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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와 한정애가 두 번 죽인 ‘ILO 핵심협약’

“ILO 핵심협약 비준 책임을 ‘사회적 대화’로 떠넘겨...노동개악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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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가 13년 째 이행하지 않고 있는 ‘ILO 핵심협약(기본협약)’ 비준이 경사노위와 정부여당에 또 다시 발목 잡힐 상황에 처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개위)의 권고안에 이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 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ILO협약 원칙에서 대거 후퇴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양대노총은 경사노위 노개위의 권고안 및 한정애 의원의 법안이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15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국회헌법33조위원회와 노동법률단체(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등)가 공동주최한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촉구 노동법률단체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발제자로 참석한 윤애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대외협력부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0일, ILO 기본협약과 관련한 경사노위 노개위 공익위원의 3차 합의안이 발표됐다”며 “그 날은 민주노총 총파업 전날이었는데, 거의 모든 언론에서 ‘정부가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계에 다 내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마어마한 오보로, 공익위원 안은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매우 미달하는 내용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경사노위는 어떻게 ILO 핵심 협약을 훼손시켰나

앞서 한국정부는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이래로, ILO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단결권 및 단체교섭, 강제노동 금지 등 4가지 협약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ILO와 유엔 등 국제사회는 한국정부에 핵심협약 비준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지난 2017년 10월경에도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가 한국정부에 협약 가입을 권장한 바 있다. 이동우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사무관은 “당시 71개 권고안 중, ‘차별금지법’과 ‘기업과 인권’, ‘노조 할 권리’ 등 3가지는 매우 중요한 권고로 다뤘다”며 “이 세 가지 권고에 대해서는 한국정부에 18개월 이내에 이행정보를 따로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도 2017년 대선 후보 당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기본적 인권’으로서 국제사회의 기본적 약속인 ILO 협약은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대거 후퇴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9월 ILO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법을 정비하는 문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ILO 핵심 협약을 온전히 비준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 내용을 손 본 뒤, 입법 과정을 완료한 이후에나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지난해 7월 출범한 경사노위 노개위는 ‘ILO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우선 입법과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10월 경, 공익위원이 두 차례에 걸쳐 안을 마련했으나 경영계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경총은 2차 합의시도안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며 “양대노총은 만약 경총의 반대로 합의 실패 시 공익 측에 ILO 기본협약과 결사의 자유 위원회 권고에 충실한 공익위원안이 돼야 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1월 20일 노개위 공익위원 7인이 발표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관계제도 개선에 관한 공익위원 의견’은 1차로 내놓은 공익위원안 보다 대거 후퇴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공익위원은 1차와 3차에 걸친 합의안에서, 해고자, 실업자 등의 기업별노조 가입을 제한하지 않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임원 자격을 ‘재직 중인 근로자’로 한정하면서, 해고자 및 실업자의 노조 임원, 대의원 자격을 박탈하는 안을 내놨다. 윤애림 부위원장은 “이는 해당 기업의 종업원이 아닌 조합원의 조합활동권에 차별을 설정하는 것으로, 헌법 상 평등권 및 노동조합법 상의 차별대우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조치”라며 “또한 비조합원의 노동조합 임원 선출을 금지하는 노조법 제23조 1항을 폐지하라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권고에도 역행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한 노개위는 공무원 및 교원의 노조 가입과 설립, 운영이 자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퇴직한 교사, 공무원의 조합원 자격을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급 이상의 일반직, 별정직 공무원 및 소방공무원의 노조가입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 공무원노조법 상 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광범위한 조항들은 그대로 유지했다. 심지어 ILO가 여러 차례 권고했던 교사, 공무원의 일체 쟁의행위, 정치활동 법 조항의 폐지에 대해서는 어떤 개선안도 내놓지 않았다.

ILO가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권고했던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역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의 노사합의는 이를 무효로 하도록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윤애림 부위원장은 “심지어 국제사회가 십수 년간 권고했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노조 할 권리,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ILO 핵심협약 두 번 죽인 한정애 의원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심지어 경사노위 노개위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발의한 정부 입법안은 ‘노동개악’이라 불릴 만큼의 후퇴된 내용이 다수 포함 돼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기에는 초기업노조의 임원 및 조합원들의 사업장 노조 활동을 제한하고, 심지어 파견 및 용역,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활동도 제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정애 의원의 법안에는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이 제2항에 따라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목적, 시기, 장소, 인원 등을 정하여 사용자에게 통보하여야 하고 사용자는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은 제24조제2항, 제29조의2, 제41조제1항에 따른 조합원 수 산정에서 제외한다 △해고된 조합원이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종사자로 본다고 명시 돼 있다.

사실상 비종업원인 조합원 뿐 아니라 산별, 지역별 노조 같은 초기업노조의 임원 및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해고자의 조합활동은 중노위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로 한정되며, 해고자 등의 비조합원은 근로시간 면제한도 산정,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등에 따른 조합원 수 산정에서도 제외된다. 윤애림 부위원장은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합원 과반수 이상은 초기업단위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정애 의원의 법안은 해고자 뿐 아니라 초기업단위 간부들의 사업장 내 조합활동과 조직화를 제한하는 것으로,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산별노조 활동에 큰 제약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서 “특히 사내하청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만약 이 조항이 통과되면 파견, 용역,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사업장에서 조합활동, 단체행동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비정규직 노조 활동에도 엄청난 제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한정애 의원의 법안에는 노조 전입자에게 근로시간면제한도를 초과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율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돼 있다. 반면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던 노조 설립신고제도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원청의 사용자 책임에 관련한 내용은 법안에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ILO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관계법 개악’ 밀어붙이나

ILO핵심 협약 비준에 반대하고 있는 재계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입법안을 요구하고 있다. 경사노위 노개위는 이와 관련해 올 1월 말까지 일괄 타결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ILO 핵심 협약에 따른 입법안은 재계와의 ‘사회적 합의’로 또 한 번 후퇴될 수밖에 없다.

유정엽 정책실장은 “정부와 공익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ILO 기본협약 비준에 반대하는 사용자측과의 타협을 위해 사용자측이 요구하는 의제에 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며 “최근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관련해서는 사용자 요청사항을 어느 정도 반영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논의 흐름에 대해 한국노총은 매우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총은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금지하며,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재 최장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예방적 직장폐쇄를 허용하고, 심지어 ‘부당노동행위’ 제도까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원천 봉쇄하고, 어떤 부당노동행위에도 사업주를 규제할 수 없도록 해 달라는 요구다.

윤애림 부위원장은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한국정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 공약의 책임을 ‘사회적 대화’로 떠넘겨왔다”며 “또한 경사노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국제노동기준에 위배되는 방향의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본협약 비준을 빌미로 오히려 노동관계법 개악마저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