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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없는 촛불개헌…국회가 기본권을 만났을 때

[워커스 이슈1] 개헌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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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계]

아래로부터의 개헌 요구가 정치권에 닿기까지는 멀고도 험난하다. '4년 중임제'냐 '이원집정부제냐'가 최대 현안이 된 개헌 정쟁에서, '기본권 강화'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지난해 여야가 너나없이 내세운 '6월 개헌'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고꾸라질 위기에 놓였다. 사실 '6월 개헌'은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모두 동일하게 내놓은 공약이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6월 개헌 불가'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개헌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기 힘들어졌다.

'6월 개헌'에 제동이 걸리자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는 4년 중임제가 가장 바람직한 방안 "이라며 국회에 합의안 도출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편 의지가 전혀 없다"며 일명 '문재인 개헌'을 저지하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개헌을 둘러싼 여야의 소란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당 구조가 달라져야 개헌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목소리도 나온다. 2020년 21대 총선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권력구조 개편은 일단 미뤄두고, 6월 지방선거 때 자치분권 개헌만을 우선 처리하자는 '2단계 개헌론'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여야가 개헌을 둘러싼 기득권 전쟁을 벌이는 동안,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다루는 '기본권'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헌법의 제2장을 차지하고 있는 '기본권'은 지금 개헌 이슈의 어디쯤에 머물고 있을까. 《워커스》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의 기본권 분야 논의 과정과, 진보진영의 개헌 대응 움직임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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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특위가 대차게 거부한 우리의 기본권

국회는 지난해 1월, 여야 국회의원 35명으로 이뤄진 개헌특위를 구성해 개헌안 마련에 나섰다. 각계 전문가 53명으로 구성된 개헌특위 자문위원단(자문위)도 구성했다. 자문위는 약 1년간의 활동 끝에 지난해 12월 8일 자문위보고서를 발행했다. 특위의 논의 방식은 자문위 안을 놓고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특위가 그동안 논의한 기본권 쟁점은 총 120개. 그 중 여야 특위 위원이 '대체로 공감'한다고 의견을 모은 사항은 단 43개.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린 쟁점은 17개, 의견이 개진된 사항은 26개, 그리고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은 쟁점은 33개다.

우선 노동기본권 조항을 둘러싸고 특위 내부에서는 여러 논쟁이 일었다. 자문위 안에 명시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대해서는 특위 위원 과반수가 반대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논의한 개헌특위 제1소위원회 9명 중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시에 찬성한 이는 단 3명.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치'를 넣으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고,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동의 질은 시장경제에서 평가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동일가치노동이 포함하는 범위가 너무 넓으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도로만 합의하자는 의견도 오갔다. 이외에도 자문위가 제안한 '근로'를 '노동'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안과, 필수공익기관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조항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특위 위원들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단어는 '성적 지향'이었다. 자문위는 현행 헌법의 차별금지 사유 항목인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을 '인종, 언어, 장애, 연령, 지역, 성적 지향, 고용형태 등'까지 확대하는 안을 제시했다. 특위 위원들은 유독 '성적 지향' 항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제외한 여야 의원들은 '성적 지향'을 제외한 차별금지 조항에만 수용할 수 있다고 뜻을 모았다. 여성 인권 분야에서도 논쟁은 이어졌다. 자문위는 '성평등' 조항에 '선출직·임명직 공직 진출에서 남녀의 동등한 참여 촉진 의무'를 명시했다. 이를 둘러싸고 난데없이 '초등학교 교사 성비' 문제와 '여성의 군복무' 시비가 붙었다. 성평등을 포함해 기본권 분야를 논의했던 특위 제1소위 위원 15명 중 여성 위원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특위 위원들은 자문위가 신설한 '생명권'이 곧 '사형제'의 폐지라며 반발했다. '안전권'을 두고는 피해자가 국가에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기본권 제한 사유에 '국가안전보장'이 삭제돼서는 안 된다고 고집했으며, 국민이 직접 법률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권'도 대의제 원칙에 어긋난다며 난색을 표했다. '망명권'은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체 복무 제도를 제안한 자문위 안을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사상의 자유' 역시 공산주의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직접고용 원칙과 국가의 고용안정 의무, 노동조건의 노사공동결정 원칙,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아예 논의되지 않았다. 그렇게 35명의 개헌특위 위원들은 지난해 말, 어떤 성과도 도출하지 못한 채 활동을 마감했다.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자문위'가 놓친 것들

자문위원회는 노동, 시민사회진영의 유일한 의견 개진 창구였다. 국회는 지난해 1월 각 단체와 기관에 자문위원 후보를 추천받았고, 53명의 자문위원을 선정해 위촉했다. 이들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자문위보고서'를 만들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돌팔매를 맞은 바로 그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는 분명 '기본권' 분야의 요구들을 꽤 전향적으로 담아냈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적, 이념적 부담 때문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주요 기본권 요구들도 분명 존재한다.

자문위보고서에는 노동계가 요구해 왔던 '노동존중평등 사회'의 헌법 명시 요구가 빠져 있다. 1948년 제헌헌법에는 존재했던 노동자의 '이익균점권'도 되살려내지 못했다. 대신 '경영참가권' 수준으로 이를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자문위는 보고서를 통해 "현대적 관점에서 이익균점권보다 사업 운영 참가권이 보다 현실적"이라며 "이익균점권이 종업원 지주제 등의 의미로 제한될 수 있으므로, 노동자가 자신의 처지를 결정하는 데 참가한다는 산업민주주의 원리를 실질화하는 사업 운영 참가권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제헌헌법에는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진영도 꾸준히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요구를 걸어왔다. 하지만 자문위는 기간시설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및 사영화 금지 조항의 신설은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자연자원에 대한 국·공유화 논쟁에서는 '자연자원은 모든 국민의 공동의 자산'이라면서도 "자연자원의 국・공유화는 과도한 것으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토지공개념의 도입도 담아내지 못했다. 대신 자문위는 헌법 제122조에 '토기 투기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수준으로 이를 갈음했다. 농민들이 요구해 온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요구 역시 논의되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개헌 동력은 미미하기만 하고

이 같은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노동계, 진보정당들의 움직임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민사회진영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했다. 늦게나마 여러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시민사회 단체들이 한 데 모였다. 지난해 10월, 119개의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주도헌법개정네트워크(국민개헌넷)'을 발족했다. 이들은 지난 1월 16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941개의 시민단체들을 모아 6월 개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단일한 개헌안을 도출해 정치권을 압박하는 수준으로까지 이어지긴 힘들 전망이다. 6월 개헌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 절차상 최소 3월까지 단일안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개헌넷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이념 수준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개헌특위 자문위에 참여했던 이태호 국민개헌넷 상임운영위원은 "국민개헌넷의 활동 목적은 시민사회의 합의안 도출보다 이해를 공유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 상임위원은 "합의를 목적으로 하면 (보수시민단체와의 공동 대응 때문에) 개헌안 후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만약 시민사회진영이 단일안을 도출한다 해도 국회가 여야 싸움으로 합의하지 않으면 개헌을 밀어붙일 수도 없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국민개헌넷은 우선 2월 설 연휴 전까지 릴레이 국민대토론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정의당, 노동당, 민중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진보정당과 개헌토론회를 진행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민주노총 개헌요구'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 차례의 토론회와 요구안 마련을 끝으로, 민주노총의 개헌 대응 사업은 개점휴업 상태다. 양동규 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새 지도부 선거를 치르면서 개헌 논의는 잠정 중단된 상태"라며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개헌 논의를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그는 "아무리 지배계급의 이해를 다투기 위해 개헌이 촉발됐다 해도, 노동기본권에는 적극 개입해야 하지 않나. 논의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양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진영도 노동계의 개헌 대응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태호 상임운영위원은 "민주노총도 개헌요구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노동기본권 운동은 보이지 않는다 "며 "물론 최근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나 최저임금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민주노총이 개헌에 있어서는 진보진영의 '내셔널 센터'로서 정치권을 압박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평가했다.

진보정당들도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대응을 고민 중이지만 실제 공력을 쏟을 만 한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13일 전국위원회에서 '개헌 과제와 입장(안)'을 내고 기본권→지방분권→권력구조 등 순차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노동당은 기본권 강화 없이 상층 기득권 권력 분점 방안에 치우친 개헌에 대해서는 '개헌 반대' 주장까지 열어뒀다. 민중당은 민중의 의사를 수렴하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다며 '개헌 5대 방향과 의제'를 설정했다. 변혁당은 헌법상 사회권 확장은 주체 운동 없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개헌공투본(공동투쟁본부)' 전망을 제시했다. 한 진보정당 관계자는 "거대 정당에 좌우되는 개헌 대응에 (진보진영이) 공력을 쏟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치권은 6월 개헌을 약속했지만, 2/3 개헌 국회 통과선을 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유한국당이 여성, 성소수자의 인권조차 담지 못한 자문위 안에도 끝까지 반대한다면 진보진영에서도 방도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털어놨다.(워커스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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