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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제언

(3)전국교수연구자 비상시국회의 ‘2017 새 민주공화국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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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독자 대응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한반도 불안정의 지속성은 역사적·구조적 문제이자 행위자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전쟁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성을 상시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주체적인 역할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동북아의 복잡한 관계와 지형 속에서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미중관계,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일관계 등 모든 국가 간 관계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선순환구조가 될 수도 있고 악순환구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철학과 원칙이 없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출처: 자료사진]

원칙과 철학이 부재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그리고 튼튼한 안보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원칙들은 슬로건에 머물렀을 뿐 강대국의 첨예한 이해관계 앞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게 되자 일거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화해와 교류협력 대신 불신과 대결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다양한 접근 방식을 버린 채 ‘선 핵포기 후 지원’ 원칙을 내세워 대북 제재·압박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특히 4차 핵실험 후엔 개성공단을 폐쇄했고 대북채널을 모두 끊음으로 인해 안보위기를 맞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붕괴론을 전제로 한 흡수통일론과 ‘통일대박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부정하고 ‘결과로서의 통일’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북한붕괴론은 북한의 현실에 관한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대체로 ‘희망적 사고’에 입각하였다. 근거가 부족한 북한붕괴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대북강경책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명분이며, 한반도 정세관리의 책임이 북한체제의 불안정성 때문이라는 논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국제사회 압박 강화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대북 압박 성패는 북한에 영향력이 가장 큰 중국에 달려 있는데, 중국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성과를 만들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연일 경제적 보복조치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도 위안부 합의에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체결해줬지만 양국 관계가 발전하기는커녕 소녀상 문제 등으로 더 악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에 기여한 것도 아니다. 박근혜가 중국과 미국, 일본을 오갔지만 오히려 외교적 지렛대만 상실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 외교공간을 넓히는 등 실리를 추구하려 했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로 이른바 ‘시계추 외교’, ‘미국 편중 외교’라는 비난만을 남긴 채 그간의 노력이 무위가 되고 말았다.

미국 때문에 사드 배치를 결단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한미관계 틀도 새로 짜야할 판이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보호무역주의는 경제를 넘어 군사·안보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갈수록 발전하는 미일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였고, 동북아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 구도로 재편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한반도에서의 힘겨루기와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재편을 예고하는 전환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원칙도 철학도 일관성도 없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의 과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가 바뀌고 있으며, 특히 미국과 중국, 두 거대한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 맞는 질적인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힘을 앞세운 미·중 양 지도자가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굴기’ 정책은 한반도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17년 한반도는 두 사람을 포함해 ‘정상국가’를 추구하는 아베 일본 총리와 ‘강한 러시아’ 정책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4명이 각축전을 치열하게 전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중견국가의 위상과 지정학적 배경을 토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에 기반한 균형외교’를 통해 남북관계, 한미관계, 한중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순환 관계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축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정세에서의 주도권 확보가 되어야 한다.

첫째, 트럼프가 선거기간 보여준 대외정책 기조와 한국 관련 발언 등은 기존 한미동맹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주장은 방위비 분담률 인상과 한·미 FTA 폐기 및 재협상 등인데, 이러한 입장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동맹국과의 관계를 미국의 일방적 원조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 경제·통상 분야에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나타낼 것이라는 점 등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신정부의 한미동맹은 과거와는 매우 다른 질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미 대미 무역환경 악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북핵 문제 공조, 확장억제 공약,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 여부를 세심하게 재확인해야 한다.

둘째,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역대 최상의 관계’라는 수사를 앞세워 미국이 의심할 정도의 밀월관계를 구축하는 듯 했지만, 한미, 한중 관계는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미·중의 전략적 움직임의 결과였음이 드러났다. 미중관계의 불확실성에 따른 한국외교의 위험성은 ‘선택 딜레마’와 ‘배제의 위험’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은 한미동맹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하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맹외교에서 탈피하여 ‘자기주도적’ 외교를 구사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국제공조라는 투 트랙 전략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에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균형외교는 이슈와 사안에 따라 ‘친미냐 친중이냐’라는 양자택일식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자기주도적 외교를 일관되게 관철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남북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뿐 아니라 한미관계,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지렛대이다. 그러나 남북경제협력을 지금 핵문제와 연계한다면 오히려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 크다. 핵문제는 관계의 산물인데, 당연히 관계가 악화되면 핵문제의 해결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제재나 봉쇄만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증명되었다. 따라서 핵문제와 남북경제협력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과 전략이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고, 외교가 문을 열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당장 남북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이 적지 않다. 인도 분야의 협력은 정치군사적 현안과 분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원칙이다. 경제협력도 남북한의 양자협력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남북중, 남북러 삼각협력 같은 다자적 협력사업도 적지 않기 때문에 분리접근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좌초 과정을 보더라도 남북협력을 부정하면 국제협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북한의 군사 분야도 마찬가지다. 핵문제 해결 이전에 먼저 초보적 수준의 군사적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하고, 서로 보완하여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병행론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한반도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위안부’ 합의는 폐기되거나 철회되어야 한다. 사드 배치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사드는 북한 핵무기 방어용이 아님은 군사 전문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2015년 미국과 일본이 신방위지침에 따라 일본의 군사 팽창주의를 무제한 허용하는 데 합의한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합법화하는 매우 위험한 조치이다.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는 길은 일본과의 군사교류 강화가 아니라 남북 화해협력 강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우선 정상화하고 남북 교류협력을 강화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미일의 동북아 정책을 맹종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곧바로 중국·러시아·북한을 연결하는 동북아 냉전 3각 구도를 고착화시켜 전쟁의 위협만 고조시키게 된다. 따라서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정당화하고 남북 군사대결 위험을 가중시키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한편, 위안부 문제와 같은 반인도주의적 범죄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담은 국제인권법에서 다룰 사항으로 해당 정부 간 합의만으로 종료될 수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 이를 바탕으로 사죄와 용서, 화해가 이어져야 비로소 종료됐다고 말할 수 있다. 기존 합의 폐기 선언이 외교적 부담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대일외교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의 업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적 자존심과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차기 정부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이 외에도 조약 체결 및 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통제권 강화(조약체결절차법), 외교안보 정책 정보공개 강화, 군사비 축소, 군복무기간 단축, 무분별한 국군의 해외 파병 반대(해외파병법안 제정 반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연합사 해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소파 개폐, 방산비리 전면적 조사와 무분별한 미국산 무기 도입 중단 등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과제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병행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핵 대결을 막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를 바탕으로 동북아비핵지대조약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한반도 비핵평화체제를 공고히 하고 동북아를 비핵지대로 만들며 전세계 비핵화의 기대를 높이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동북아에서 군사적 대결 구도를 해소하고 분쟁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동북아 집단안보체제 수립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