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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저항의 주체와 혁명의 조건

[워커스 서평] 알랭 바디우, 서용순 옮김, <투사를 위한 철학> (오월의 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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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월의 봄]
지난 2013년 9월 바디우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지젝과 함께 ‘공산주의 가설’이라는 공동의 화두를 제기해 주목을 끌었다. 알튀세의 제자인 바디우는 알튀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맞이한 철학을 복권시키려 한다. 그는 68혁명이 발발하면서 프랑스 공산당과 68혁명의 대립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한 알튀세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그와 결별한다. 그가 철학을 복권시키겠다는 것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가 철학을 정치와 과학에 동시에 봉합시켰기 때문에 나타난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참혹한 결과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는 국가에 의존하여 국가를 소멸시키는 모순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정치와 철학의 관계

바디우는 철학의 역할이 탈근대 이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리의 해체가 아니라 진리의 발견이며, 철학이 사유해야 하는 진리가 네 가지 조건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바로 정치, 과학, 예술 그리고 사랑이다(36쪽). 바디우에게 예술과 사랑은 정치적 진리에 닿을 수 있는 단편적이고 보편적인 요소인데, 이는 그의 저술에 시와 사랑에 대한 예찬이 줄곧 등장하는 이유다. 이 책 <투사를 위한 철학: 정치와 철학의 관계>에서는 철학의 4대 조건 중 정치 즉, ‘투사’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바디우에 의하면 철학의 본질은 두 가지 경향을 갖는데, 첫 번째 경향은 철학이 본질적으로 반성적 인식이란 것이다. 철학이란 이론적 영역 안에서의 진리의 인식, 실천적 영역 안에서의 가치의 인식이다(41쪽). 따라서 철학에 적합한 형식은 학교의 형식이다. 그런데 제도적 장치로서의 학교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이며, 규율장치이다. 학교에서 어떻게 학문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철학의 두 번째 경향은 실제로 이론적 인식도 실천적인 인식도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은 주체의 직접적인 전환이다. 따라서 제도권 교육에 속해 있는 학문적 성격의 교과목이 아니다(42쪽). 바디우는 철학을 실천적 행위로 규정한다. 철학은 본질적으로 실천의 층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새로운 철학은 항상 새로운 실천의 문제를 제기하고 삶의 조직을 변경시킨다. 일상적으로 철학을 새로운 주체로서의 노동자 민중의 집합 행동을 매개하는 역할로 인식한 것이다.

철학은 새롭고 거대한 규범적 분리를 제안함으로서 모든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경험들을 재조직하는 행위인데, 이러한 분리는 기존의 지적 질서를 뒤집고 진부한 가치들을 넘어서는 어떤 새로운 가치들을 격상시킨다(46쪽).

민주주의와 철학의 변증법

그런데 이러한 철학의 참된 본질과 정치, 민주주의 사이에는 역설적인 관계가 있다. 민주주의는 철학의 원점에서는 필연이며, 철학의 종점에서는 난점이다(56쪽). 민주주의란 실제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이름이다. 하나는 선거, 국회의원, 입헌적 정치 등을 갖춘 민주주의적 국가 형식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집회, 시위, 반란, 봉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중적인 민주주의를 말한다(66쪽).

그가 반대하는 민주주의는 하나의 국가형태로서의 과두정을 말한다. 그것은 자유주의 국가나 ‘현실 사회주의’ 모두 예외가 아니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적 근대성’의 상징(emblem)이 되었는데, 그것은 대중 반역의 직접적 결과이거나, 아니면 수동혁명의 결과로서 전진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그 권력의 정당성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정치를 혁명적 실천의 한 형태라고 할 때, 정치는 새로운 가능태(nouveau possible)를 창안하는 것이다. 정치적 사건은 국가에 대항하는 것인데, 모든 해방의 정치는 국가와 대립한다. 국가는 정치와 양립 불가능하고 정치는 국가의 틀을 항상 벗어나는 것이다.

결국 정치, 민주주의 그리고 철학 사이의 모호한 매듭의 열쇠는 정치의 독립성이 철학의 민주주의적 조건이 변모하는 장소를 창조한다는 데 있다(69쪽). 철학은 진리와 거짓을 구별해내는 분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디우는 해방적 정치를 위한 ‘공산주의’를 다른 철학에서 분리해낸다. 바디우는 민주주의는 최대의 적이지만 공산주의자가 되는 한 에서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공산주의는 지난 20세기의 사회주의권의 실패를 재경유하는 철학이 아닌, 대안적 공간이자 진리의 가능성의 공간으로의 공산주의를 말한다.

투사를 위한 철학

따라서 이제는 새로운 영웅적 형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디우는 영웅의 형상을 프랑스 대혁명을 기준으로 전사와 병사로 구분 지었는데, 귀족적인 전사의 시대와 민주주의적인 병사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영웅이란 어떤 영웅을 의미하는 것일까. 혁명적 철학으로 무장한 투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바디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집단적 욕망을 기본 개념으로 삼는 혁명적 정치는 빈번하게 대립한다. 오늘날의 표현적 변증법, 그것은 법의 보수적 차원과 욕망의 창조적 차원 사이의 관계다. 나는 비표현적인 변증법의 영역 안에서 실재적인 정치적 진리가 법과 욕망의 대립 너머에 위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98쪽)”고 강조한다.

바디우가 원하는 투사의 철학은 담대한 용기, 구체적인 정의, 꿈을 현실로 재구성해내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인내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이념, 새로운 철학적 사유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모두는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공산주의자들이기에, 모두는 철학자들이다!(69쪽).[워커스 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