440회, 2016년 222회, 2017년 309회의 강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결운동본부에 다문화가정자녀후원회 강사의 성희롱 사건과 교육 자료를 문의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역에서 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는 기술가정교사 B씨는 “수도권외 지역의 강사 풀이 적다보니 성교육을 하는 종교 단체들에 문의가 몰린다”며 “신부님이 보건교사 연수에서 성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순결을 강조하는 등 문제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실한 성교육을 만드는 구조

학생은 나날이 권리의 주체가 돼 가는데 학교 성교육은 여전히 ‘금기’와 ‘금욕’, ‘문제’를 중심으로 청소년의 성을 다루고 있다. 실제 상당수의 학교에선 학생도, 교사도 외면하는 실효성 없는 성교육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보건교육 등과 연계해 초중고교에서 학년 당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을 실시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입시를 위해 성교육을 자습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생물, 보건, 체육 등 관련과목수업때시간을쪼개어가르치기도한다.

보건교사가 성교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건교사 한 명이 모든 학급의 성교육을 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국내 보건 교사 배치율은 기간제 교사를 포함해 법정정원의 78% 밖에 되지 않는다(2017년). 이마저도 2016년 69%에서 보건교사 임용논란이 일어 크게 뛴 수치다. 또 기간제 교사 비율도 30% 내외여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성교육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에 따라 학교에선 성교육을 위해 외부 강사들을 수소문할 수밖에 없다. 성교육 강사의 자격이나 조건은 현재 거의 없다. 성교육 강사 관련 국가공인 체계도 따로 없다. 대부분 민간단체들이 커리큘럼을 마친 이수자에게 수료증을 발급해 주는 형태다. 구성애 씨로 유명한 ‘푸른 아우성’이나 사단법인 ‘탁틴내일’, 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 각 지역의 청소년성문화센터 같은 단체들이 직접 성교육 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순결운동본부도 성교육 강사 양성에 나서고 있다. 3단계로 진행되는 강사양성 과정은 1박 2일동안 기본 성지식, 강의교수법, 청소년의 이해, 성문제 현황, 강의시연실습 등을 익히고 2단계에서 전문 강사의 학교 강의를 최소 3회 참관한다. 마지막 3단계에선 강의안 설계, 타강사와 정보 공유 및 토론을 거쳐 강사 위촉장이 수여된다.

국가공인 체계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한 업체가 ‘성교육 상담사’ 자격증을 만들어 돈벌이를 시도하다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8년 한 자격증 시험교재 판매업체는 자격증만 따면 성교육센터나 성상담소를 개업할 수 있고, 학교에 방과후교사로 취직할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한 성교육 내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울산 지역에서 성교육 강의를 겸하고 있는 한 교과목 교사 B씨는 “지금 공교육에서 내실 있는 성교육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연간 15시간 이상 성교육하라고 매뉴얼이 내려오지만 괜찮은 강사들의 인력풀이 적고, 기준이 될 교육부 표준안 자체도 문제인 상황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따분하고 지루한 교육이 반복될 뿐”이라고 말했다.

표준도 못 되는 ‘성교육 표준안’

교육부도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성교육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이에 6억 원을 들여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었지만 2015년 학교에 배포될 때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여성단체들은 이 표준안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고, 성적 다양성과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제하고 있다고 봤다.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강화해 오히려 성폭력 예방을 어렵게 한다고도 지적했다. 폐기 요구가 거세고, 스쿨미투까지 터지자 지난해 3월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제3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개편하겠다고 선언했다. 교육부 등은 성폭력 대응 차원을 넘어 피해자 인권보장, 양성평등, 민주시민교육 관점을 반영해 2019년 상반기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보수적 종교계와 보수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어 보급을 놓고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동성애동성혼개헌반대국민연합 등 293개 단체는 기존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적극 지지한다며 8만 명의 서명을 교육부에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실력 행사를 하고 있다.

“성교육 시간이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진행돼도 워낙 기대치가 낮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한 고등학생의 말은 실제 학생들 모두가 공유하는 정서일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학교는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가장 많이 얻는 공간이다. 학교 성교육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학생은 48.9%에 달했다. 학생들은 SNS,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그 수치는 22.5%에 그친다. [워커스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