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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은 성소수자의 문제인가

[워커스]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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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어떻게 만들어!” “여자도 군대 가면 되잖아!”

12월 8일, 서울시 교육청 주최 성평등 교육정책 토론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들이 외친 말이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없애는 거 아니냐” “양성 평등일 때는 남자와 여자인데, 성평등을 이야기할 때는 왜 여성만을 말하냐. 평등한 게 아니다”라며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꼬박 일주일 뒤인 12월 15일, 여성가족부는 ‘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 계획’에서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성평등’으로 바꾸겠다고 했던 입장을 후퇴시켰다. ‘성평등은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반대해 온 보수 기독교계 혐오선동 집단의 항의에 밀린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이전부터 두 개의 용어를 혼용해 왔으며 앞으로도 혼용할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명백한 후퇴다. 어떻게든 ‘성평등’은 안 된다며 개헌 논의, 교육계 토론회, 여성가족부까지 쫓아다니며 반대하고 있는 이들에게 ‘양성평등’이란 곧 성역할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탄스럽게도 여성 가족부는 그 차이점을 설득해내지 못했고, 스스로도 ‘성평등’이라는 개념의 의미와 중요성을 정리하지 못한 채 ‘양성이냐’ 아니면 ‘성소수자냐’라는 프레임에 말려 들어가고 말았다.

지난달 20일 정부의 양성평등기본계획 발표를 앞두고 단체들이 성평등 개헌과 정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성평등’에 반대하기 위한 ‘양성평등’

자신들의 가치에 반하는 변화에 반대 하기 위해 기존의 익숙한 개념과 프레임을 전유하는 방식은 뉴라이트 우파와 이들 세력에 연합하는 보수 개신교계 혐오선동 집단의 주된 전략이다. 과거에는 특히 보수와 뚜렷하게 대립했던 진보진영의 개념과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프레임의 덫을 만들었다. ‘평등’이나 ‘인권’, ‘차별’, ‘녹색’, ‘다양성’, ‘정체성’, ‘여성’ 등 용어 그 자체만으로는 진보의 지향을 드러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는 꽤 효과적인 백래시(반격)를 만들어 낸다. 차별 담론을 ‘역차별’ 논란으로 흩뜨리고,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기 위해 ‘여성의 건강권’을 끌어들이는 식이다. 성평등을 반대하기 위해 양성평등을 내세우는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80년대부터 미국의 우파가 사용했던 전략이며 지금은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요 지역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의미하지만, 성평등은 수십 개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용인하는 문제’라는 이들의 프레임은, ‘시대가 변했으니 남녀평등은 인정하겠지만 성소수자까지 인정하기는 좀 껄끄러운’ 대중에게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해 준다. 즉, ‘양성평등’을 남녀의 것으로, ‘성평등’을 성소수자의 것으로 대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마치 남녀평등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 보수의 입장보다는 진일보한 것으로 보이면서, ‘성평등’에 대한 반대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교육청 토론회에서 쏟아낸 이들의 외침은 그들이 요구하는 ‘양성평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남자와 여자라는 ‘양성’은 신의 뜻에 따라 주어진 역할과 규범이 있으며 그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상호보완’하는 것이 평등이라는 주장이다. 이 ‘상호보완의 평등’을 위해 남녀는 성별에 따른 규범을 잘 지키고 이성애 관계를 맺어야 하며 여자는 출산을 하여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국가는 이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필요한 조건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 이들이 원하는 ‘양성평등’인 것이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이 평등은 애초에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전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심지어 ‘여성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현재 수준의 ‘양성평등’ 요구의 프레임 안으로도 얼마든지 위화감 없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양성평등’을 활용하는 이들의 프레임이 갖는 중요한 함정이다.

평등의 프레임을 전환하기 위해

결국 “‘양성’이냐 성소수자 포함이냐”는 수준에서 우파와 보수 개신교 혐오선동 집단이 설정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현 정부와 여성가족부가 지닌 취약점을 정확히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더 확장해 보면 운동의 담론 또한 그 지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문제다. ‘성’을 ‘양성’의 틀 안에 넣어두고, 평등을 단지 ‘남성이나 여성에게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 주거나 해결해 주는 문제’의 수준으로 유지하려 한다면 설령 용어가 ‘양성평등’에서 ‘성평등’으로 바뀐다 한들 궁극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 정책이나 일·가정 양립정책, 저출산 정책 등에서 대표적으로 이러한 식의 정책이 유지돼 왔고,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관련한 정책에서도 바탕이 되는 전제는 ‘양성’의 프레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이 결국 여성정책과 동떨어진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정책 전반에 반영해야, 양성평등을 성평등의 대립점에 놓는 프레임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 정책에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의 성소수자 인권 보호 조항을 삭제·개정하라고 지시했던 2015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여성 성소수자 궐기대회’의 참가자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성별 규범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받고, 그렇지 못할 때 비난받아왔다. 머리를 길러라, 예쁘게 미소를 지어라, 여자로 생각하고 말하라,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라…. 우리는 다양한 여성 중의 하나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성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성평등에 기여하는 것임을 확인한다.

성별 임금 격차, 여성차별적 노동 환경,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은 성소수자를 비껴가지 않는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러한 차별과 폭력이 증폭된다. 나는, (우리는)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워야만 온전한 우리의 인권을 쟁취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질문한다. 여성가족부가 말하는 여성은 누구인가? 성차별은 무엇인가? 성평등은 무엇인가?”[워커스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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