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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원은 ‘통일’과 ‘저임금’

[워커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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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남한 어린이들의 공통된 소원은 ‘통일’이었다. 누군가가 “네 소원은 뭐냐”고 물으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대답을 주문처럼 외웠다. 가끔은 학교에서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니 그러려니 했다.

과거 ‘한민족’이라는 모호한 통일 구호가, 이제는 ‘경제 협력’이라는 실용적 구호로 옮겨가고 있다. 스마트학생복이 지난 5월 4일부터 약 10일간 초, 중, 고교생 5274명을 대상으로 남북 통일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73.1%가 통일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 영향’을 선택했던 응답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인 36%가 ‘북한 내 위치한 지하자원 개발’ 때문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높은 비율인 21.9%는 ‘관광자원을 통한 수익 증가’를 꼽았다. 통일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 32.7%는 ‘빈민 구제로 인한 세금 및 인력 소비’를 주요 이유로 선택했다.

이 같은 경향은 정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근거 없는 주입식 교육에서, ‘경제적 효과’라는 달콤한 구호로 선전홍보의 방향을 바꾼 탓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문재인 대통령은 ‘신경제지도’를 펼쳐들었다.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에는 ‘남북 경협’에 대한 핑크빛 미래가 피어올랐다. 개성공단 재가동을 비롯해, 통일경제특구 조성, 경의선과 경원선을 중심으로 한 경제, 산업 및 관광, 물류 개발벨트 조성 등. 통일만 되면, 아니 굳이 통일이 안 되더라도 남북 경제협력 확대로 무궁무진한 일자리가 생겨나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과연 ‘통일’에 가까워져 올수록 우리의 먹고사니즘은 나아질 수 있을까. 남북 경제협력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내다봤다.

재계의 소원은 통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대하는 기업들의 행보는 꽤 민첩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판문점 선언 한 달여 전인 지난 3월 14일, ‘중소기업 중심의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현재 한국경제는 지속 발전이 가능한 신 성장 동력과 발전 공간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며, 남북경협 활성화와 평화통일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홍순직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중소제조업계가 높은 인건비와 임대료, 물류비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경영 여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며 “남북경협은 중소기업에게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가격경쟁력을 제고하고 산업설비 및 기술의 생명주기를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에게 북한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대비 높은 생산성이다. 남북 관계 악화로 인한 거듭된 공단 폐쇄와, 이에 따른 리스크 증가를 감내하면서까지 개성공단에 입주하고 싶다는 기업주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1년 반이 경과한 지난해 6월.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개성공단이 재개 될 경우 재입주를 하겠다는 기업은 무려 94%에 달했다. 무조건 재입주 하겠다는 비율은 36%, 재개 조건 및 상황을 보고 재입주 하겠다는 비율은 58%였고, 재입주하지 않겠다는 비율은 6%에 그쳤다. 재입주 이유로는 절대 다수인 84.7%가 ‘인건비 대비 높은 생산성, 물류비 등 높은 경쟁력’을 꼽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이미 2015년 ‘북한개발 마스터플랜’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북한 노동력 재교육을 포함한 인적자원의 개발 및 활용, 북한 자원을 활용한 산업개발, 북한 광물자원 개발, 노동집약산업의 진출 등을 위한 계획이다. 전경련은 판문점 선언 직후인 지난 5월 8일, ‘한반도 신 경제비전과 경제계의 역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북한 시장진출 방안을 모색했다. 세미나에서 삼정KPMG 대북비즈니스지원센터는 북한 인프라, 건설 산업 진출 전략을 모색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 협력사업대상지역 등의 철도 및 도로, 인프라를 전액 무상원조로 개발한 후 역세권 개발사업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민간 자본 및 건설사가 참여해 북한 내륙 인프라를 건설하고 시설 간 연계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이 자리에서 남북 경제통합이 이뤄질 경우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생산유발액은 42조3000억 원, 부가가치유발액은 10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자리는 12만8000개가 창출될 것이라 전망했다.

[출처: 김용욱]

기업은 ‘천국’ 노동자는 ‘저임금’

남북 경제협력에 따른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선전은 넘쳐나지만, ‘좋은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북한의 저임금 노동을 고착화해, 남한 일자리를 하향평준화하려는 의도까지 보인다. 지난 5월 10일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경기도에 ‘북한공단’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개성공단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300달러 내외의 임금을 1000달러까지만 올려줘도, 해외로 이전한 한국공장이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한 최저임금의 70%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최저임금 위반 특별경제구역’을 만들자는 셈이다.

실제로 남북 경제특별구역인 ‘개성공단’은 기업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낮은 토지 분양가, 저렴한 물류비용, 무관세 및 세제 혜택 등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는 124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사실상 개성공단은 대기업 ‘하청기지’의 성격이 짙다. 2015년 기준, 개성공단 노동자 월 평균임금은 141.4달러. 한화로 15만3천 원 가량이다. 2006년 60.3달러(6만5천원)로 시작해 매년 약 5%씩 임금이 인상됐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 따르면, 130달러~140달러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5%로 가장 많았고, 8.3%는 120~130달러 미만을 받고 있었다. 임금수준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도 적다. 베트남의 월 평균임금은 193달러, 중국은 659달러다. 물론 개성공단에도 최저임금이 있다. 2006년 월 최저임금은 50달러였고, 2015년에는 74달러까지 올랐다. 개성공업지구법에 따르면, 월 최저임금은 전년도 대비 5%를 초과해 높일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은 개성공업지구 관리기관이 중앙공업지구 지도기관과 합의해 결정토록 하고 있다. 개성공단 내 남측과 북측이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2015년 북한은 노동자 최저임금을 5.18%인상하는 것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고, 정부는 ‘일방적 임금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선 바 있다. 결국 북측이 기존 5%인상에 합의하면서 논란은 종결됐다.

남한 정부와 기업은 개성공단 입주 초창기부터 노동자 해고, 채용, 작업지시 등 인력관리와 관련한 권한을 요구해 왔다. 2006년 한국노동연구원은 ‘개성공단의 인력관리 실태와 노동법제 분석’ 보고서를 통해 “채용이나 해고에 있어 기업의 자율성이 상당부분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 구제가 필요하다”며 “북한 근로자에 대한 지휘, 명령권을 기업의 고유권한으로 시급히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 없는’ 저임금 인력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4월 26일 JTBC <썰전>에 출연해 북한은 우수한 산업 노동력을 갖고 있다며 “우리 기업 입장에서 보면 ‘노조 없는 대한민국 노동력’이 북한 노동력”이라는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워커스 43호]

재벌로 흘러가는 방위분담금

북한 시장은 ‘긁지 않은 복권’과 같다는 한국정부. 하지만 정작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줄줄 새 나가는 혈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남북경협이든, 주한미군이든 호주머니에 돈을 챙기는 쪽은 기업이다. 주한미군 방위분담금으로 새 나간 국민 혈세는 미국으로, 그리고 기업으로 흘러들어간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이는 SK그룹이다. 정부가 2017년 미국에 지급한 방위비분담금은 9,507억 원으로 1조 원에 육박한다. 평화통일 시민단체들은 무상으로 제공되는 토지나, 세제 감면, 카투사 운영 등 간접비용까지 합치면 주한미군에 한 해 3조가 들어간다고 계산한다. 주한미군에 들어가는 비용은 다시 재벌 기업으로 흘러간다. 방위비분담금의 상당수가 군사 건설(시설 개선) 사업에 쓰이는데 2016년 기준 4220억 원이 쓰였다. 한국 업체가 계약 발주 및 시공을 맡는데 주로 대기업 건설사가 계약을 맡고, 재하청을 주는 식이다.

SK건설은 2008년, 미극동공병단(FED)에서 발주한 평택 주한미군기지 부지조성과 기반공사를 수주했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와 대추리 일원에 2,325,792㎡ 규모의 부지를 닦는 공사였다. 당시 계약 공사 금액은 약 4,641억 원. 대개의 공사가 그렇듯 공사 과정에서 비용은 늘어났고 2017년 3월 기준 설계변경된 공사금액은 약 7,590억 원이었다. SK건설은 2010년엔 사업비 537억 원의 평택 여단병영 시설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SK건설은 이 사업을 수주하며 “향후에도 국방부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한편 SK그룹의 다른 계열사 SK에너지는 주한미군 대상 석유, 환경 사업에서도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SK에너지는 2017년 미군을 상대로 352억 원어치 석유를 팔았다. 2016년엔 240억 원, 2015년엔 196억 원, 2014년엔 305억 원, 2013년 514억 원으로 최근 5년간 2,7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액을 기록했다.

2008년엔 국내 최대 규모의 파주지역 7개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이 사업은 총 601억여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한 매체를 통해 “향후 평택 미군기지가 완공되면 용산지구 등 주요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 되고 기존 기지들의 반환이 이뤄지며 규모가 큰 정화사업이 예정돼 있다”라고 향후 전개될 사업에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주최한 ‘용산미군기지의 온전한 반환과 정화를 위한 환경포럼’에서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용산기지 면적의 18분의 1에 불과한 동두천 캠프캐슬 반환지도 국방부가 196억 원의 정화 사업 발주 공고를 냈다”며 “용산기지 오염 정화비용은 1조원을 충분히 넘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동두천 캠프캐슬 반환지의 경우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았다.

정유기업들에게도 주한미군은 빠지지 않는 주요고객이다. 2015년 S오일은 약 2억2천만 달러, SK에너지 4천6백만 달러, 현대오일뱅크는 약 2천8백만 달러, GS칼텍스는 약 1천3백만 달러어치를 주한미군에 납품했다. 한편 주한미군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눈속임’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 소장은 그의 저서 <트럼프 시대, 방위비분담금 바로 알기>에서 “가장 많은 방위비분담금이 투자되는 군사 건설은 막사, 군인 숙소, 교회, 식당, 헬기장 등 기술을 특별히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 건설 사업이며 산업 생산 시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장비 정비를 맡을 수 있다는 논리로 방위분담금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그마저도 미국 록히드마틴의 자회사가 바지사장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수주했었다”며 “정부 논리는 무늬만 한국업체라고 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