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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와 페미니즘이 다시(?) 만난 세계

‘다만세’ 부르는 2번 선본, “상징적 차원의 출마 아냐, 목표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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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전교조 위원장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6일, 인천을 시작으로 세 후보팀은 전국을 돌며 합동유세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26일엔 ‘격전지’라 불리는 서울에서도 합동유세가 있었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3명의 위원장 후보가 마이크를 잡았다. 법외노조, 성과급 및 교원 평가, 스쿨미투, 전교조 조합원 수 감소 등 전교조의 현안을 두고 세 후보의 진지한 공약들이 이어졌다. 후보별 연설-질의 및 응답이 이어지던 시간, 색다른 광경이 연출됐다.

기호 2번 김성애 후보의 연설 직전, 서울지부 초등중부성북지회의 박선영 씨가 지지발언을 하겠다고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처음으로 참여했던 전국 참실(참교육실천) 대회에서 전교조를 ‘순수한 처녀’ ‘악랄한 마귀할멈’ 등으로 비유했던 원광대 총장의 발언에 단호히 일어서서 문제를 제기한 김성애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전주 퀴어문화축제의 조직을 돕고 전교조 부스를 마련해 성소수자와 연대한, 그래서 서울지부의 교사들도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와 영감을 준 양민주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라며 두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밝혔다.

박 씨는 이어 “조직이 페미니즘의 관점을 갖지 못한다면 성평등, 장애인권, 유아교육, 직업교육, 기간제 교사의 노동권 등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맡겨질 것”이라며 “교사를 단지 같은 욕구를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보지 않으려면, 그 안의 차이와 위계를 돌아봐야 하고, 그 시작은 바로 페미니스트 위원장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애 위원장 후보는 “페미니스트 위원장, 수석부위원장이 당선됐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지 상상해보라”며 “무수한 여성들은 환호하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시민단체, 인권활동가들 격렬히 환영할 것이다. 당황한 청와대와 교육부는 이 거침없는 행보가 어디서 왔는지 조사하겠지만, 우리의 활동을 막을 순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애 위원장 후보의 연설이 끝나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다. 2016년 여름, 학교의 독단적인 미래라이프대학 졸속적인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투쟁에 나선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경찰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였다. 이어 2번 후보 선본 소속 여성들이 양옆으로 줄을 서 노래를 시작했다. 이를 본 모 교사는 “지난 전교조 위원장 선거 기간엔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이라며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알 수 없는 미래와 벽/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상처 입은 내 맘까지/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멈춰져 버린 이 시간.”

이 여성들은 2번 후보팀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타 선본에선 페미선본을 두고 상징적이고 문화적 차원의 출마라고 했지만, 우리의 목표는 당선이다” “꽃이 되길 거부하고 불꽃이 되어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완벽한 민주주의를 학생들과 함께 꿈꾸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2번에 투표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데리고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전교조이면 좋겠습니다. 2번만이 아이와 함께 활동할 수 있습니다.”

대세를 따르라…그 내용은?


미투운동은 학교와 전교조까지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학교는 현재 미투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로, 빗발치는 스쿨미투에 전수조사와 핫라인 설치까지 요구되고 있다. 전교조 위원장에 출마한 세 후보팀은 모두 ‘페미니즘’ 이슈를 반영한 공약을 제시했다.

기호 1번(진영효-김정혜)은 △성교육 표준안 폐기, 성평등 교육법 입법화 △성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만들기 운동 △대안적 성평등교육교과서 개발과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쟁취 △여성부위원장 신설, 지부별 성평등 단협체결 지원 등을 공약했다.

기호 2번(김성애-양민주)은 전교조와 학교 현장 모두에 페미니즘 교육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집행부 50% 여성할당제 실시 △시도 지부 성평등 연수 연 2회 의무화 △성평등 규약 및 규정 정비 △활동가 육아 지원으로 경력단절 방지 △성평등한 민주시민교육 시행 촉구 △스쿨미투 위드유 공론화 등의 공약이 대거 포함돼 있다.

기존의 투쟁보다는 학교와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공약을 내세워, 후보 중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3번 후보마저 페미니즘에 대한 공약이 있었다. 기호 3번(권정오-김현진)은 △스쿨미투 운동 지원 △전교조 내 성인지 감수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연수 기획 운영 △경력 단절 여성조합원을 위한 대책 마련 등을 공약했다. 앞의 두 후보에 비해 포괄적인 공약으로, 권정오 후보에게 구체적인 안을 물어봤으나 “(당선 후) 추후 논의해나가겠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전교조 내 나이주의, 남성주의에 대해 각 후보들이 느끼는 편차

다만 위원장 후보들이 느끼는 전교조 내의 남성중심적 문화에 대한 문제 지점들은 조금씩 달랐다. 이날 이들에게 떨어진 공통질문은 ‘전교조 내의 나이주의와 남성 중심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평가하는지’였다.

기호 1번은 “나이주의 문화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남성 중심주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공통적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진단한다”라며 “의식변화를 위해선 지속적인 성평등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에 기호 2번은 “조직에서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 조합원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야 말로, 나이주의와 남성주의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라며 “여성 2030 부위원장제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라고 말했다.

기호 3번은 “지금의 전교조 조직 문화나 운영방식은 어린 나이의 자녀가 있는 남성 조합원도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며 “합법적으로 단체교섭을 해서 노조 활동을 일과 시간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느끼는 차별과 배제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전반적인 활동가의 열악한 ‘워라벨’을 꼬집으며 다소 동떨어진 답변이 나왔다.

학교 내 다른 차별 문제는?

학교 내 차별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빼고 말할 수 없다. 실제 학교 현장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중 가장 많은 약 40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 고용불안정 등에 시달리며 각종 폭력과 사고에 노출돼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실제 정규직 전환 심사에서 광탈 당하는 참사를 겪고 있다.

기호 1번은 기간제 교사들의 수당, 복무 등 차별 해소와 고용안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호 2번은 학교 내 비정규직, 교육청 직고용제를 내놨다. 기호 3번은 공보물에서 언급이 없었지만 지난해 전교조 중집 결정을 따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전교조 중집은 기간제 교원, 영어회화전문강사, 초등 스포츠강사 등 학교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이들은 영어회화전문강사나 초등스포츠 강사에 대해 ‘잘못된 교육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제도를 폐지하고 정규교원으로 배치해야 한다’면서도 ‘고용과 처우에 관해서는 정부와 당사자가 협의해 결정한다’고 밝혔다. 기간제 교원과 관련해선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기간제 교원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고용 안정 방안을 마련한다’고 했다.

한편, 전교조 위원장 후보 합동연설회는 오는 30일 충북지부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선거 운동은 투표 전날인 12월 4일까지 진행된다. 투표는 12월 5일 오전 8시부터 7일 오후 6시까지 3일간 투표구 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장소에서 치러진다. 투표 완료 후 지회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곳에서 개표가 이루어지며, 전교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8일 당선자를 공고한다. 만약 득표율 50%를 넘긴 후보가 없을 시, 선관위는 곧바로 12월 8일 결선투표를 공고하고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이 경우, 최종 당선 공고는 12월 14일에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