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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조각 된 정규직 전환 대책...심의위원 사퇴도

[기고] 정규직전환심의위원 사퇴한 하태현 노무사, “심의위, 거수기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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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7월 20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환 대상 7만4천 명 가운데 83.3%인 6만1천여 명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곳곳에서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기간제 교사들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는 어느 새 생명 안전업무로 축소되기도 하고, 간접고용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자회사 전환을 정규직 전환이라고 말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충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비정규운동본부)는 작년 11월부터 충북도 및 주요시군에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들이 전환 기준 및 추진 현황을 알 수 있도록 자료를 공개하고 노동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해왔다. 충북도청 앞 1인 시위를 비롯해 도지사 면담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추진을 위해 지역사회와 공공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주시를 비롯한 주요 시군은 충북도의 전환심의위원회 결과를 기다리며 자체 전환심의 위원회 일정을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충북도 전환심의위원회 결과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이 뿐인가!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2단계, 3단계 정규직 전환이 예정돼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상황인데 충북도의 정규직 전환 추진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자의적 기준으로 정부 가이드라인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노동계 추천으로 충북도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에 참여했던 하태현 노무사(호죽노동인권센터/민주노총 법률원)는 충북도 정규직 전환 4차 심의위원회 회의 도중 퇴장했고 이어 지난 1월 31일, 심의위원 사퇴를 선언했다.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는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가 연 기자회견에 참여해 정규직 전환심의위원으로서 사퇴 변을 발표했다. <사퇴의 변>은 긴 글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해소와 고용안정을 위해 추진되는 정부 정책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는 <사퇴의 변>을 알리기로 했다. 앞으로 2단계, 3단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출처: 청와대]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기자회견에서 밝힌 하태현 노무사의 사퇴의 변

“나는 왜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에서 퇴장하였는가?”

하태현(호죽노동인권센터 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저는 노동계 추천으로 충청북도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2차 회의부터 참여했습니다. 우선 저를 위원으로 추천해 준 지역 노동계 및 정규직 전환심의에 기대를 걸고 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전환심의위에서 정규직 전환심의를 완료하지 못하고 중도에 퇴장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려야 할 듯합니다.

불량 사용자 ‘충북도’

정부는 작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최대의 사용자인 공공부문이 ‘모범적 사용자’로서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공표하였습니다. 또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책의 전반에서 노동계와 전문가들과 충분히 협의하면서 참여 형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노동계는 정부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면서, 그리고 저는 그러한 약속의 실행을 기대하면서 충청북도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그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충북도는 ‘모범 사용자’가 아니라 ‘불량 사용자’가 되고자 하였고, 전환심의위원회는 충청북도의 불순한 욕망을 제어하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로 실현시켜주는 기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충청북도는 전환심의위원회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단지 권고일 뿐 충북도는 충북도의 방식으로 한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실제로 충북도는 정부 가이드라인과 다른 독자적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전환심의위원회에서 관철하였습니다.

예컨대, 정부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 전환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나 충북도는 상시․지속업무라고 할지라도 2년 이상 계속근무한 자만 정규직 전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습니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 근로자를 전환 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나 충북도는 현 근로자의 전환이 아니라 사실상 제한경쟁 내지 공개경쟁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원칙 보다 예외 적용자가 더 많음). 이 뿐만이 아닙니다. 충북도는 객관적인 직무분석에 근거하지도 않은 ‘직무량’이라는 자의적인 기준을 내세워 전환제외를 주장하는가 하면, 단지 충청북도의 ‘인력운영 필요성’만을 강조하며 전환대상 여부 및 채용방식을 결정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충청북도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빌러 내가 필요한 사람이나 뽑겠다는 욕망만 넘쳐났을 뿐입니다.

거수기로 전락한 전환심의위원회

백번 양보해 어디에나 조직의 자기이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은 존재하니 충청북도의 욕망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호 충돌되는 이해들이 합리적으로 소통되고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환심의위원회’가 그러한 제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됩니다. 전환심의위원회에 외부위원을 참여시키고, 노동계 추천 인사를 참여하게 한 취지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환심의위원회’는 정규직 전환을 심의하기보다 충청북도의 고충을 들어주는 해우소로, 충청북도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값싼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전환심의위원회는 내․외부위원 가릴 것 없이 충청북도가 안내한 대로, 충청북도를 위한 결정을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내용을, 정부 가이드라인의 취지를 심각히 훼손하는 내용임에도 전환심의위원회는 충청북도의 안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심지어 반드시 해야 할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 충청북도의 안을 다수결로 통과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예컨대, 똑같은 ‘연구보조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누구는 고용승계로 정규직 전환하면서, 다른 누구는 제한경쟁이나 공개경쟁을 거쳐야 하는지 그 기준과 근거에 대하여 전환심의위원회는 어떠한 심의도 한 바 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전환심의위원회는 40~50대 기간제가 근무해온 직종을, 그리고 과거 기간제 공개채용 시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 직종을, ‘청년선호일자리’로 규정해 제한경쟁이나 공개경쟁을 해야 한다는 충북도의 주장에도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면 대한민국 일자리 중에 ‘청년선호일자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궤변에 불과합니다. 전환심의위원회 심의 중에 어느 전환심의 위원은 충청북도에 일임하는 것으로 결정하자는 대담한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발언이 충청북도 전환심의위원회의 현재 상태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이라고 할 것입니다.

모든 기대를 접었습니다

충청북도의 불순한 욕망을 제어하고, 비정규직 보호라는 가이드라인의 근본취지를 관철하려는 의지를 그간의 전환심의위원회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4차 회의에서 전체 420여명의 기간제 근로자 중 실제로 고용승계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근로자는 단지 20여명에 그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충청북도가 전환 제외자로 내정한 370여명의 근로자들에 대한 심의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3번에 걸친 심의참여를 통해 충북도와 전환심의위원회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모두 접었습니다.

현재 충청북도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는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기구도 아닙니다. 단지 충청북도 자신들의 조직 이해에 맞는 인력을 제한적으로 채용하기 위해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기구에 불과합니다. 저는 본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에 참여하고자 했지, 충청북도의 임의적인 채용기구에 참여하고자 한 바가 없으므로, 더 이상 제가 머물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부득이 심의위원직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