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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진짜 임금 인상은?

[워커스] 너와 나의 계급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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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고 최저임금이 16.4% 인상됐다. 1,060원이 올랐다. 기다렸다는 듯 그 후폭풍이 매일 신문 지면을 덮치고 있다. 먼저 움직인 건 ‘큰손’ 사용자들이다. 강남 부자의 상징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 전원을 해고했고, 연대와 고대는 교내 미화원을 줄이거나 파트타임으로 전환했다. 사용자에겐 늘 아까운 게 인건비라지만 1,060원이 이유라기엔 너무 대대적인 조치다. 대대적인 데 비해 등록금이 동결됐다는 둥 내놓은 근거도 부실하다.

[출처: 김한주 기자]

자본가들의 ‘1,060원짜리’ 구조조정

정초부터 대량 해고와 전면 개악을 불사할 사용자라면 작년, 재작년이라고 인건비를 안 아꼈을 리 없다. 그런데 최저임금에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된 이때 인건비 절감 강행이라니. 왜 지금일까. 대학 청소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이 결단이 갑작스러운 게 아니며, 그간 찔끔찔끔 실행하던 장기적 구조조정 계획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틈타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측에겐 임금 인상 투쟁과 정책을 깎아내리려는 총공세가 펼쳐지는 지금, 그래서 최저임금 핑계를 댈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정원 줄이기, 고용 쪼개기, 노동강도 높이기 등 인건비를 근본적으로 낮춰줄 숙원사업을 펼칠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다. 이대로만 되면 1,060원짜리 ‘대박’ 구조조정인 셈이다.

이참에 구조조정을 하려는 대학에 청소 노동자들은 농성으로 맞서고 있다. 이 대결은 전체 자본과 노동자들 사이의 전초전으로 확장해 볼 수도 있다. 가령 당장의 청소 노동자 해고는 다시는 임금 인상 요구를 못 하도록 전체 노동자 계급에 보내는 본보기성 협박이 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겐 ‘1,060원짜리’ 생활수준 하락

좀 더 생각해 볼 것은 청소 일자리가 우리 사회 곳곳의 위생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번 대학 청소 노동자 구조조정은 특별한 근거 없이 위생을 책임지는 인력과 시간을 줄인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지금보다 지저분한 환경을 감수할 것을 강제한다. 이미 우리 사회 청소 일자리의 표준은 최저임금과 위험 노동에 맞춰져 있다. 사립대학이라는 거대 사용자가 앞장선다면 낮아진 노동 기준과 함께 낮아진 위생 기준이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우리 사회가 사측의 인건비 부담을 헤아려 청소 일자리 구조조정을 용납한다면 조금 덜 깨끗한 화장실, 덜 자주 비워지는 휴지통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사소하거나 과장돼 보일지 몰라도 이건 분명 인간다운 삶의 하락이다.

자본가들에게 최저임금이 단지 비용의 문제라면,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삶의 질 하나하나와 맞물려 있다. 이번 1,060원 인상을 계기로 자본가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노동자 계급은 인간다운 삶의 기준을 높여 나가는 ‘노동자판 구조조정’을 실행해야 한다. 청소 노동자가 좀 줄어든다고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나빠지겠느냐 따질 일이 아니다. 고작 1,060원 절약을 위해 노동자들의 생활을 깎아내려는 자본가부터 잡아내고 막아내는 게 중요하다.

생활수준 하락 강요하는 새로운 경제도 거부!

자본가들이 돈벌이와 노동자 계급의 생활수준을 맞바꾸려할 때 대는 핑계는 인건비 말고도 많다. 새로운 '플랫폼 경제'로 각광받는 사업들이 그렇다. 남는 방을 관광객에게 단기 임대할 수 있도록 온라인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IT기업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이다. 투자자들은 이 사업을 ‘공유경제’라고 부른다. 현지 문화에 관심 많은 관광객들과 내 집 공간을 나누며 돈도 벌고 공유의 기쁨도 얻으라는 취지다.

그러나 에어비앤비에 집을 등록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불편은 뚜렷하다. 개인 주거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생활의 하락이다. 또한 주거공유로 정기적 수입을 내려면 정기적으로 낯선 사람을 맞아야 한다. 이건 공유의 기쁨이 아니라 인간 주거 생활의 퇴보다.

생각해 보면 에어비앤비가 공유경제의 새 시대를 연다고 해서 ‘내 집 마련’의 꿈이나 부동산 투기 열풍이 사그라질 것은 아니다. 실제 에어비앤비의 성장 동력은 공유경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개인 공간까지 판매할 만큼 추가 수입이 절실한 저임금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생활비 충당을 위해 팔 수 있는 걸 팔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 에어비앤비가 계속 성공한다면, 한 가지 직장생활만 하고 주거공유에는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는 돈 벌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란 사회적 인식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가 과연 과장일까? 자본가들은 이미 플랫폼 경제의 신선함을 선전하며 평생직장, 정규직, 하나의 직업이 따분하지 않느냐고 속삭이는 마당이다.

삶의 질이 좋아져야 진짜 임금 인상, 진짜 경제발전

그 내용이 무엇이든 노동자 계급의 생활수준이 하락한다면 진짜 임금 인상, 진짜 경제발전이 아니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 얘기지만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공장제가 확대되고 온 가족이 공장에 출근하게 되면서 노동자 가정의 식탁에 찾아온 변화를 곱씹을 만하다. 영국 경제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그때 노동자들이 집에서 만들어 먹던 오트밀 죽은 시장에서 사오는 빵으로 대체됐고, 그 빵에는 영양가는 없지만 열량 높고 값싼 설탕 잼이 버터 대신 발라졌다. 이 변화에는 식사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여성해방의 의미도 있으나, 그 해방은 가정과 공장에 매인 이중 고통을 약간만 덜어주는 정도였다. 삶의 질로 보자면 ‘가성비’ 최고의 간편식이 최고의 대안은 아니었다. 노동 패턴에 맞춰 저렴한 에너지원을 찾게 되는 경제발전은 과연 노동자 계급에게도 경제발전일까?

고작 최저임금 1,060원이 올랐을 뿐이지만, 지금은 노동자들이 해고와 편법 없는 임금 인상은 물론이고 생활수준의 하락 없는 임금 인상, 삶의 질을 높이는 경제발전까지 요구해야 하는 적기다. 마침 최근 최저임금 관련 기사들에는 집값이 잡히고 노동시간이 줄면서 정원은 늘어야 진짜 임금 인상이라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게 임금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최저임금은 ‘비혼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에 한참 못 미친다. 임금이 오르니 인력과 서비스를 줄여야겠고, 인건비를 잡아야 우리 경제가 발전한다는 자본가들의 입장을 누가 모르기라도 한단 말인가. 다만 노동자는 다르다. 생활수준의 하락은 노동력 가치의 하락이다. 용납하고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워커스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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