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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주류를 거부한 노동자계급과 도전들

긴축과 노동유연화에 맞선 좌파의 대안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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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가 5년 만에 끝났다.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도 재선을 못하기는 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출마는 했었다. 반면, 올랑드는 이번 선거에 명함도 못 내밀었다. 이제 프랑스 자본가들에게 사회당은 쓸모조차 없어졌다. 이전 좌파 프랑수아 미테랑이나 우파 자크 시라크 정부는 10년씩은 갔다. 그들은 마크롱이란 전직 은행가, 뱅스터(강도은행단)를 필두로 새 정부를 만들 셈이다. 자본주의 위기와 일어나는 민중들 속에서 프랑스 1%는 숨이 가쁘다.

  라 프랑스 앵수미즈(FI) 집회에서 멜랑숑이 연설하고 있다. [출처] https://lafranceinsoumise.fr]

마크롱은 누구인가

24세 연상의 연인과 부부인 에마뉘엘 마크롱. 39세의 신예 정치인이자 엘리트 출신의 성공한 은행가. 여당 사회당까지 박차고 나와 ‘전진!’이라는 운동을 만든 사회개혁가. 이 대통령 당선인은 ‘러브스토리 조금’, ‘성공담 조금’, ‘기성정치에 대한 반대 이미지까지 조금’ 넣고 만들어졌다. 물론 극우 국민전선의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이 마크롱에 꽤 그럴듯한 상대역을 해줬다.

재정스캔들이 없었더라도 우파 피용 후보는 프랑스 1%엔 매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등 기성정당이 몰락하는 서구에서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같은 주류의 적자는 곧 ‘퇴물’일 뿐이었다. 이미 사르코지나 올랑드처럼 사회적 반발을 제압하기는커녕 초반부터 밀리기 십상일 터였다. 이들 1%에게는 노동자계급이 방어하고 있는 노동유연화와 공공부문 축소를 밀어붙일 만한 지각변동이 필요했다. 마크롱 같은 드라마틱한 신예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타락한 사회당의 올랑드가 신임하는 정치적 계승자로 불리며 무대 뒤에선 우파의 지원도 받았다. 사회당 대선 경선 유력 후보로 나섰던 마뉘엘 발스 같은 인물도 대선 직후 마크롱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마크롱은 ‘더 많은 유럽’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그 골격은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긴축, 제국주의의 대외 정책을 표방한다. 세부 공약으로는 2022년까지 600억 유로 삭감,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개 축소, 실업기금이나 지방 예산, 보건 재정 삭감을 내걸었다.

이런 마크롱을 프랑스 유권자 66.1%(결선)가 택했지만 이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25.4%는 아예 투표하지 않았고 무려 420만 명이 기권표를 던졌다. 1969년 이래 기록적인 수치였다. 득표율 중에서도 3분의 2는 중도에서 나왔지만 나머지는 좌파 지지자로 차악을 선택한 표였다.

양 후보 간 투표계층의 차이는 경제적 지위에서 두드러진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업률 10% 아래 지역에서 마크롱은 70.0%, 르펜은 30.1%를 얻었지만, 실업률 10% 이상의 지역에서는 각각 57.6%, 42.4%를 냈다. 르펜은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프랑스식 러스트벨트와 농촌 지방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실업률이 12.2%가 넘는 프랑스 북부지방 파드칼레에서 르펜의 득표율은 52.1%, 13.7%가 넘는 엔 지방에서는 52.0%에 달했다. 또 월 1,250유로 소득 아래에서 45%가 르펜을 뽑은 반면, 3,000 유로 이상에서 이 비율은 25%에 그쳤다.

이런 마린 르펜은 2012년 유럽의회 선거나 대선 전 1위를 달리던 여론조사 보다는 낮지만, 대선 결선에서 1,160만 표를 받았다. 34%에 달하는 이 수치는 그의 부친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결선에서 받은 표의 2배다.

분전 속에서도 두드러진 좌파의 약점

이번 대선에 프랑스 좌파에서는 사회당 내 좌파 브누아 아몽, 급진좌파 좌파당(PG)의 장 뤽 멜랑숑, 반자본주의신당(NPA)의 노동자 대선 후보 필립 푸투 등이 출마했다.

우선 좌파당의 멜랑숑은 최근 분출된 새로운 정치 운동의 실험을 적극적으로 채택해 선거운동을 조직했다. 이들은 애초 프랑스공산당 등 좌파정당들과 함께 좌파전선(FDG)을 만들어 선거연합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대중운동 기반인 ‘라 프랑스 앵수미즈’(La France insoumise, FI) 건설을 주도하고 이를 토대로 대선에 출마했다. 지난해 2월 10일, 올해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설립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라는 의미의 FI는 기성정당에 대한 반발을 기반으로 스페인 포데모스나 미국 버니 샌더스 대선 운동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포데모스처럼 ‘카스트’나 ‘올리가르히’에 맞선 ‘사람들’이란 언술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좌파언론 <자코뱅>에 지난달 23일 기고한 그레고리 베크타리에 따르면, 처음 시민들은 멜랑숑의 대선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FI가 주도한 운동에 참가했지만, 이후에는 스페인 포데모스처럼 온라인 등에서 정책을 함께 작성했고 다가오는 6월 총선 후보도 선출하고 있다. FI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125,000명이라고 할 만큼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나름 성공했다. FI는 생태사회주의나 유럽연합에 대한 ‘플랜B’ 등 좌파당의 기존 노선을 취하기도 했지만 토론과정에서 △제6공화국으로의 전환 △유럽연합 헌법과의 결별 △생태적 정책 설계 △보다 독립적인 국외 정책 등의 새 정책을 입안하기도 했다. 올드 매체 뿐 아니라 SNS, 홀로그램, 카툰 등 대중에 친숙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반향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FI는 만연한 실업과 테러 위기 속에서 대안적인 좌파 정책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애국주의와 반이민 정책 외에도 프랑스 제국주의를 외면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또 FI에는 프랑스공산당이나 다른 좌파 정당들도 참가하고 있지만, 주요 인물은 사실상 거의 모두 좌파당 소속이다. FI는 또한 멜랑숑이라는 스타 좌파 정치인 중심인데다가, 2012년 좌파전선 보다 강력하지 않고 여전히 조직구조는 경직되어 비민주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한편, 좌파전선을 함께 결성하고 있는 프랑스공산당은 멜랑숑에 사회당 내 좌파와의 ‘좌파 프라이머리’에 나서라고 고집했지만 멜랑숑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는데, 좌파전선 내 헤게모니 갈등도 계속되는 듯하다.

사회당 내 좌파를 대표하는 아몽은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처럼 좌파 노선을 강화하여 무너져가는 사회당을 다시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아몽은 당내 우파의 철저한 외면 속에 좌파 선거 연합 외 다른 전략은 제시하지 못한 채 결국 대선 1차 선거에서 5위(6.4%)에 머무는 참담한 패배를 맞게 됐다. 2002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반자본주의신당(NPA)은 독자노선을 고수했지만 유의미한 기록을 내지 못했다.

긴축과 노동유연화에 맞선 좌파의 대안 절실

지난 9일에는 대선이 시행된 지 이틀 만에 첫 번째 시위가 전개됐다. 1만여 명이 마크롱이 공약한 긴축과 노동유연화에 맞섰다. 마크롱은 내달 11~18일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을 경유하며 새 지형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심화하는 빈부격차와 실업, 테러와 생태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도전이 계속될 것임은 자명하다. 물론 어떤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좌파에게도 치열한 문제임을 프랑스 대선은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사회변혁노동자당이 발행하는 <변혁정치>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