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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한국’ 회사, 여성의 현실로 끌어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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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계]

2주 전, 회사에서 잘렸다. “OO 씨는 우리 회사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외국계 회사 가면 잘 할 것 같은데. 이직을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회사랑 맞지 않는다는 건 ‘상명하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란 군대의 행진처럼 호루라기 소리에 발맞추어 착, 착, 착, 착, 걸어야 하는 곳인데 내가 행렬에서 어긋나고 있다나?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의견을 밝혔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문제였나보다.

첫 번째 문제 제기는 연봉 및 승진 체계에 대한 것이었다. 나보다 입사가 두 달 늦은 남자직원이 갑자기 내 1년 선임이 됐다. 동기인 줄 알았는데, 나는 그를 ‘OO님’이라고 불러야 했고, 그는 나를 ‘OO 씨’라고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됐다. 자존심이 상했다. 같은 학교, 세부 전공만 다른 같은 과를 졸업한 동갑내기 동기였다. 다른 건 그가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는 점밖에 없었다.

부서장과 면담을 잡아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며 항의했다. 그는 ‘불만이 있어서 시스템을 바꾸고 싶으면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오라. 그럼 윗선에 보고해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특이한 회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일주일 안에 자료를 찾아오라는 부서장의 지시에 알겠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자료 조사 1일 차에 이것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나보다 선임이고, 연봉을 10% 더 많이 받는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다. 자유 형식인 이력서에 반드시 기재해야 할 항목이 ‘부모님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직장이 너무나 필요한 취업준비생이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작성해 제출했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두 번째 느낀 이상함은 현실이었다. ‘정말로 이상하다’는 현실. 월요일마다 CEO를 만나는 회의에서 그가 결혼한 여성 직원들을 부르는 호칭은 ‘아줌마’였다. “아줌마, 보고 자료 들고 와 봐.” 나는 눈을 내리깔고 감히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확인하기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표정보다 내가 더 무서웠던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어느 월요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CEO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관해서 설명하다가, 어떤 여자 직원의 옷차림을 굉장히 칭찬하며 ‘검소해 보이지만 화려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 직원보고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보라고 했다. 나는 또 눈을 내리깔았고, 그 직원은 엉거주춤 일어나서 도는 둥 마는 둥 했다. CEO는 만족했고, ‘모두 이 사람을 본받아서 이렇게 입고 다니라’고 지시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다. 또한, 굉장히 전형적인 ‘한국’ 회사다. 신입사원 교육 때는 성별에 따른 임금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걸 설명하는 인사팀 직원도 무엇인가를 언급할 때마다 멋쩍은 듯 웃으며 ‘제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윗선에서 시킨 거라 어쩔 수가 없네요.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라고 변명했다. 자료는 남자직원의 초봉이 여자 직원보다 약 10%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다음 슬라이드는 더 참담했다. 승진 시스템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전 슬라이드와 같이 남자·여자 행을 나누어서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었다. “남자는 1년 반 후에 주임이 되고요. 여자는 3년 반 후에 주임이 됩니다.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이에요. 그다음엔 대리가 되기까지 3년….” 과장 이후 부터는 실적에 따라 승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근속 연수는 상관없다는 설명까지 들었지만, 별로 희망적이지 않았다.

여성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남자들은 ‘생산관리’ 혹은 ‘영업’이라는 소위 말해 ‘몸으로 뛰는’ 일을 많이 하는 데 반해 여자 직원들은 사무직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사무직 일을 하더라도 남자 사무직 직원보다 여자 사무직 직원이 일찍 퇴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하는데 이 ‘이른’ 퇴근을 눈감아 주는 이유는 집에 가서 밥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 직원들은 대부분 저녁 8시, 9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다.

이런 회사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면서 지냈더니 돌아온 건 권고사직이었다. 내 기준으로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최근에 팀장에게 ‘너무 권위적이다’라고 항의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나는 ‘선임을 가르치려 드는 후임’이 돼있었다. 일주일 동안 ‘권고사직 당한 이유를 정확하게 듣지 않으면 사직서를 제출할 수 없습니다’라는 태도를 고수했더니 열흘 만에 권고사직은 철회됐다.

당신이 없으면 당신의 세상도 없다

희망적인 얘기를 할 수 없어 슬프다. 하지만 나는 근 1년 반의 경험으로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 이제까지 우리는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너무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서 배워왔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현실이다. 사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뉴스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이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면하니 그것은 이상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시궁창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는 이미 이상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위하는 이들을 현실로 데려와야 한다. 매트릭스 속에 안주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현실로 끌어와야 한다.

두 번째는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모든 불의에 대항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권고사직을 당했으니 앞으로 나의 회사생활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이전처럼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계속 말하다가는 정말로 해고를 당할 테고, 화나는데 웃어야 한다면 정신분열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적당히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고 그 행동이 고귀하다는 것은 알지만, 모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슈에 그에 대항하는 다양한 운동이 존재했듯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소한 어떤 것이라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직장에서 이런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사람들한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없으면 당신 세상은 없다고.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 억지로 강요 하는 통념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걸 할 필요는 없다.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니까. 다들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고, 여건이 된다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여기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위해 있다.[워커스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