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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는 비정규직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워커스]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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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교과서 앞장의 단골 문구에서 볼 수 있듯,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야말로 이 이기적 본성에 부합한다고 가르치죠. 각자의 이기심에 따른 행위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며 스미스의 말을 빌려 이기심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이윤추구에 있어 이기심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이런 태도가 노동자들을 대할 때에는 돌변합니다. 좀 더 괜찮은 식사를 하고, 좀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이기주의’랍니다. 하루아침에 문자 하나로 해고되는 파리인생 말고, 영원히 차별받는 2등 인생 말고, 같은 일을 하면 비정규직 말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하면 ‘지나친 욕심’이랍니다. 혼자서는 사장 앞에 주눅들 수밖에 없어 동료들과 같이 노조라도 하나 만들면 ‘강성, 귀족’ 딱지를 붙입니다. 사장님은 이기적이어도 되고, 노동자는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걸까요? 별로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가 연일 화두입니다. 그런데 취임 직후 대통령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동자들도 한꺼번에 다 받아내려고 하진 말라”고 말했습니다. 한 언론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노조도 좀 욕심을 버리라고 훈계하는 분위기”였다고 했죠. 경총을 비롯해 경제신문과 언론은 이마저도 부족한지 정규직화는 ‘폐단’이라고 설파하려 합니다. 20년 전, 정부와 자본은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한꺼번에 밀어붙이며 거리낌없이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미 이 나라 일자리의 절반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오늘, 신정부는 비정규직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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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타입 : 광주형 중규직

우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배웁니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면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아름다운 ‘윈-윈’ 모델이죠. 하지만 이 모델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갈등을 빚는 당사자들은 대개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죠. 예컨대,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 수리기사 노동자가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꿈꾸지만, 어쨌든 이해관계가 부닥치는 현실 속에 낭만 따위는 없죠. ‘윈-윈’이라고 하지만 그 실상을 뜯어보면 ‘누가 이익을 누리는가’, 그리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가 드러납니다.

《워커스》는 이번 호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취재했습니다. 누군가는 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얻겠지만 누군가는 생활의 조건을 포기해야 하죠. ‘중규직’, 노무현 정권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이 말은 “정규직만은 안 된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정규직이 되는 게 욕심이자 특권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인 요즘. 대통령이 모델로 제시한 광주형 일자리는 누구를 위한 타협일까요.

B 타입 : 무기계약직

“짧고 굵게 살래, 아니면 가늘고 길게 살래?” 양자택일의 프레임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이 상황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굵고 길게 사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꼭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느냐고.

파견, 도급, 하청, 특수고용… 비정규직이 전면 도입된 지 20년, 비정규직의 유형은 갖가지로 불어났고 명칭도 복잡하게 다양합니다. 때로는 불법을 피해가기 위해, 때로는 마치 비정규직이 아닌 것처럼 치장하는 용도로 쓰이죠. ‘무기계약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을 뜻하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평생 비정규직’이죠. 일상적인 해고 위협은 줄어들지만 임금 역시 깎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 이후 안전업무 외주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서울시는 직접고용하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무기계약직 채용이었죠. 노동조건이 더 악화된 김군의 동료들은 직장을 떠났습니다. 처우개선이냐, 고용안정이냐. 선택의 강요를 거부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다른 길이 보일 겁니다.

C 타입 : 자회사 전환

KTX 한 번쯤 타보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KTX에서 정복을 입고 승객들을 안내하는 승무원들도 보셨을 겁니다. 이 승무원들은 KTX를 운영하는 철도공사의 직원일까요? 회사는 이 승무원들이 자사의 직원이 아니라고 합니다. ‘코레일 관광개발’이라는, 철도공사의 자회사 직원이라는 거죠. 당연히 철도공사 직원과의 차별이 생기고, 철도공사 역시 고용책임으로부터 벗어납니다.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천명한 뒤 인천공항공사는 발 빠르게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 그 ‘대책’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게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회사 직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이죠.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일한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임금이 깎이는 이 자회사 전환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기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SK 브로드밴드는 인터넷 및 IPTV 설치․수리기사들을 자회사를 설립해 채용하겠다고 했고, LG 유플러스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신업계 노동자들은 수년간 “진짜 사장이 나오라”고 외치며 직접고용을 요구했죠. 끝끝내 “너희는 우리 직원이 아니야”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장 얼굴 한 번 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D 타입 : 비정규직 차별축소

‘비정규직 철폐’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 한 단어 차이일 뿐인데, 그 의미는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느냐, 아니면 제도는 온존시키되 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이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죠. 사실 비정규직 자체가 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을 두어 사용자가 비용을 줄이고 더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즉,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성립되지 않는 말이거나 차별을 ‘완전히’ 철폐하는 게 아니라 일부 조정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비정규직 제도를 어느 수준으로건 용인하는 순간, 그것은 차별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과 격차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보수언론에서도 이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문제는 그 격차가 ‘누구의 책임으로, 왜 생겼고,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이겠죠. 하지만 비정규직 전면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파견법을 통과시키고 개악했던 정치인들, 누구보다 앞장서 불법도 불사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재벌들은 여기서 쏙 빠집니다. 그리고 희생양의 제단에 정규직이 올라가죠. ‘격차 해소’가 아닌 ‘하향평준화’, 자본의 ‘빅 픽쳐’에 노동자의 미래가 있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E 타입 : 비정규직을 더 확대해야 한다

“노동의 종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두가 신기술과 인공지능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세상입니다. 그와 함께 ‘xx년 후에 인간 일자리의 xx%가 사라질 것’ 등등 마침내 노동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묵시록적 주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 실리고 있죠. 사실 기계와 기술이 발전한 이래 노동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이 빠지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기계파괴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니까요.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이윤창출에 불필요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왜 이윤이 꼭 쌓여야 하는지, 그 이윤을 누가 갖는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말이죠. 그리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위협과 함께 ‘경직된 정규직 일자리’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경제신문에는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각종 ‘모델’을 언급하며 ‘다양한 일자리’라는 미명 하에 시간제, 초단기, 유연근무 등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실리고 있죠.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더 많이 대신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적은 노력으로 모두가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세상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몇 사람이 그 많은 걸 독차지하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다른 세상 말입니다.

F 타입 : 정규직화 / 비정규직 철폐

우여곡절 끝에 이 길찾기의 가장 구석진 곳에 도달한 당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20년 전에는 누구나 당연하게 여겼던 정규직, 이제는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기득권으로 낙인 찍히고 있죠. 이미 전체 고용의 절반으로 줄어든 정규직 일자리는 무기계약직, 자회사 직원, 중규직, 시간제 등 각종 ‘대체 일자리’가 난무하며 아예 멸종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하긴, ‘비정규직 제로’라고 했을 뿐 ‘모두를 정규직으로’라는 약속은 없었지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명칭을 바꾸는 신종기법의 진실은 오래지 않아 당사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규직을 귀족이라 욕하면서도 정규직이 되길 희망하는, 서글픈 모순의 시대입니다. 그저 자본의 이데올로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정규직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정규직에 대한 시선은 싸늘합니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구호가 있죠. 그런데 현실을 보면 때로는 “연대를 버리고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정부가 비정규직 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 지금, 정규직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G 타입 : 비정규직은 본인책임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면 으레 이런 ‘악플’이 달리곤 합니다. ‘시험도 안 보고 쉽게 공무원 되려고 한다.’ 때로는 개인이 능력이 없어 비정규직이 된 거라는 인신공격 수준의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봅시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공공기관이 책임지고 고용하라는 게 잘못된 요구일까요? 공공기관이 앞장서 고용을 줄이고 외주화를 늘린 것이 문제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무원 자리를 빼앗은 건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공공기관 업무였고, 그들은 원래 공공기관 노동자여야 했던 것입니다.
정규직 일자리를 절반으로 줄여놓고, 정규직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 ‘무능하다’고 한다면 그건 낙인찍기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천만 명에 달하는 이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무능한’ 사람들이라면, 그건 무능해서 비정규직이 된 게 아니라 비정규직인 사람들에게 ‘무능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인 게 아닐까요?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노동의 현실을 비판한 어느 책의 제목처럼,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H 타입 :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유형을 보며 “기후변화는 존재하지 않는 사기”라고 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비정규직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그다지 심각하지 않거나 혹은 기업들이 돈을 더 많이 벌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경제신문을 탐독하는 애독자일 수도 있습니다. ‘정규직화’라는 단어만 나와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기업 규제부터 풀어라’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거두절미하고, 바로 그 ‘규제완화’의 결과가 오늘날 넘쳐나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만들었다는 점만 짚고 싶습니다. 심지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지 않아도 재벌들은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정신으로 불법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늘려왔지요. 대법원 판결조차 시크하게 무시하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전임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파견법을 고쳐 아예 합법적으로 비정규직을 늘리게 해달라고 청원했지요. ‘규제는 기업에게 독’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규제완화’라는 긍정적인 어감의 포장지에,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먹일 독이 담겨 있다는 점이겠지요.[워커스 32호]
덧붙이는 말

강후 |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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