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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교수들은 캠퍼스를 떠나십시오

[워커스 페미니스타] 더는 침묵할 수 없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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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폭력은 위력이 작용하는 소위 ‘갑을 관계’에서의 성폭력을 일컫는다. 대학 사회에서 교수와 학생은 명백한 위력 관계에 있다. 교수는 학생에 대해 위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다.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은 결코 가해자의 일탈과 피해자의 불운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것의 근절을 위해서는 위력이 작동하는 권력 관계와 구조의 문제를 직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적 방편은 아직도 요원한 문제다.

2001년 서강대학교 K교수는 술자리에서 제자를 대상으로 폭언과 성희롱, 성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 A씨는 본인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사건 공론화와 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K교수와 학교 당국은 피해자를 회유함과 동시에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명예훼손과 강제추행으로 벌금 700만 원 형을 선고받은 K교수에게 교내 교원징계위원회에서 내린 처분은 안식년 기간 내 정직 3개월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안식년이 끝나고 돌아온 K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공동대책위원회가 활동해 마침내 K교수의 해임이 결정됐으나 교원징계재심의 신청 결과 만장일치로 복직됐다. 결국 피해자는 학교를 떠났지만 K교수는 학교에 남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강대는 그때 이후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는 올해 5월 인권주간 행사에서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미투 운동의 물결 속에서 A씨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지금 서강에 서 있는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17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메아리치는 살아있는 역사였다. A씨는 사건 이후 학내 성폭력 사건 징계 심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난 17년간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그 자신의 삶도 주체적으로 변화시켰다.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의 힘은 우리에게 큰 용기가 됐다. A씨를 만나고 우리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서강대 외에도 서울대, 한국외대, 이화여대, 국민대 등 대학가에서는 올해 초부터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들이 이뤄졌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학교 측에서는 징계위원회 결과를 공유하지 않거나, 징계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등 피해자인 학생들을 2차 가해의 불안 속에 떠밀었다. 17년 전 서강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연대해 K교수의 수업을 보이콧하고, 합당한 징계 절차를 다시 밟을 것을 요구했는데도 학교 측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해 함구했으며 교원징계위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번 가을학기에도 870여 명의 서강 구성원들이 연대해 K교수의 학부 강의를 폐강하는 데 성공했으나, 교수 수업권 보장이란 명목으로 K교수의 대학원 강의는 오히려 증설됐다. 우리는 피해자의 권리는 무시되고 가해자의 권리는 보장되는 불합리한 역사가 반복되는 데 저항한다.

서강대 K교수 사건과 서울대 H교수 사건을 보면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이 왜 ‘솜방망이 처벌’로 일단락되는지를 알 수 있다. 2001년의 서강대에서도 2018년의 서울대에서도 성폭력 교수에게 정직 3개월 처분밖에 내리지 못한 것은 ‘사립학교법 시행령’과 ‘교육공무원 징계령’ 때문이었다. 캠퍼스에서는 캠퍼스의 규칙이 작동하고, 그것은 결코 성폭력 피해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서강대뿐 아니라 여러 대학의 캠퍼스를 활보하는 K교수들은 학교 본부와 교육부의 가호를 입는 데 반해, 정작 피해자인 학생들은 떠밀리듯 학교를 떠난다. 최근 교육부의 교원 성비위 징계제도 개선 추진안마저도 반쪽짜리 해결책일 뿐이었다. 사립학교 시행령과 교육공무원 징계령에 대한 개정은 없었고,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는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 위원을 최소 2인 이상 포함하고 교원 징계 결과를 학생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동시에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전한 상담을 담당하는 학내 공식 기구의 설립과 내실화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 현행 교원 징계 관련 법령 개정과 더불어 학내 인권센터 설립 의무화가 한 방편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올 하반기부터 ‘전국 대학생 네트워크(준)’에서 이 같은 요구 사항들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서강대도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투쟁의 대열에 함께 할 것이다.

혹자는 우리에게 왜 17년 전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에게 다시 묻는다. 왜 17년 전의 K교수가 아직도 교정에 있냐고. 우리는 대학가의 수많은 K교수들이 17년 뒤에도 캠퍼스를 활보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17년이나 지난 성폭력 사건을 재공론화한 것은 단지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삶을 담보로 해야 하는 피해자의 폭로와 악마화된 가해자 개인의 처벌로 일단락되는 사건의 연쇄를 거부한다. 우리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학교 본부와 교육부가 경각심을 갖고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워커스 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