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롯데의 포커페이스, 구조조정 칼 꺼내나

[워커스 이슈] 수상한 롯데의 귓속말(2)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불쌍한 롯데.” 사드 보복으로 인한 롯데 위기는 갈수록 부풀려졌다. 기회는 이때다. 그동안 그룹이 하지 못했던 걸 실행에 옮겨야 한다. 바로 적자 사업 정리, 구조조정 발판 마련이다. 그 속에서 진짜 위기를 맞은 건 노동자들이다.

[출처: 자료사진]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선 협력업체 중심으로 노동자 수가 줄고 있다. 중국인이 줄자 중국어만 하는 교포들이 그만두기 시작됐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3월 매출 급감 후 바로 해고됐다. 제주는 협력업체 폐점까지 나타나고 있다. 롯데그룹의 사드 부지 제공으로 인한 피해는 중소 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롯데 노동자가 위기에 몰릴 만큼 롯데그룹의 재정 상태는 악화했을까. 아니면 과장된 위기를 활용해 중국 사업 정리, 면세산업 구조조정을 노리는 롯데의 포커페이스인가. 중국 롯데마트 영업정지부터 중국인 한국행 단체관광 금지에 따른 면세산업 동향까지 내막을 살펴봤다.

롯데쇼핑은 중국 매장에서의 영업 손실에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073억 원을 기록했다

롯데의 전화위복?

일단,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과 롯데마트 영업정지 조치로 롯데의 중국 사업이 위험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롯데마트 99개 매장 중 12개만 운영되고 있다. 74개 매장은 중 소방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다. 13개 매장은 자율 휴업에 들어갔다. 남은 12개 매장도 사실상 발길이 끊겼다.

지난 2월 말부터 롯데마트는 마비 상태다. 3개월간 이어진 영업 마비로 매출 손실은 3천억 원을 넘을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 롯데마트 전체 매출은 1조1,290억 원, 월 940억 원이다. 롯데그룹은 마트, 면세점 등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3~4월 매출 손실액이 5천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롯데마트가 속한 롯데쇼핑은 중국 매장에서의 영업 손실에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07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4% 감소로 변동이 거의 없는 셈이다. 매출액도 약 7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7% 감소에 그쳤다. 중국 롯데마트 영업정지가 롯데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은 셈이다. 롯데쇼핑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 비중은 약 15%에 불과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없었다면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흑자를 기록했을까. 2008년 6월 롯데마트는 중국 북경에 1호점을 냈지만, 출발부터 적자의 연속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국 롯데마트 영업이익은 2011년 –270억 원, 2012년 -400억 원, 2013년 -830억 원, 2014년 -1,410억 원, 2015년 -1,480억 원, 2016년 –1,240억 원이었다.

롯데마트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갑자기 엄청난 적자가 생긴 것이 아니다. 이미 중국 내 대형마트 시장엔 월마트, 까르푸, 대만계 RT 마트, 중국 국영기업 화룬마트 등이 탄탄히 자리했다. 롯데는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어 무리가 따랐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0년 27개에 달했던 중국 이마트는 올해 5개만 남게 됐다. 까르푸, 월마트보다 늦게 진출해 성장에 한계가 드러났다며 매장을 철수한 결과다. 2011년 11개 매장 철수, 2014년 중국 톈진 4개 폐점, 지난 3월엔 상해 2개 매장을 폐점했다.

롯데쇼핑 주주들도 중국 사업 철수를 요구해 왔다. 물론 사드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다. 롯데는 최근 ‘사업 효율화 차원’이라며 북경 일부 매장을 철수했지만, 사드 보복의 여파로 보도됐다. 지난 2월 말, 3월 초 중국 당국의 소방점검에 따른 롯데마트 영업정지도 ‘1개월’ 처분이었다. 하지만 약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롯데마트는 재개점을 하지 않았다. 영업을 다시 개시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게 뻔했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중국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롯데그룹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중 당국의 롯데마트 영업정지 처분은 중국 사업 철수의 적절한 명분이 된 것이다.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하남석 교수는 12일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롯데의 중국 사업은 이미 작년부터 고전 중이라는 얘기가 돌았다”며 “까르푸, 월마트 경쟁에서 롯데마트는 계속해서 부진했지만, 확장 정책을 펴왔다. 결국 큰 무리를 가져왔고, 중국으로부터 롯데마트가 영업정지를 받은 시점을 보면, 장사 안 되는 롯데를 중국이 ‘정리를 해준 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장영석 교수는 “롯데마트는 M&A 방식으로 중국에 진출했는데, 인수한 기업의 고급 인력인 중국전문가를 대체하거나 현지 노동자 교육이 미비했던 등의 전략상 문제가 많았다”며 “준비 없이 확장된 롯데마트는 2015년부터 상당히 좋지 않은 조짐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홍보팀은 12일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중국 사업 철수 계획은 현재는 없다”면서 사드가 중국 사업 철수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위기의 롯데 노동자

국내 면세점에서 영업 이익이 준 건 사실이다. 이 피해는 노동자들이 떠안았다.

5월 11일 오전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을 찾았다. 약 한 시간 동안 중국인 관광객은 20명 정도였다. 면세점 고객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단체 관광객은 없었다. 손님보다 직원이 배로 많았다.

이곳 노동자들은 사드 사태가 터지기 전 2월까지만 해도 매장에서 중국어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국인을 응대하기 위해 한 매장에 직원 4~5명이 부대끼며 일했다. 그러나 3월 이후 매장이 썰렁해지자 노동자도 하나 둘 씩 사라졌다.

문제는 기업이 과장된 위기를 구조조정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롯데면세점 노동자 김모 씨는 지금이 2015년 메르스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사드 이전 김 씨가 일하는 T 매장에는 직원 4명과 아르바이트 노동자 1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3명만 남아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보이지 않자 중국어만 하는 교포 직원이 스스로 관뒀다. 아르바이트는 3월 이후 해고됐다. 그는 심각한 고용불안을 호소했다.

“매장 오픈은 10시인데, 오후 1~2시가 돼야 개시한다. 또 우리 매장 같은 국내 저가 브랜드는 해외 수입 브랜드에 비해 이런 상황에서 버틸 힘이 약하다. 20년 동안 일한 롯데에서 처음 겪는 일이다. 예전엔 오프라인 매장에서 적자가 나도 온라인으로 매출을 채웠는데, 지금은 오프라인, 온라인을 합해도 하루 수백만 원씩 적자가 난다. 20년 동안 일한 롯데에서 이런 상황까지 오니 고용불안은 말도 못한다.”

제주는 매장까지 철수하는 지경이다. 롯데제주면세점 S 매장 직원은 5명이었지만, 사드 이후 비정규직 2명을 해고했다. 그러고도 영업 손실을 견디지 못해 5월 폐점했다. 이 업체는 온라인으로만 운영하겠다고 노동자들에게 통보했다.

올해 11월에 문을 여는 롯데면세점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은 롯데 노동자들을 더 옥죌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롯데면세점이 신규 채용을 할지 미지수다. 오히려 파견, 외주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롯데 외 다른 면세점의 경우 판매 직원 고용 형태를 외주로 확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현장은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인력 조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롯데면세점 홍보팀은 12일《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사드 보복, 매출 감소로 인한 고용조정은 없다”고 전했지만 정규직 직영사원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홍보팀은 “협력업체 판촉직 고용 상황까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경우, 홍보팀이 고용 조정이 없다고 말한 정규직 직영사원은 150명에 불과하다. 반면 인력 조정 대상인 협력업체 판촉직은 1천 명에 달한다.

롯데면세점노조 김금주 위원장은 “사드로 피해를 보는 건 협력업체, 하청 노동자”라며 “특히 규모가 작은 영세업체일수록 타격이 커 고용불안이 심각하다. 영세업체 외 보세운송, 면세품 보관, 포장 등의 비정규직 용역 노동자도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그룹의 위기가 아닌 롯데 노동자의 위기다

포커페이스의 이면, 구조조정

롯데는 과연 인력을 줄일 정도로 매출 위기를 겪고 있을까? 2017년 1분기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는 1.38조 원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분기 매출 1.33조 원과 비슷한 수치다.

면세산업 전반을 봐도 마찬가지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3월 전국 면세점 매출은 9.3억 달러(한화 약 1조 원)를 기록했다. 지난 2월(11.4억 달러, 한화 약 1.2조 원)에 비해 18.27% 감소했지만, 2016년 3월(8.2억 달러, 한화 약 0.9조 원)보다는 12% 높다. 최대 호황을 누려온 만큼 사드 여파로 매출이 급감해도 적자를 안겨줄만한 큰 타격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3월 NH투자증권은 사드 이후 면세산업을 두고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치를 위한 송객수수료 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업이익에 매우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출혈 경쟁 상태이던 면세산업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 고비를 넘기면 오히려 기회”라고 진단한 바 있다.

문제는 기업이 과장된 위기를 구조조정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언론이 롯데의 위기를 극대화하면, 롯데는 경쟁이 과열된 면세산업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미 ‘롯데 7월 회복설’이 나오고 있지만, 현장에선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실제 호텔롯데는 15일 분기사업보고서를 통해 “메르스 여파에도 단기간 회복을 보인바, 사드 배치 결정에 불구하고 방한 외국인 수는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며, 정부정책과 MICE 산업 확대, 한류 열풍 등에 따라 방한 외국인 수는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롯데그룹의 위기가 아닌 롯데 노동자의 위기다. 롯데쇼핑의 이익잉여금, 즉 사내유보금은 11조 원(롯데그룹 내 1위, 2017년 3월 기준)에 달했다. 롯데면세점 매출이 휘청거려도 호텔롯데(면세사업 주체) 사내유보금은 7.6조 원(롯데그룹 내 3위)이다. 롯데그룹 전체 사내유보금은 35조 원. 사드 이후 롯데의 포커페이스에 노동자들만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워커스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