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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다시 계엄령...‘反인권’이 안 되는 이유들

[워커스]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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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다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그의 반인권적 발언과 조치는 악명이 높다. 두테르테는 급기야, 지난 5월 말 계엄령이 선포된 남부 민다나오 섬 일리간을 찾아 반군 소탕에 투입된 장병들을 위문하면서 “여러분이 3명까지 ‘강간’한다면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해줄 것”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필리핀 대통령 궁은 농담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그를 향한 높은 국민적 인기만큼이나 우려도 크다.

[출처: 두테르테 대통령 페이스북]

두테르테의 계엄령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남부 민다나오 섬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해당 지역은 필리핀 면적의 3분의 1에 달한다. 계엄령은 정부군이 필리핀에서 활동 중인 동남아 이슬람국가(IS) 조직 지도자 하필론(Isnilon Hapilon)의 체포 작전에 나서자 필리핀 내 IS 연계 반군 세력으로 알려진 아부사얍(Abu Sayyaf)과 마우테 그룹(Maute Group)이 라나오 델 수르(Lanao del Sur) 주 중심도시인 마라위 시(Marawi City)를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선포됐다.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후 3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생겨났으며, 교전으로 인한 사상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필리핀 헌법상 계엄령 기간은 60일로 제한돼 있으며 이를 연장하려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필리핀 야당은 계엄령 해제를 위한 청원을 대법원에 냈지만 7월 4일 기각됐다. 필리핀 의회 다수는 계엄령 연장에 찬성하고 있어 계엄령이 무기한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계엄령은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오랜 기간 유지해오면서 필리핀 민주주의에 반하는 상징으로 간주돼 왔으나, 두테르테로 다시 필리핀은 계엄령 국가가 된 것이다.

초법적인 통치

두테르테가 취임한 뒤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으로 지금까지 무려 1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과 자경단에 의해서 초법적으로 1만 명이 살해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두테르테는 “300만 명에 달하는 마약중독자 모두를 죽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초법살인에 대해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오히려 사형제를 부활하겠다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일축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전히 80%에 가까운 필리핀 국민들의 지지가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람이 죽더라도 사회적 안정을 바라는 여론 속에서 극단적인 상황까지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용납할 수 없는 폭력통치

폭력으로 통치하는 두테르테의 필리핀은 올해부터 아세안 의장국까지 맡으면서 자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반공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인권을 억압할 수 있다는 박정희를 비롯한 과거 아시아 지역 독재자들의 논리가 이제는 테러와 범죄에 맞서서 인권을 억압할 수 있다는 논리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무슬림 소수민족에 대한 학살이나, 필리핀의 계엄령도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공포조장 위에서 초법적 살인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더욱이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내정간섭으로 치부하는 두테르테의 언행은 자국의 독재를 정당화 하려는 캄보디아나 태국 정부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초법적 살인도 불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안정이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아시아 지역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소수민족이나 특정 종교뿐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들도 그 적이 될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두테르테에 대해 보도하는 한국 언론사 기사의 온라인 반응을 보면 한국도 두테르테처럼 범죄자들을 즉각 사형시켜야 한다는 댓글들이 압도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됐다는 양심의 소리에서 출발하는 사형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오랜 인권운동의 의제들이, 고단한 삶의 출구를 강력한 공권력에서 찾고 있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또다시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두테르테는 필리핀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인 지주가문들의 토지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빈곤층의 문제인 마약문제에 대해서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잘못된 처방도 문제지만, 높은 지지율을 얻는다고 해서 반인권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정부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반인권적인 발언들과 조치들을 하나 둘씩 용인하다보면 결국 권력에 취한 정부는 괴물이 되어 우리의 삶을 옥죌 것이기 때문이다. 두테르테의 폭력 통치는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워커스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