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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용산참사’…한강 투신 철거민 열사 대책위 꾸려져

강제철거 당한 뒤 빈집 전전하던 열사…길에서 나눠주는 광고 전단에 유서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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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아들, 외아들 그거 하나가 나의 보물이고 전부입니다. 걔만 살려주면 됩니다. 내 아들만 살아 돌아오게 해주세요. 나의 전부를 잃었는데 뭐가 필요합니까.”


60살의 어머니가 37살에 고인이 된 아들을 되돌려 달라고 마포구청 앞에 섰다. 지난 9월까지, 아현2 재건축구역의 세입자였던 어머니와 아들은 3번의 강제집행 끝에 빈털터리로 쫓겨났고, 3개월 만에 영영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고 박준경(37) 열사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건 4일 오전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열사는 3일 한강에 투신해 하루 뒤인 4일 오전 11시 25분쯤 한강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보다 앞선 3일엔 아들의 유서가 가방, 휴대폰과 함께 발견됐다. 광고 전단에 휘갈겨 쓴 유서엔 어머니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출처: 빈민해방실천연대]

“저는 이대로 죽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전철연 회원과 고생하시며 투쟁 중이라 걱정입니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 야위어 가시며 주름이 느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못난 아들 먼저 가게 되어 또 한 번 불효를 합니다.” “어머니의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며 항상 감사하고 사랑했습니다.”

제발 마음을 바꿔 먹고 어딘가에서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길 기다렸지만, 아들은 결국 한강에 몸을 투신했다. 강제집행의 기억과 끝이 될 줄 몰랐던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털어놓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절규로 바뀌었다. “11월 30일 강제철거가 또 있었습니다. 아들한테 오전 10시 넘어서 문자가 왔는데 또 쫓겨났답니다. 쫓겨난 아들에게 추우니까 찜질방에 가 있으라고 5만 원을 줬습니다. 돈 떨어지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오라고 하고 헤어졌습니다. 나는 여기 있어야 하니까 너는 찜질방에 가 있으라고 했는데, 거길 안 가고 딴 데 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전국철거민연합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모자가 살던 월셋집에 강제철거 시도가 있었고, 9월 6일 그 집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열사의 어머니에 따르면 여성 용역 3명이 어머니를 이불로 둘둘 말아 밖으로 옮기려고 했다. 어머니가 저항하자 남성 용역 2명이 더 들어와 어머니를 둘러맸다. 어머니와 열사는 그때부터 따로 지내기 시작했다. 열사는 거주할 곳이 없어 개발지구 내 빈집을 전전하며 생활해왔다. 그러다 기거하던 빈집마저 폭력에 의한 강제집행을 당했다. 열사는 세 번째 강제집행 후 38시간을 거리를 전전하며 추위에 떨다 결국 목숨을 끊었다.

전철연 등 긴급기자회견 열어 “사회적 타살”로 규정


빈민해방실천연대(전국철거민연합,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오후 2시 마포구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마포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의 죽음은 국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재개발 조합 인·허가자이자, 관리·감독권자인 마포구청이 살인적인 강제철거를 방치한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마포구청의 책임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은 “우리는 고 박준경 씨를 이제 열사라 부른다. 오늘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면 전국철거민연합과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열사 비대위를 결성할 것이다. 비대위는 기필코 사회적 타살을 만든 책임자를 처벌하고 가난한 서민들의 주거 생존권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영찬 민주노점상연합의장은 “상식 이하의 폭력적인 철거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철거민과 상인이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그 누구도 오지 않는다. 강제철거를 방관하던 경찰이지만 지금은 마포구청을 지키기 위해 떼거지처럼 와있다. 철거민들이 용역에게 두들겨 맞을 때 본인들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던 공무원, 경찰이 열사를 죽인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희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대표는 “10년 전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을 하루도 안 돼 진압하다가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를 누군가는 학살이라고도 한다”라며 “박준경 열사도 살다가 몸부림을 치다가 강력한 공권력에 맞서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하지만 스스로 죽은 건가 묻고 싶다. 10년 전 국가 폭력이 용산 철거민을 죽였듯, 이번 사건 역시 마포참사, 마포학살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재건축조합, 마포구청, 서울시를 차례대로 짚으며 각각의 책임 문제를 따졌다. 이 집행위원장은 “10월 말, 11월 초 서울시는 마포구청에 공문을 보내 재건축 조합이 강제집행 48시간 전에 구청에 집행상황을 통보하고, 구청은 이를 서울시에 알려 인권지킴이가 파견될 수 있도록 주문했다. 그런데 조합은 계속 이 조치를 이행하지 않자, 서울시는 강제집행 인허가를 지키지 않는 조합에 대해 철거 중지 명령을 내리거나 임대 취소 명령을 내리는 행정 조치를 취하라고 했었지만, 마포구청은 전혀 듣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 역시 행정명령을 거부하는 구청이나 조합에 대해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였다”라며 “공문 두 장을 보낸 것 말고 무엇을 했나 묻고 싶다”라고 비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서울의 많은 재개발지역이 뉴타운 구역을 해지했다고 하는데 왜 이곳은 그대로 강행됐는지, 도대체 어떤 힘들이 작동됐는지 따져야 한다”라며 “2003년 이후 이곳을 거쳐 간 구청장, 국회의원들의 책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마포구청장은 아현 지역 강제철거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철거를 전면 중단하고, 현재 남아있는 용역들을 철수시킨다는 방침을 우선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 기자회견이 끝나고 빈민해방실천연대, 용산참사 진상규명회 등은 마포구청장을 면담하고 이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활동가는 “구청에서 직접 사람을 파견해 용역들을 정리한다고 했다. 우리 쪽에선 책임자 처벌 등을 강하게 이야기했는데 청장은 주거권과 관련해 고민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한 상태다. 면담 결과는 정해지지 않았고 계속 소통하면서 조정해야 할 부분같다”라고 밝혔다.

열사의 빈소는 동신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열사의 장례와 관련한 부분은 아직 논의 중이다.

고 박준경 열사 유서

전 마포구 아현동 572-55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저는 이대로 죽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전철연 회원과 고생하시며 투쟁 중이라 걱정입니다. 어머니도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 야위어 가시며 주름이 느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니께 힘이 되어 드려야 했는데 항상 짐이 되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못난 아들 먼저 가게 되어 또 한 번 불효를 합니다. 어머니의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며 항상 감사하고 사랑했습니다. 또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