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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 토머스 - 미국의 아들(1940)

[워커스] 힙합과 급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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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미국의 아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카고의 흑인 청년 비거 토머스는 백인 고용주의 딸을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비거는 사건을 희생된 여성의 공산주의자 남자친구가 저지른 납치극으로 꾸며 돈을 뜯어내려 하고, 자신의 여자친구마저 죽인 후 도주하다 체포된다. 미국 흑인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미국의 아들(Native Son)»의 줄거리다. 리처드 라이트가 1940년 발표한 이 소설에는 충격적인 소재뿐 아니라 이전에 찾을 수 없었던 무서운 시각이 드러나 있었고, 출간과 동시에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1908년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난 라이트는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같이 살던 이모부가 백인에게 살해당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를 마친 후 그는 ‘미국의 꿈’을 품고 시카고로 이주해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나 대공황이 덮친 북부 도시에서 흑인의 삶은 남부에서처럼 가혹했고, 그는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공산당 소속의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흑인의 전통에 입각하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으로 흑인의 삶을 담아내는 작품을 쓰고자 했고, 그 결과 비거 토머스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다만 그가 창조한 비거는 부유한 백인 여성에게 반감을 갖고 가난한 흑인 여성을 하찮게 여기는 남성 흑인이기도 했다.

1941년 연극 '미국의 아들'에서 비거 토머스 역을 맡은 캐나다 리
[출처: 위키피디아]

비거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유형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애초 백인 가게를 터는 것조차 무서워해 친구에게 싸움을 걸어 계획을 무산시켰던 소심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백인을 살해한 후에는 후회나 죄책감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유로움과 성취감을 느끼고, 새로운 범죄들을 대담하게 실행해 나간다. 그는 체포된 후에는 자신에 깊이 골몰하더니 결국 살인이 스스로를 위한 일이며 옳았다는 판단을 내린다. 사이코패스 같은 전개일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누구도 웃거나 울 수 없을 것이다.

라이트는 어려서부터 목격한 수많은 실제 비거들을 바탕으로 이 주인공을 창조했다. 아이들을 때리고 장난감을 빼앗으며 행복해하는 소년, 돈 갚을 생각 없이 백인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소년, 직업도 없이 인종적 금기를 깨트리는 것을 낙으로 삼은 조울증 환자, 전차의 백인 좌석에 무임승차해 자신을 쫓아내려는 차장을 칼로 굴복시킨 흑인 등 사례는 많았다. 비거는 흑인만은 아니었다. 라이트는 ‘저들의’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가리키는 런던 망명 시절의 레닌에게서 비거를 발견했고, 나치 독일의 기록에서 마커스 가비 같은 지도자와 군대를 원하던 시카고의 비거를 떠올렸다. 어긋난 사회의 산물이자 박탈당하고 뿌리뽑힌 비거들은 현상 유지만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택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비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고통받는 민중의 전형이었다.

힙합의 비거들

야신 베이, 탈립 콸리, 블랙 쉽, 사울 윌리엄스, RATM처럼 지성있는 미국의 뮤지션들이 가사에서 이 작품을 직접 언급했다. 그러나 소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불안과 분노를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비거와 같은 캐릭터들은 랩 가사에 넘쳐난다. 흥겨운 파티 대신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룬 최초의 힙합곡인 그랜드매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의 1982년작 ‘더 메시지’는 빈곤과 절망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범죄자를 동경하고 결국 감옥에서 자살하는 비거가 등장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사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세계와 불화했던 투팍은 1992년 녹음한 ‘체인지즈’에서 이렇게 묻는다. “모든 게 그대로네. 아침에 일어나 나 자신에게 묻지. 사는 게 가치가 있을까? 나를 쏘아버려야 하나? 가난은 지긋지긋하고 게다가 난 흑인. 속이 쓰려오니 훔칠 지갑을 찾게 되네.”

가장 공격적인 힙합의 비거는 1980년대 중반 등장한 갱스터 랩에서 나타난다. 자칭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그룹’인 N.W.A는 비디오에서 ‘나는 꿈이 있습니다’가 적힌 종이를 찢어버리며 등장해 ‘퍽 더 폴리스’를 외쳤다. 스스로 ‘리얼리티 랩’이라고 부른 이들의 가사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욕설과 폭력, 여성비하가 난무했는데, 실제로는 상당 부분 상업적 동기로 부풀려진 내용이었고 가사를 쓴 아이스 큐브나 곡을 쓴 닥터 드레는 갱단 출신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실업과 마약, 폭력이 넘쳐나는 LA 흑인 거주 지역 출신 젊은 남성의 소외감과 분노를 온전히 표현했고, 백인 중산층 청소년들까지 열광시켰다. 한편에서 주류사회는 경찰을 죽이자는 가사에 경악했는데 여성 비하나 폭력을 떠벌이는 모습도 많은 논란을 만들어냈다. 결국 갱스터 랩은 뒤틀린 흑인 사회가 미국에 보내는 위험신호였지만 이는 무시되거나 금지됐고, 그 결과는 불행히도 많은 피해를 낳은 1992년 4월의 LA 폭동으로 나타났다.

1944년 라이트는 전시 정부 협력을 강조하고 흑인 문제를 주변화하는 공산당에 불만을 느껴 당을 떠났고, 1946년부터는 프랑스에 정착해 집필 활동을 이어나갔다. 프랑스에는 마르티니크 출신 정신의학도 프란츠 파농이 있었고, 그는 라이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 흑인의 심리와 폭력의 문제를 숙고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파농의 책은 다시 미국으로 전해져 휴이 뉴턴을 비롯한 젊은 혁명가들을 깨우쳤고, 이들은 1966년 블랙팬더당을 결성하고 자기방어를 위한 흑인의 무장을 주장했다. 블랙팬더 당원 중에는 테러 계획 혐의로 체포되어 임신한 상태로 법정 투쟁을 벌이던 아페니 샤쿠어도 있었다. 그녀는 1971년 훗날 랩 스타이자 문제 인물이 될 투팍을 낳았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빛나는 래퍼인 켄드릭 라마는 2015년 투팍이 인용했던 흑인 문학작품에서 제목을 딴 ‘더 블래커 더 베리’를 발표했고, 인종주의와 폭력, 위선의 문제를 탁월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다. 이 곡에서 그는 흑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미국 사회에 대고 “네가 날 살인자로 만들었지. 진짜 검둥이의 해방이다”라고 외친다. 그다음에는 놀랍게도 “비거인 내가 쏜다”로 해석될 수 있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가 비거 토머스를 의식하고 가사를 쓴 것일까? 잘 모르겠다.[워커스 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