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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연정의 바보같은사랑](93) 현대중공업·미포조선 비정규직 이성호·전영수 씨 고공농성투쟁 ➂ 고공농성 75일 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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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투쟁하는 분들에 비하면 행복하지예

6월 24일, 울산 현대미포조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세 번째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고공농성 75일차가 되는 날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지만, 가뭄과 더위를 식혀주기엔 턱 없이 부족한 양이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 중인 공투위(‘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해고 노동자들이 비를 피할 비닐 한 장을 치지 못하고 종일 경찰들과 실갱이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위에 그늘이 있어서 햇빛은 피하고 있습니다. 길에서 투쟁하는 분들도 많은데, 거기에 비하면 행복하지예. 울산은 비가 안 오는데, 단비가 내려서 땅을 촉촉이 적셔야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을 텐데요.”

이성호 씨는 경남 진주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진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 때문일까? 고공농성 중인 이성호 씨는 가뭄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비가 온다니 청와대 앞에서 천막 한 장을 못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을 걱정한다. 마치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자식을 둔 부모 같다.

“비 오는데 비닐을 빼앗아 가다니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싸우는 건데, 언론에서는 이상한 보도나 하고... 위에서 페이스북 보고 있으면 진짜 미치는데, 밑에 계신 분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허리 통증과 자동차 소음 스트레스는 여전하다고 했다. 100미터 달리기는 못해도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제자리걸음 등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는 밑에 동지들이 잘 챙겨주고 시민들이 손수 만든 반찬도 올려주어 잘 먹고 있단다. 이 날은 생선조림과 나물에 밥을 먹었다고 했다.

“세끼 다 먹고 있어요. 안 먹으면 밑에 동지들이 걱정하니까요. 밑에 동지들 힘주기 위해서라도 먹어야죠.”

지나가던 자동차가 경적소리를 울려주거나 힘내라고 소리 질러주는 시민도 있고, 그의 이야기가 언론에 나가고 나서 아이들 용돈을 주고 싶다는 연락도 왔었다고 한다. 성호 씨는 그래도 세상에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얘기한다. 사측에서는 아직 아무 이야기가 없다며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밑에서 올려준 식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이성호 씨 [출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일 할 땐 신나에 취하고 퇴근하면 술에 취하고

이성호 씨가 조선소 하청업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이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가 경기가 안 좋아 부도를 맞고 살 길이 막막했을 때였다. 현대중공업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고향 선배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입사를 권유했다. 그 선배는 눈썰미 있는 사람은 6개월 정도만 일해도 기술을 배워 A급 단가를 받는 숙련공이 될 수 있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조선업이 호황이었을 때다. 오히려 그때가 지금보다 임금 단가가 나았다. 그는 배 안밖에 페이트칠을 하기 전에 그라인더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도장공으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입사하여 일을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신나 같은 화공약품을 많이 만지면서 작업하니까 질식할 거 같더라고요. 페인트 분진가루는 진폐증이 생길 수도 있고...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일 할 때는 신나에 취하고, 퇴근하면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신나와 술에 취해 살던 성호 씨는 1년 뒤에 용접한 부위를 그라인더로 제거하는 사상공으로 업무를 바꾸었다. 하지만, 이 일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다쳤다.

“그라인더가 무겁기도 하고, 분당 7,500번을 회전하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살이 순간적으로 날아갑니다. 살도 몇 번 꿰매고 무릎이랑 다리도 많이 다쳤어요. 보호장구를 착용해도 안 다치고 작업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에요.”

하지만, 산재 처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산재 신청을 하면 회사에 ‘찍혀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청노동자가 다치면 회사에서는 짐차로 다친 노동자를 몰래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공상처리’라는 명목으로 치료기간 동안 임금의 70%를 주겠으니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공상처리를 하면 나중에 후유증이 생겨도 방법이 없다. 치료비는 업체에서 부담할 때도 있었고, 다친 노동자의 과실로 책임전가를 하여 업체가 부담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70%의 임금마저 안주려고 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산재 신청을 하면 해당 업체가 계약해지를 당하거나 하는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노동자 산재를 숨기려고 하는 거죠. 산재 신청하는 노동자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요. ‘일 못하는 사람’, ‘건강 이상자’ 이런 식으로 올립니다. 이걸 하청노동자들이 다 아니까 신청할 엄두를 못내는 겁니다.”

내가 안 죽어서 천만다행이다

성호 씨는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죽는 노동자들도 많이 봤다. 물에 빠져서 죽는 사람,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죽는 사람. 1년에 10명 이상이 죽어 나갔다. 그 중에 70~80%가 그와 같은 처지인 하청노동자였다. 그가 일하는 작업 공간 바로 옆에 있던 배가 폭발해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봤다.

“나쁜 생각이지만, 그땐 내가 안 죽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남은 거니까요.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생각해요.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이 나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돈 때문에 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데 알려진 산재 사고가 별로 없어요. 간단한 사고가 많고 중대형 사고가 없어야 하는데, 여기는 간단한 사고는 없고 중대형 사고가 많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고, 죽은 사람은 많은 거죠.”

  4월 26일, 2017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장면 [출처] 노동건강연대

성호 씨는 일상적으로 일하다가 다치는 노동자들의 산재를 회사가 은폐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에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하청노조가 힘이 없어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4월,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에서 2017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선정한 ‘2017 최악의 살인기업’에 현대중공업이 1위로 선정되었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발생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대중공업의 산재사망자는 11명이었고, 이 중 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정규직들은 위험한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아요. 그라인더 작업이 진동 회전 작업이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이 생길 수 있는 손목이나 어깨에 안 좋은데, 정규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세상 바꾸고 싶어요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힘들게 일하면서 가졌던 계획이 있었는지 물었다.

“저는 시골에 살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50대 중반 쯤에 막내 대학 보내고 나면 시골 가서 농사짓고 욕심 없이 살고 싶었는데, 노조 가입하고 달라졌습니다. 죽을 때까지 목숨 다할 때까지 힘든 노동자가 있으면 함께 하고 싶어요. 철없이 남 배려 안하고 이기적일 때도 많았습니다. 노조 가입하고 연대 다니고 활동하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어요.”

성호 씨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세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이들 학원도 제대로 못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아내가 마트에서 일하면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걱정은 되지만 옳은 일이라며 응원해 주는 게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두 번 다시 애들한테 이런 세상 안 물려주고 싶습니다. 힘들어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공농성을 하게 된 겁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에서 제작한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방법 관련 웹자보 [출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금속노조

고공투쟁 빨리 승리하는 기록을 남겨야겠어요

“고공은 150일은 돼야 그때부터가 진짠데... 둘이 싸우진 않죠? 사이좋게 지내세요. 그래도 150일쯤 지나면 싸워요. 근육 빠지면 내려와서도 고생이니 운동은 정말 열심히 하세요. 연대 오는 사람이 적다 많다 탓하지 말고 둘이 서로 힘주면서 이겨 내세요”

한 달 전, 6년 전에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309일 간 고공농성을 했던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이곳 고공농성장에 방문했다. 위 내용은 김 지도위원이 교각 밑에서 전화로 농성자들과 나눈 대화를 금속노조 울산지부 이한별 조직부장이 정리한 내용이다. 이성호 씨는 김 지도위원의 ‘150일부터 진짜’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 많이 놀랐다고 했다.

“우리가 빨리 승리하는 기록을 남겨야겠어요. 우리 투쟁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그렇게 될 겁니다.”

함께 고공농성 하고 있는 전영수 씨 하고는 만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은 없다고 한다. 요즘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이겨서 내려가면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실업급여는 받고 계신 거예요?”

“실업급여 신청을 못했습니다. 4월 9일 날 업체 폐업되고 11일 날 바로 올라 와서요. 신청 했어도 실업급여는 받을 수가 없었겠네요. 여기(고공농성장) 있어서 구직활동을 못하잖아요. 하하...”

이성호 씨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눅눅한 밤공기 속에 스며든다. 단비는 내릴 거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