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응답하라!

[워커스 서평]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나름북스) 번역 출간을 앞두고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작년 10월에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나름북스, 2017)이 발간된 이후, 9개월 만에 려도(呂途, 뤼투)의 두 번째 저서인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中國新工人: 文化與命運)를 한국 독자들에게 번역해 소개하게 됐다. 지난 번 책에서 이미 말했듯이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에 관한 이해는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를 읽는 하나의 창(窓)이다.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이 중국 신노동자가 처한 사회구조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국에서 ‘노동’이라는 문제가 갖는 중요성과 복잡성을 드러냈다면,1 이번 책은 신노동자들의 일과 생활, 그리고 삶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즉 신노동자들의 ‘삶 이야기’를 통해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통제가 공장과 일상생활 속에 어떻게 침투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신노동자들에 대한 ‘문화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패권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어떻게 순응하고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저자가 말하듯이 그 궁극적 목적은 일종의 ‘문화비판’을 통해 신노동자 개인과 집단의 주체성 형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려도에게는 이 책의 집필 자체가 신노동자들에게 개인의 행복과 집단의 출로, 그리고 사회의 진보 및 발전을 연결해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활로를 모색하려는 ‘문화적 투쟁’이다.

[출처: 나름북스]

지난 번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이 국내에서 출간된 이후, 의외로 과분할 정도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주목이 한편으로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오늘’을 ‘한국의 어제’로 여기며, 심지어 ‘한국의 오늘’로서 ‘중국의 내일’을 위한 훈수를 두려는 인식에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신노동자를 비롯한 중국 인민의 지난한 역사적 실천 과정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이들의 삶과 투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성찰할 기회마저 빼앗는다. 그렇기에 중국 신노동자의 삶과 문화에 대한 분석과 사유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고자 한 이 저작의 의미가 더욱 엄중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말처럼 대화는 ‘사상의 표현이자 충돌’이다. 가깝고도 먼 한국과 중국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마주침으로써,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가 있기에 이번 번역 작업의 의의는 단순히 중국어 활자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화와 마주침의 매개자로 서로 간에 원활한 소통의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의 유통을 촉구하는 일종의 ‘매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려도의 ‘말 걸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와 사유지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려도의 연구방법 혹은 학문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이 책은 신노동자들의 ‘삶 이야기’와 ‘문화 체험’에 대한 분석을 기본으로 한다. 즉 문화는 개인과 사회의 ‘총체적 생활방식’이라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정의에 입각해, 노동자의 실제 삶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문화적 상태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신노동자에 대한 상상에 기초한 희망적 낙관과 절망을 동시에 경계한다. 그리고 일과 생활 속에 용해돼 있는 자본주의 문화와 이를 내면화한 신노동자의 사상적 단절 및 표류를 철저하게 파고든다.

저자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가지 생각에 기초해 있다. 하나는 비록 오늘날 자본의 헤게모니가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 속에 침투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장소’는 여전히 ‘인간 해방’을 위한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사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야말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비판과 성찰의 출발점이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신노동자의 삶 이야기와 문화체험에 주목하며,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되뇌도록 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하기’와 ‘되뇌기’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구축’과 ‘성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앞서 말한 저자의 학문적 태도는 ‘이론(지식)-실천(윤리)’의 문제를 소환한다. 비판은 구축의 전제이며, 진정한 비판은 행동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신노동자 집단의 문화적 실천과 현실을 단순히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머물지 않고, ‘지식 생산’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들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고 진단함으로써 새로운 주체성 형성과 나아갈 출로를 함께 모색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신노동자 집단의 고난과 처절한 몸부림에 대한 치밀한 분석뿐 아니라, 이를 마주한 저자의 곤혹과 울분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노동자들을 몰아세우고 ‘계몽’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학문의 객관성을 저해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드워드 톰슨의 말처럼 “이 세계는 하나의 ‘문화적 전장’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는 일종의 총체적 투쟁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의 ‘이론-실천’ 작업은 그 자체로 신노동자들과 함께 길고 치열한 ‘문화적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문화적 선택을 할 것인지,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호일봉(胡一峰, 후이펑)이 추천사에서 말하듯이 “각성한 개인만이 비로소 참된 주체이며, 진실과 대면한 개체만이 집단의식과 주체성, 문화와 운명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북경 교외의 ‘피촌’(皮村)이라는 마을에서 전개되고 있는 ‘북경 노동자의 집’(北京工友之家) 활동가들의 실천과 고뇌를 통해 ‘신노동자 집단의 문화적 투쟁’을 보여준다.2 저자 자신도 마을 활동가의 일원으로서 수행한 이 작업은 단체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업종과 지역 나아가 국경을 넘어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와 응답을 촉구하는 ‘외침’으로 읽어야 한다. ‘북경 노동자의 집’은 2012년 5월에 설립됐으며 “신노동자 집단의 문화 구축, 다양한 교육 활동, 공동체 경제 및 상호 협력적인 연합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종의 코뮌公社을 지향한다. 이들은 “우리의 문화가 없으면 우리의 역사가 없고, 우리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하에 노동자들의 현실적 생활과 필요에 기반한 문화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를 문화운동의 근거지로 삼아 신노동자 문화를 창도(唱導)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코뮌의 이상(理想)을 개인과 조직, 그리고 사회적 차원 간의 유기적 결합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지향은 ‘북경 노동자의 집’ 총 간사인 손항(孫恒, 쑨헝)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반드시 더 높은 차원의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예컨대 전체 노동자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사상 활동이 그러하다. 또한 사회적인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 조직 자신의 발전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소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물론 자기 발전도 똑같이 중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기초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모순과 통일의 과정이다. 다시 말해 조직 자신도 발전해야 하지만, 발전의 목적이 ‘북경 노동자의 집’을 위한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집’의 역사와 가치의 의미는 노동자를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지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북경 노동자의 집’의 코뮌 건설 운동은 공허한 이론이나 구호가 아니며, 모든 활동가들의 장기적인 실천과 경험이 응축된 ‘문화적 전투’이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으며, “막막함과 좌절, 고민과 행동”이 뒤엉켜 있다. 저자는 이들의 고난과 도전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노동자 계급과 사회문화의 창조”를 갈망하는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의 참전을 촉구한다. 고통과 불안에 신음하는 목소리만 도처에서 들려올 뿐, 이에 대한 응답은 잘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만국의 노동자들은 ‘피촌 정신’에 과연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세계 노동자의 운명도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전태일을 그토록 동경하던 저자가 2015년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내게 했던 말을 다시 새겨본다. “당신이 중국 신노동자의 현실과 미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세계 노동자의 운명에 주목하는 것이고, 이것은 내가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유다.” 부디 저자의 애끓는 외침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전달되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응답들이 터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워커스 45호]


[각주]
1.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 옮긴이의 말에서 중국에서 ‘노동’이라는 문제가 갖는 위치와 함의를 중국 노동체제의 특성(호적제도의 변형 및 지속, 단위체제의 해체)과 노동자 정체성의 변화(농민공에서 신노동자로의 변화)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했다.

2. ‘북경 노동자의 집’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이창휘·박민희, “쑨헝: 노동자의 집을 짓는 거리의 가수”, 《중국을 인터뷰하다》, 창비, 2013 ; 김미란, “중국 노동자문화운동의 현장, 피촌 방문기”, 《황해문화》91호, 새얼문화재단,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