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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경제, 사적소유와 충돌

[워커스 연재]로봇, 디지털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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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의 역설 “계획경제가 더 우월하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가장 큰 차이는 시장경제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 특히 만물이 서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 인류의 데이터 처리 속도와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을 것이다. 빅데이터가 시장을 더욱 총명하게 만들고, 빅데이터 덕분에 계획과 예측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중국 알리바바 그룹 마윈 회장)

마윈은 빅데이터의 발전으로 인해 2030년 즈음에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간의 대논쟁이 벌어져 결국 계획경제가 더 우월한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윈의 이 발언으로 한 때 계획경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예측과 자원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시장보다 기능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계획경제가 확산되리란 보장은 없다. 사회가 그렇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도 아니며,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듯 구닥다리 시스템이 더 좋은 시스템을 없애 버리기도 한다. 계획경제의 도래에 대해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 프린터 등 초연결 사회의 기술적 조건은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오히려 ‘계획’의 필연성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 자체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앞선 연재에서 살펴 본대로 자본주의 성장의 둔화와 장기불황의 심화 속에서 국가의 경제개입 확대와 시장조정 또는 통제가 일상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로봇경제, 고정자본 중심의 생산이 확산되면서 이윤율은 더 낮아지고 시장의 가치법칙이 교란되고 있다. 현재에도 세계 경제는 장기 불황의 위기 속에서 국가 개입과 시장통제가 확대하고 있다. 정부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먼저 정부 주도로 산업구조조정을 하라하고, 자산시장에서는 미국 연준의 금리변동 소식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신해 생산에 더 깊숙이 간여하면 교환가치 대신 사용가치의 생산이 압도하게 된다. 즉, 계획하지 않으면 더 이상 유지가 어려운, 시장 보다는 계획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경향이 필연적으로 확대된다.

생산수단, ‘사적소유’의 위기

한편, 계획경제의 문제는 생산수단의 소유권과 복잡한 충돌을 일으킨다. 이것은 기업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데, 기업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둔 채 계획경제를 이룬다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이기 때문 이다. 이윤창출이 목적인 자본주의 기업에서 (계획을 통해) 모든 기업이 올해 이윤율은 5%에 맞추자는 합의를 볼 수도 없고 보아서도 안 된다. 자본주의 기업의 속성은 경쟁 우위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며 이 속성을 바꾸지 않는 한 일정한 조정과 협의는 가능해도 ‘계획’은 불가능하다.

만약 대부분의 생산수단이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소유로 존재하고 독립자영업자와 같이 특정 기술, 소규모 상점이나 공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상품 경제라면 생산수단의 존재형태, 소유여부는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비재를 만드는 공장이나 기계와 같은 생산재도 그렇지만 생산수단은 많은 자본이 들어간 거대한 공장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계제 대공업 이고 많은 자본을 동원해 시장경쟁에서 압도할 정도로 자본을 축적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나타났다.

이런 생산방식은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고 로봇 생산이 지배적이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초기에 일부 스타트업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경쟁이 끝난 지금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 기업을 인수하고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 많은 자본과 더 많은 기계, 로봇, 생산수단을 장악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계획을 압도한다. 그에 따라 더 많은 로봇,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한 사람에게 더 많은 부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로봇 경제의 발달, 과잉자본에 따라 불평등이 확대되고 생산수단의 소유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식산업, 디지털 경제가 확대하면서 지식재산권에 대한 논란은 전에 없이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창작물을 지식재산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보호한다면 누구의 소유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인간에게만 부여하고 있는 저작권을 인공지능의 성과물에 대해서도 인공지능 소유주에게 인정한다면 정보와 지식재산의 독점이 우려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속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로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인공지능 소유주의 지식이 아닌 다른 빅데이터로 딥러닝 (심화학습)을 한 결과라 이에 따른 문제도 함께 제기된다. AI가 이용하는 데이터를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못하게 데이터 소유권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작권 보호 정도를 훨씬 낮춘 ‘약한 저작권’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저작권자 사후 50년에서 7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을 인공지능의 경우 5년 내외로 줄이고 경제적 보상도 아주 적게 하자는 것이다.

이윤의 사회화와 생산수단의 사회화

로봇경제가 확산되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면 첫째, 자본간 경쟁의 확대로 인해 이윤율의 저하경향이 강화되고 둘째, 그에 따라 독점은 더욱 심화하며 셋째, 노동력 가치도 줄고 일자리도 줄어 임금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평가해 보자.

우선, 피케티나 케인지언들은 자본소득은 커지고 노동소득, 노동소득분배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는 기본적으로 과소 소비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특히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의 질도 나빠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가계의 소비를 확장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안이 있다. 로봇세와 기본소득과 같이 세금을 더 걷어 노동자 가계에 이전소득을 키우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소비부족 문제를 해결하면 지금의 장기 불황도 극복할 수 있고, 케인스가 150년 전에 예견한 로봇은 일을 하고 인간은 여가를 활용 하는 유토피아 사회로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먼저 로봇세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 지금 현재도 공장과 길거리에 많은 형태의 로봇이 들어와 있는데, 어떤 로봇(형태)에 세금을 매길지 애매하다. 설사 인공지능이나 특정 형태의 로봇에 세금을 매긴다고 하더라도, 기술을 통해 세금을 우회하는 방법이 너무 많아 실효성이 없다. 또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혁신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혁신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기업가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기본소득도 어느 정도 각광받고 있지만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기본소득을 전체 국민에게 유의미하게 지급하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세금을 올려야 한다. 간접세를 인상하면 조삼모사와 같기 때문에 소득분배나 소득지원의 효과가 없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낸다면 물가가 덩달아 오르기 때문에 실질소득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도 조삼모사다. 결국 직접세를 인상해야 하는데, 피케티의 설명과 같이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국면이 아니고서는 인류 역사 속에서 유의미한 또는 획기적인 세금인상을 이뤄 본 적이 없다. 다른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현재의 자본운동의 한계 때문이다. 앞선 연재에서 과잉자본에 대해 이야기했듯, (노동소득분배에 비해) 자본 전체의 수익은 더 커졌지만 자본의 한계 수익률은 줄고 있다. 기본소득을 현실화 하려면 자본의 수익에서 소득을 가져와야 하는데, 자본의 단위당 수익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은 타협을 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주장도 나온다. 어차피 노동소득이 줄고 자본소득은 늘어나고,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확대하면 자본소득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자본소득의 노동자 몫을 늘리는 방식이 어떠냐는 것이다. 현재도 노동자와 일반 가계의 소득은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에 적지 않은 부분이 투자돼 있다. 이를 더 확대해 노동자 소유의 주식과 채권을 늘리고 더 많이 분배 받으면 더 많은 소비가 일어날 것이다. 나아가 공유자본으로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생산수단을 아예 소유하면 노동자 몫의 자본소득이 더 늘어난다. 그 상황이 바로 로봇이 일하고 노동자는 더 적게 일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문제는 노동자의 자본소득을 늘리려면 다양한 형태로 자본을 더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도 과잉자본 상태라 한계수익률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과잉자본 문제를 더 심화시키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다. 위와 같은 이윤(자본 소득)을 사회화하여 부족한 가계 소비를 보충하는 방식에 대한 한계는 분명하다.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분배문제에 천착하는 이런 접근 방식은 자본주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특히 먹혀들지 않는다.

다른 한편, 로봇과 인공지능과 같은 생산수단의 소유권,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확대됨에 따라 생산수단 및 지식재산의 사회화에 대한 공론도 확대하고 있다. 로봇화가 진행되면 될 수록, 독점이 심화하면 할수록 생산수단의 소유 자체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화의 필요성과 요구도 더욱 증대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장기침체와 관련해서도 로봇화의 경향과 함께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독점)이윤의 사회화와 함께 생산수단의 사회화에서 찾는 경향은 점차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