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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의 땡깡, 왜 비정규직 노동자가 받아줘야 하나?”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서는 연세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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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본관 농성 16일 차를 맞은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오전은 분주했다. 전날 함박눈이 내려 건물이 엉망이 됐다. 평소보다 공을 들여 청소하고 오전 10시 30분에 예정된 기자회견에도 참석해야 한다. 일방적 구조조정을 시행한 학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학교에 꼬투리 잡히기 싫어 더 오래 쓸고 닦는다. 평소보다 꼼꼼히 한다고 하지만 몇 사람만 오가도 바닥이 다시 더러워진다. 이런 날은 힘이 들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존재 같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2018년이 되자마자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소식은 ‘최저임금’에 대한 각종 논란이다. 그중 하나는 서울 시내 주요 사립대들이 최저임금 인상 및 임금인상을 빌미로 실시하는 청소, 경비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다. 대학들은 전일제 노동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초단시간 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연세대는 그 선두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었다.

여름부터 기획된 구조조정

연세대의 구조조정 방법은 정년퇴직으로 생긴 빈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하루 3시간 일하는 초단시간 알바를 채용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말, 정년퇴직한 연세대의 청소노동자는 17명, 경비노동자는 15명이었다. 결원이 생겼으니 충원을 해야 하지만 학교는 동문회관 청소노동자 1명만을 더 채용했을 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학교의 구조조정이 지난해 여름부터 기획됐다고 말한다. 노조가 입수한 ‘노무문제 현안 보고(2017. 7. 3)’라는 내부 문건이 이미 오래 전부터 구조조정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문건에는 민주노총 서경지부와의 임금협상 현황이 적혀있고, 그 아래엔 학교 측이 고안한 대응 방안이 나열돼 있다. 학교는 노조가 취할 예상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를테면, ‘시급 7,400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일정 기간 시위 및 파업 등이 불가피함. 서울지역 대학별 공동 대응 필요 및 대학의 어려움 사회적 호소 필요’ ‘총무처에서는 파업 시 비상대책을 수립하여 전 교직원에게 전파하고 자체 인력으로 최소한의 청소, 경비, 미화 등에 대응하고자 함’ 등의 문구가 나온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장기적인 방안으로서는 정년이 도래하는 인력에 대해서는 신규 채용하지 않고 인력을 축소하여 운영함으로써 인건비 증가에 대응할 계획임’이라고 적힌 항목이었다.

학교의 기획대로 올해부터 들어온 신규 용역업체는 산학협동관, GS칼텍스관에서 일하는 청소 경비 노동자 5명에게 정년퇴직으로 비워진 자리에서 일할 것을 통보했다. 이들이 있던 산학협동관, GS칼텍스관을 알바로 채워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기존처럼 출근하자 학교 총무팀 관계자는 ‘무단침입’ ‘업무방해’를 말하며 처음 본 알바 노동자들에게 청소를 지시했다. 산학협력관을 12년간 청소한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외부인으로 몰린 상황이 황당할 뿐이었다.

  31일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이경자 연세대분회장

이경자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연세대분회 분회장은 “5,000억 적립금을 쌓아두고도 돈이 없다고 비정규직 인건비를 줄인다고 한다. 알바 노동자를 써서 학교가 더러워지면 욕을 먹는 건 우리 청소노동자들이다. 깨끗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우리들은 그렇게 둘 수 없다. 돈 없다는 ‘땡깡’을 그만두고 이제라도 제대로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경지부는 예산 부족도 핑계라고 주장한다. 최다혜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학교는 청소, 경비 노동자의 임금이 높은 편이라고 하지만 서경지부와 교섭하는 주요 서울 사립대는 임금이 동일하다. 청소노동자의 시급은 7780원, 경비노동자의 시급은 6980원으로 최저임금 내외다. 학교는 입학금 폐지, 등록금 동결 등을 이유로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정부에 더 돈을 내놓으란 주장을 펴려고 이렇게 나오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대학별 국고보조금 중 연세대는 3,105억 원으로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다. 연세대는 고려대와 함께 전체 사립대 국고보조금의 10.6%를 차지하고 있다.

구조조정 후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

이 와중에 전일제 노동자 자리에 알바 노동자를 공급하는 용역업체 ‘코비컴퍼니’는 연세대분회 조합원들을 채증하고 폭력까지 행사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새벽에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안에서 문을 잠근 코비컴퍼니 직원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한 시간 뒤, 안에 있던 경비 노동자가 퇴근을 하기 위해 문을 열자 출근하려는 노동자들과 이를 막는 코비컴퍼니 직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청소 노동자 한 명이 대리석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사고를 당했다.

전치 2주 진단을 받은 피해 노동자는 왼쪽 팔꿈치와 어깨 통증으로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추운 날 한 시간을 떨다가 밀려 넘어지는 바람에 충격이 컸다. ‘쿵’ 하고 넘어졌는데 119가 늦게 오는 바람에 15분 이상 찬 바닥에 누워 있었다. 덩치 큰 남자들이 있으니까 남자 조합원들이 모여도 상대가 안 됐다”고 말했다. 서경지부는 원청인 연세대에 폭력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은 “(문 잠그라고) 지시한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동자가 줄어든 건물에선 민원이 발생했다. 알바 노동자들이 오전에 짧게 근무하는 사이 환경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이다. 학교 교직원이 3~4명씩 조를 짜서 주말부터 청소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연세대분회 조합원들이 교직원들에게 대체 왜 청소를 하는 것이냐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교직원의 노동 조건도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만큼이나 열악하다는 것을 방증했다.

학교 측은 연세대분회 조합원들이 16일부터 본관 농성을 시작하자 난방, 온수를 끊어 공분을 사기도 했다. 19일부터 끊긴 난방과 온수는 22일에야 다시 들어왔다.

쏟아지는 투쟁 지지…고립되는 건 학교다

새해 벽두부터 쏟아진 대학 내 구조조정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연세대 학생들, 지역 사회 시민들은 연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꼼수에 함께 분노했다. 30개 가까운 학생회는 ‘연세대학교 비정규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내는 입장문에 지지 연서명을 하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 비대위는 ‘학교 측은 학생 대표자를 만나기에 앞서 청소, 경비노동자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입장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고용노동부, 교육부를 비롯해 청와대까지 나서 연세대를 찾았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기관 관계자들에게 구조조정 실상을 알렸고, 이들 기관 관계자도 학교 측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교 예산이 부족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선 정년퇴직 미충원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상황이었던 고려대는 1월 29일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10명의 자리에 기존과 마찬가지로 8시간 전일제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2월 1일엔 홍익대 역시 청소노동자 4명 모두 인원 감축을 철회하기로 했다. 서경지부는 “연세대도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즉각 문제 해결에 나서기 바란다”라며 “지불 능력이 있고,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하는 대학에서부터 청소,경비노동자를 해고하고 단시간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기에 더 큰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연세대에 촉구했다.

하해성 노무사(서경지부 조직부장)는 “연세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추운 겨울 시멘트 바닥 위에서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찍 일을 끝내고 선전전을 하고 투쟁하는 이유는 전체적으로 노동자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이들의 투쟁은 사회적 투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원청 사용자에게 사용자의 책임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도 덧붙였다.

올해는 연세대분회가 탄생한 지 10주년을 맞는 해이다. 신처럼 군림하던 관리자를 몰아내고, 노동자 권리를 되찾기 시작한 노동자들로서는 민주노조를 지켜온 10년이 감격스럽다. 농성 3주 차에 돌입했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말투에선 여유가 묻어난다. 끝까지 투쟁해서 코비도 몰아내고, 전일제 일자리도 지키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오는 2월 7일부터 ‘제1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이 연세대에서 진행된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연세대는 우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깊이 참여하는 대학”이라며 “나눔과 배려, 공감, 그리고 섬김과 봉사의 정신을 세계적 차원에서 실천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이미 사회적 문제가 돼버린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자 구조조정을 바로 잡는 길이 해당 포럼을 부끄럼 없이 진행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연세대 본관에 자리잡은 연세대분회 농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