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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 엄마를 부탁해!

[파견미술-현장미술] 전태일 40주기 전시와 탄압, 계속된 실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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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2일, 서울 청계천6가 전태일 다리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출범식을 했다. 파견미술가들과 시사만화가들은 40주기 행사의 일환으로 ‘거리문화예술전’을 진행하기로 했다. 전태일 열사를 그린 인물 초상화와 캐리커처 작품 모음인 ‘엄마를 부탁해’, 청년실업과 비정규노동문제 등을 다룬 시사만화작품들을 전시하기로 한 것이다.

10월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추모 문화제 ‘2010 전태일의 꿈’이 열린 시간, 파견미술팀은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 모였다. 지난 3주간 전미영의 주도 아래 온라인 모임방인 <청년 전태일을 그리는 예술인들>을 만들고 전태일의 인물 초상화와 캐리커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은 그림들은 하나의 걸개그림으로 완성되었고 전태일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생각하며 “엄마를 부탁해!”를 제목으로 정했다.

전태일 다리 아래 청계천 물이 흐르는 산책로 주변으로 걸개그림과 시사만화 현수막을 설치했다. 전태일 재단에서 서울시설공단과 사전 협의를 한 것이기에 현수막을 거는 동안은 별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사만화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인지 지나가던 관리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역시나 눈빛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틀 후 서울시설공단은 설치한 작품들을 몰래 철거한 후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고 한쪽 귀퉁이에 모아 놓았다. 전시를 보던 아는 이의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가 순찰을 돌던 청계천 관리자들과 심하게 말싸움도 하고 현수막을 잡아당기며 약간의 몸싸움도 생겼다. ‘허가받은 거다. 서울시설공단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설치한 작품이다. 확인해봐라.’ 우리의 주장과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관리자들의 이야기는 서로 상반됐다. 시설관리공단에 연락을 해봤다.

“내용 중에 정부 비판하는 것들이 있어서 뗐다. 그런 줄 알았으면 허가를 안 해줬을 것”이 답변이다. 서울시설공단은 전시 이전 사전답사를 할 때부터 계속 그림의 내용을 물어왔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사만화전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어떤 그림이 전시될 것인지 짐작 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신문과 언론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그림 한 장 한 장을 보고하고 검열을 하겠다는 건 문화예술인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사전검열에 응해줄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권력이 예술을 탄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전태일 40주기 즈음 G20정상회의(Group of 20: 세계 경제를 이끌던 G7과 유럽 연합(EU) 의장국에 12개의 신흥 경제국들을 포함한 20개 국가의 모임)가 서울에서 열리고 그로 인해 정부 비판적인 작품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보여주기가 스스로 부끄러웠던 건 아닐까.


작품을 다시 걸어야 했다. 착취 받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온몸을 불사른 청년 전태일.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 나갔던 바로 그 다리 아래에서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전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자회견문을 쓰고 서울시설공단 앞에 모였다. 기자회견 하고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작가들은 종이박스에 “청계천문화탄압성지!”라는 작품을 들고 계단과 인도와 차도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시설관리공단 계단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 위에 이동수 만화가와 전 시사만화협회 대표 최민은 즉석에서 공단의 행태를 풍자하는 만평을 그리고 서명도 했다. 종이박스 위에 피켓은 작품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작품을 걸고 전시를 이어갔다. 하지만 시설공단 측은 작품을 또 철거했고 이번에는 몰래 한 것이 아니라 공문으로 내용을 보냈다. ‘공공시설이고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라서 불허한다’는 내용이었다. 시사만화는 다시 걸 수 없었고, 작품이 걸렸던 곳에는 관리자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이 땅에 민주주의는 언제 오는 것인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권력의 입맛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뼈저린 교훈을 다시 한번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 파견미술팀은 마무리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마무리 퍼포먼스는 김강 작가의 제안으로 다양한 형식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개개인이 알아서 준비해 오고 그것을 40년 전 전태일이 8시간 노동제를 외치며 죽어간 청계천에서 ‘8시간 예술하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용산 참사현장에서 스티로폼 꽃을 깎던 경험을 되살려 필자는 꽃을 깎았고, 다 만들어진 꽃은 ‘8시간 예술하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전태일 다리 위 전태일 동상 앞에 꽂았다. 그리고 8시간 바느질을 한 손미나 작가는 동상에 목도리를 둘렀다. 뜨개질을 하는 작가, 팔지 않는(?) 물건을 깔아두고 장사하는 작가, 온종일 다리 위를 서성이며 청소하는 작가 등 이유도 모르고 내용을 몰라도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좋아했다. 질문도 했다. 뭐 하는 거냐고. “우린 8시간 노동을 예술로 하고 있습니다. 청년 전태일의 외침을 기억하시죠?”

그리고 이듬해 2011년 9월 7일,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셨다. 제주 강정마을에 있던 파견미술팀은 급하게 서울로 올라와 전진경은 장례식 걸개그림을, 이윤엽은 부활도를 제작해 함께했다. ‘어머니를 부탁해’ 걸개 전시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기 위해,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 오늘도 노동자 투쟁의 현장과 함께한다.[계속]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문화연대가 발행하는 이야기 창고 <문화빵>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