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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철회 외치며 타오른 촛불 ‘故 조영삼’…소성리 노제

유족, "평화통일 올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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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어머니들이 사드 반대로 TV에 나올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같이 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평화통일 그날 올 때까지 한얼이(아들) 손잡고 여러분과 함께한다는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故조영삼 씨 아내 엄계희 씨)

사드 철회를 외치며 산화한 故 조영삼(1959.9.1.~2017.9.20) 씨의 노제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렸다.

[출처: 뉴스민]

23일 오후 6시, 노제에 앞서 고인의 아내 엄계희 씨와 아들 조한얼 씨는 고인의 영정을 들고 사드기지 앞을 방문해 추모 기도를 올렸다.

오후 6시 20분부터 진행된 노제에는 성주와 김천 시민 200여 명이 모였다. 사드 철회 마중물이 되고자 한 평화주의자 고 조영삼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 주최로 열린 노제는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진행됐다.

고인을 기리는 무용가 박정희 씨의 진혼무, 주민들의 추도사, 고희림 시인의 추도시, 박성운 가수의 추모가를 들으며 주민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출처: 뉴스민]

김윤성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사드 철회와 이 땅 평화를 위해 산화하신 고인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진정한 평화를 위해 힘쓰겠다. 사랑하는 이를 허망하게 보낸 아픔 무엇으로 극복하겠는가. 천만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평화 위해 산화해간 목숨을 봐야 하는가”라며 “우리는 깊은 시름에만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깊은 애도를 보내드리며 위로하지만, 고인의 뜻을 이어 사드 뽑고 평화 심는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라고 말했다.

고희림 시인은 추도시 ‘평화의 바다로 먼저 가신님께’를 낭독했다.

“···님은 혼자서 죽었으나/님은 혼자서 가시지 않았습니다/님은 사드를 데리고 가셨습니다/님은 죽을 때까지도/대통령에게 사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한반도는 뒤돌아보지 않고 전쟁위험으로 접어들었다고/낱낱이 유서에 쓰고 싶었으나 꾹 참으며/미국한테 달려가는 대통령을 믿는다고 했습니다/미국땅인양 유유히 들어가는 사드를 보고는,/소성리 할매들 분통을 더는 살아서 볼 수가 없어/자신의 몸에 불을 놓아/사드를 데리고 님은 평화의 바다로 먼저 가셨습니다//···소성리의 원통을 함께 느끼며/영혼으로 사드를 막겠다는 결단에 대통령은/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십시오/오늘 우리는 님이 데리고 간 사드를 영원히 묻습니다/님은 끝끝내 사드를 데리고 가셨으니까요/죽음으로 영혼으로 사드를. 막아내고야 말았으니까요/부끄럽고 슬프고 분합니다/지금 이 순간 님과 함께 하고 싶을 뿐입니다”

[출처: 뉴스민]

별고을광대의 제례 굿을 끝으로 조한얼 씨는 영정사진을 들고 노제 행렬 가장 앞에 섰다. 이날 주민들은 임을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고인과 유족을 보냈다.

조영삼 씨는 지난 19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건물에서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날 사망했다. 23일 오전 8시 발인 이후 오전 10시 청와대 앞 효자치안센터에서 영결식을, 오전 11시 30분 미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진행했다. 유족은 고인이 거주하던 경남 밀양시로 이동해 밀양성당에서 봉안식을 할 계획이다.

조영삼 씨는 1995년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1917~2007) 씨 초대로 통일부에 신고하지 않고 북한을 방문했다. 이후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2년 귀국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2014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기사제휴=뉴스민]

[출처: 뉴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