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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법 개정안 논의 다시 미룬 국회…연내 통과 사실상 어려워져

유족과 노동자들 국회 쫓아가 압박… “국회의원들 제발 정신 좀 차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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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을 두고 야당의 반대로 법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원청의 책임 확대, 위험 직무 도급 제한을 골자로 하는 산안법 전면 개정안은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 심의에서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27일 본회의가 하루 남아있지만 여당과 정부가 약속했던 산안법 개정안 연내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안법 개정안 통과는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았다.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처음부터 ‘엉터리 법안’이라며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고,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계속 이견을 표출하며 법안 통과를 막았다.

26일 산안법 전면 개정안 통과 결렬을 알린 고용노동소위원장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각 당의 입장을 내일 아침까지 정리해서 오전 9시에 속개하기로 합의가 됐다. 공청회든 공개토론이든 의견수렴을 다시 한번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며 “연내처리라는 ‘기한’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내고 “자유한국당이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과 매달 2백 명씩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국민을 끝내 외면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걷어차 버리려 하고 있다”라며 “자유한국당은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뒤집은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과 모든 산업재해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지금 당장 법안 개정에 합의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재벌대기업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축소 요구는 쌍수를 들고 받들더니, 국민의 죽음을 막자는 법에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어 무산시켜버리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대체 뭐하는 집단인가”라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 앞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이해득실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루종일 환노위 회의실 지킨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국회 제발 정신 차려라"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지난 11일 사망한 고 김용균 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죽음이 줄을 잇고 있는데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고 김용균 씨의 유족과 노동자들은 국회 앞에서 필리버스터, 결의대회 등을 진행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26일 오후 2시 30분,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를 강하게 규탄했다.

26일 오전부터 회의실 앞을 지킨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본인 자식들이 두 동강이 나서 죽었으면 그렇게 대처할 건가?”라며 “나는 다 잃었다. 아이가 죽고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국회의원들) 제발 정신 좀 차려달라. 이 나라 정치인과 대통령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죄인 아닌 사람이 있나? 뭐가 잘났다고 돈만 생각하나. 이게 무슨 나라인가. 고작 몇십 억 벌금이 왜 쟁점 거리가 돼야 하나?”라며 법통과를 호소했다.

환노위원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김미숙 씨를 찾아와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태의 시민대책위원장도 “노동자들이 사망할 때마다 ‘법 바꾸겠다’ ‘다시는 사람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얼마나 더 죽어야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겠냐”라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금지 △산안법 전면 개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제정을 촉구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결의사에서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이윤이 떨어지고, 기업주들이 의욕을 상실해서 공장문을 닫는다고 한다. 24살 청년의 목숨값을 운운하며 기업의 이윤을 이야기하는 저들이 민의를 대변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어제도 5명씩이나 목숨을 잃었다. 이런 연속된 죽음을 끊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진정한 촛불정부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더 이상의 죽음을 막는 최소한의 조치는 이 법을 통과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나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산업안전법 제정된 지 28년이 지났다. 그동안 고용형태, 산업구조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산안법만 그대로다”라며 “지금 논의되는 산안법도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법안인데 이마저도 국회 문턱 앞에서 좌절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개정안의 첫 번째 요구는 도급 인가만으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니 주요 사업만이라도 도급을 금지해달라는 것이다. 이번에 계류된 법안은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도급금지 내용을 담고 있다”라며 “지금의 미비한 처벌로는 어떤 사업주도 비용을 들여 산업안전과 보건에 관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 원청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주는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게 이 개정안”이라고 강조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황 씨는 “위험하고 나쁜 것은 모두 하청업체, 협력업체로 보내고, 갓 졸업한 어린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원청회사는 맛있는 과일만 따 먹고 있다. 그런데도 원청 대기업은 산재보험료를 몇십 억 할인 받아 배를 불리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법안 통과에 어떤 국회의원들이 반대했는지, 그 지역구 주민들은 다시는 국회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지금부터 사전 작업 철저히 해야 한다. 이 제도를 고칠 때까지, 반대한 국회의원들이 꼭 낙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환노위는 27일 오전 9시 고용노동소위를 열어 산안법 개정안을 논의한 후 10시 30분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