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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구제금융 협상이 남긴 상처

[워커스] 경제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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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4월 17일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조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합의됐다. 서로 대립각을 세웠던 산업은행과 국민연금의 협상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최순실-삼성 게이트에서 국민연금이 불쏘시게로 동원됐다는 비판이 제기된 터라, 최근 급부상한 국민연금의 채무조정안 수용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온갖 뉴스 포털 사이트엔 자신들의 노후자금을 ‘좀비기업’에 퍼주는 행위라는 댓글도 쏟아졌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산업구조조정의 주체인 정부는 뒤로 물러난 채, 사태의 해결이 국민연금과 산업은행만의 줄다리기로 비춰졌다는 점이다. 이 같은 해결과정이 과연 합리적이었던 것일까? 정부는 문제해결의 우선순위가 채권단의 자율구조조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만약 채무조정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일명 ‘P플랜’이라 불리는 초단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 말하면서, 모든 준비 작업을 마쳤다고 누누이 밝혔다. 그러면서 대우조선이 ‘P플랜’으로 들어가게 되면 채권단들의 손실이 자율채무조정안보다 더 크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실상 자율재무조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답은 이미 정해졌으니 국민연금이 속히 결단을 내리라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최순실-삼성 게이트 수사에서 국민연금은 정치적 외압을 받아 배임행위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인 채무조정안이 그대로 수용될 순 없었다. 더구나 4월 회사채 만기를 불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3주안에 채무조정을 승인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다 보니, 더욱더 사태는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국민연금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대우조선 청산을 주장하는 여론이 강하게 터져 나왔다. ‘좀비기업에 내 노후자금을 퍼줄 수 없다’는 논리가 대세를 이뤘던 것이다.

[출처: 박다솔 기자]

이제 극적인 타결로 한 차례 정리 된 이 시점에서 짧지만 강렬했던 몇 주 동안의 논쟁을 짚어보자. 먼저 ‘P플랜’이라는 말에 숨은 정부의 비겁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정부는 자율채무조정이 ‘P플랜’보다 손실이 적다는 이유로, 사태가 극으로 치달을 때까지 방치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개입을 자제하고 사채권단의 자율구조조정을 우선했다는 논리 속에 숨을 문제가 아니다. 이번 채무조정에서 가장 큰 손실을 부담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은 모두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이 사태 해결과정에서 정부 개입 자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명분에 불과하다. 가령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으로서 국가재정으로 자본금을 충당하는 수출입은행은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손실을 안게 됐다. 심지어 대우조선 영구채(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받는 채권) 금리를 3%에서 1%로 낮춰 받기로 결정했다. 만약 누군가 수출입은행을 국민연금과 비교하면서 같은 논리로 “좀비기업에 내 세금을 퍼줄 수 없다”고 주장하면, 정부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채 뒤로 숨어버릴 것인가?

‘손실의 사회화’에 대한 대중적 비판에 정부가 취할 올바른 태도는 이것이 아니다. 사실상 국가재정에 대한 부담으로 되돌아와 이미 손실이 사회화됐음에도 마치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명분에만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이도저도 아닌 최악의 태도다. 이런 논리는 향후 구조조정된 대우조선을 튼튼한 강소기업으로 발전시켜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논리와도 상통한다. 이 엄청난 구제금융과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해 만든 국가자산을 왜 매각해야 한단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정부는 이 논란의 중심에 국민연금을 내세우며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또 한 번 키우고 말았다. 국민연금이 요구한 채무보증 확약서를 산업은행이 관련 법규를 거론하면서 거부했는데, 이는 대중들로 하여금 국민연금의 자산을 국가가 지켜줄 방어 장치가 없다는 걸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수년 전 대중들이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 보증 법제화를 요구했을 때, 정부가 부채비율 상승을 이유로 거부했던 논리를 연상하게 한다. 결국 이런 갈등은 대중들로 하여금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사적연금에 의존하는 심리적 경향을 강화했다. 나아가 같은 심리와 더불어 현재 대우조선 채무조정 논란은 ‘대우조선 청산’에 쉽게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국민의 호주머니에 기생하는 ‘암’적인 존재로까지 만들고야 말았다. 과연 정부는 이 사태를 이렇게 끌고 갈 수밖에 없었을까?

손실의 사회화는 이윤의 사회화로 나아가야

더구나 안타까운 점은, 어느 정치세력도 이런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시장자율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청산주의적 견해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하는 이론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국가적인 손실의 사회화가 한참 진행된 상황에서, 한가하게 시장주도의 부실정리라는 원론적 얘기를 하는 건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얘기한 수출입은행의 영구채 금리인하는 사실상 대우조선에 정부재정을 그냥 주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1%라는 영구채 명목금리는 사실상 인플레이션율 보다도 낮은 금리로서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구채는 원금상환이 없는 채권이므로 사실상 원금을 그냥 준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어떤 청년이 국가가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는 셈치고 1% 영구채를 발행할 테니 국가가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누군가는 업황이 불확실해 보이는 대우조선 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이 청년에게 국가가 투자하는 게 더 낫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실제 일부 지자체가 청년배당, 청년수당 등의 청년 지원 정책을 시행한 사례를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칠 질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런 투자가 공동체의 이익에 어떻게 부합하는지가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번 대우조선 구제금융 협상과정이 국민연금 손실을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되는 걸 막았어야 했다. 그리고 대우조선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소상히 설명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무 것도 없다면, 애초부터 이런 논란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공동체의 신뢰인데, 그 이익이 모두에게 공유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선 대중적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러나 ‘손실의 사회화’를 감내한 고통의 결과가 ‘이윤의 사회화’라는 열매로 모두에게 되돌아오는 과정을 우린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부실기업들에 대한 엄청난 금융지원이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되살린 국유기업들과 사기업들로부터 국민들이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살리기 명분으로 양보한 노동법 개정으로 인해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이 대거 늘어나고, 정리해고가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재벌대기업의 잉여금은 늘어나고 대중들은 빚을 끌어다 쓰는 반대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 이렇게 손실은 매번 사회화 됐으나 이윤은 사회화시키지 못한 우리의 지난 과오를 비판할 때다.

만약 우리가 이번 대우조선 구제금융을 계기로 이윤을 사회화시키고자 한다면, 민간매각을 운운하는 것부터 중단 해야 한다. 그리고 과연 국유기업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공공자산이 무엇인지부터 재규정해야 한다. 현재 대우조선 부실사태의 가장 큰 원인을 초래했던 해양플랜트 사업은 한때 ‘금융위기를 이겨낼 새로운 먹거리’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의 유망사업으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당시 국유기업이던 대우조선 경영행태는 사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출혈경쟁을 마다하며 저가수주에 몰두했고, 플랜트 사업에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했다. 그리고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매년 늘어났다. 그러다 2015년부터 사업이 악화되자 이들은 손쉽게 해고됐다. 현재 이들은 대부분 정리 해고되고 정규직만 남아있다. 이제는 이 정규직도 이번 구제금융의 대가로 인원감축에 들어갈 상황에 놓였다.

이렇게 대우조선은 한 바퀴를 돌고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 왔다. 다시 과거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윤의 사회화로 밀고 나갈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나도 생각이 더뎠고, 그 발걸음은 오래도록 시도조차 못했다. 이제는 새로운 첫 걸음을 뗄 때다.[워커스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