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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노동조합

[연속기고] 기간제 교사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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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기간제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학교 현장의 비정규직 교사들이 세우는 첫 노동조합이다. 용기가 치솟고 희망이 넘치는 게 마땅한 일이지만 그에 앞서 백가지나 될 듯이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먼저 스쳐간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 하나 내걸기도 쉽지 않지만 노동조합을 지켜가는 일은 더 어렵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무너져도, 노동조합 활동이 아무리 탄압을 받아도 국가는 노동자의 생존을 지켜주지 않는다. 너무나 기가 막히지만 이것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대하는 사회의 현실이다.

  박혜성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6일 창립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교사들은 왜 지금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가. 이 부분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기간제 교사들이 제외된 결과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이 왜 이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원점에서 되짚어 보기도 전에 이 문제를 심의할 정부의 기구는 마치 기간제 교사들이 임용고시 준비생들과 사범대생들의 임용 기회를 박탈이라도 하는 냥 문제를 왜곡되게 몰고 갔다.

정규직 전환은커녕,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성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던 기간제 교사들에게 오히려 큰 상처만을 던진 정부의 태도는 기간제 교사들의 문제는 당사자 스스로 풀어가야 함을 깨닫게 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닿은 결론은 전국 기간제 교사들의 독립된 노조 설립이다. 노동조합만이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겨울 방학을 맞은 지금, 수많은 기간제 교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방학을 전후로 한 계약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활 기록부 작성 등의 업무를 계약이 만료되기 전인 방학 전에 끝내야 하는 탓에 기간제 교사들의 학기말은 늘 바쁘다. 초과근무를 해야만 하는 빠듯한 일상 속에서도 당장 다음 달의 생계 걱정을 해야 하고 새학기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눈앞의 어느 것, 무엇 하나도 보장되지 않은 삶. 십년, 이십년을 정규직 교사들과 똑같이 일을 해도 기간제 교사의 현실은 늘 거센 바람 앞에 흔들리는 한 자루 촛불만 같다. 노동조합 깃발 아래 촛불들이 모인다면 더 이상 흔들리는 촛불이 아니다. 기간제 교사들의 앞날을 밝히는 촛불, 아이들 앞에서 빛나는 촛불이 될 것이다.

당사자들이 단결할 시간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만큼 사용주라 불리는 기업가나 관료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노동조합이기도 하다. 기간제 교사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차별이나 부당한 계약을 개선할 수 있다. 단결된 힘으로 나아간다면 정부가 내세운 심의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간제 교사들 스스로의 힘을 통해서 고용안정과 정규직 전환 문제를 요구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임용고시생과 사범대생들의 경쟁 상대가 아닌, 그들과 함께 학급 정원 감소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토론하고 그 결과를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라고 요구하고 해결할 수 있다.
당장 기간제 교사들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라. 어느 국회의원이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밥하는 아줌마’라며 조롱했을 때 조리 종사원 노동자들은 그 의원의 막말을 단결된 목소리로 받아쳤다. ‘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밥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아이들의 교육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가를 증언했다. 이 목소리가 퍼져 나갈수록 막말을 해댄 국회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마침내 그 국회의원은 조리종사원 노동자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어야 했다. 이처럼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행동하면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고 인정받을 수 있다. 기간제 교사들도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당당하게 교육의 주체로 설수 있다. 이런 변화들은 당장 학교 현장에서 교육의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 이 변화는 분명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는 늘 그랬다. 피지배자의 전진은 지배자에는 크나큰 걸림돌이다, 기간제 교사들의 전진을 막으려는 벽들은 단단하다. 우리는 이미 정규직 전환 투쟁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그 벽을 부수고 나가야 할 당사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기간제 교사 스스로들이다. 그 힘의 결집체가 노동조합이다.

일자리 사라질까, 다음 학기에 못 구할까 불안해하지 않고 소신껏 아이들 가르치고 싶은 소망. 행복한 교사가 되고 싶은 소망. 그 출발은 기간제 교사들의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은 노동조합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다지는 일, 우리들의 소망을 위해 힘을 모으고 단결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