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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래하자! 평등한 삶을

[워커스] 명숙의 무비 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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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 안에 잠자던 감성과 꿈과 추억을 끌어낸다. 몰랐던 내 안의 유쾌함과 슬픔을 끌어내기도 하고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한다. 음악영화는 그게 더 강한 듯하다. 음악의 리듬이 내 심장박동소리와 함께 진동해서인지 강렬하게 노래가사 속 사람들의 세계로 빠져든다. 한국게이코러스 G-VOICE(지보이스) 단원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위켄즈Weekends>(감독 이동하, 2016)도 그랬다. 10주년 때 언니네트워크 합창모임 ‘아는언니들’과 함께 지보이스 공연에서 객원단원을 한 적도 있어서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갔는데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다큐영화지만 중간 중간에 뮤직 비디오가 들어가기에 극영화 같은 느낌도 강했다. 잘 만든 뮤지컬영화가 그렇듯 영상과 소리의 조합이 이루어낸 울림이 내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 매력에 66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출처: 친구사이]

착한 게이 말고 그냥 게이의 삶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영화 속 대사처럼 ‘착한 게이 말고 그냥 게이들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매우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렸다는 점이다. 영화는 단원들이 지보이스 창립 10주년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부터 담았다. 지보이스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합창모임이다. 의사, 취업준비생, 알바노동자, 패션MD 등 여러 직업을 가진 단원들이 바쁘게 노래연습을 하러 모인다. 노래실력은 쉽게 안 늘어서 지휘자나 단장만이 아니라 단원들도 마음이 무겁다. 바쁜 일상 중에도 주말에 나와 노래를 연습하는 이 시간은 숨을 쉬는 시간이자 위로를 받는 시간이며 다른 삶은 꿈꾸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도 주말을 뜻하는 위켄즈라고 한다. 지보이스는 각자의 삶에 의지가 되는 공동체, ‘친정집 같은 곳’이다. 지보이스에서 연애를 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성소수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 슬픔과 고통을 나누기도 한다.

영화 속 노래가사는 성소수자의 삶을 잘 드러낸다. 성소수자들의 삶이 온통 사랑이나 연애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갑’이 아니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을 가난과 노동의 삶도 보여준다. 지보이스의 노래와 곡을 주로 만드는 재우는 단원들의 삶을 노래가사로 잘 다듬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단원 샌더가 백화점에 빵을 납품하다 겪은 박탈감을 노래에 담은 장면이다. 비싼 명품가방을 시장바구니처럼 사용하는 고객과 마주쳤을 때의 상대적 박탈감과 당혹감을 말했더니 재우가 그걸 노래로 만들었다.

“백화점에서 이천 원짜리 빵을 파는 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해 종아리만 굵어져/ …쉽지 않아
나는 누구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아 그래서
난 피곤해” – <쉽지 않아> 가사 중


노래는 우리 사회 밑바닥에 있는 노동의 삶을 비루하게 다루거나 아픔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즐거운 리듬과 화음으로 자신의 힘을 다독인다. “나는 누구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아”라는 가사는 성소수자의 자긍심이 어떻게 힘으로 전화하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 나오듯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손잡을 수 있었던 바탕은 일하고 소외받았던 삶과 자긍심이 아니었을까.

혐오의 세상에 맞서 다시 시작!

성소수자도 비성소수자처럼 월급쟁이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모멸과 고통을 건너뛸 수가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 때문이다. 김조광수-김승환의 결혼식에 똥물 투척 테러가 벌어지던 날, 공연을 하던 지보이스 단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흰 와이셔츠에 똥물을 뒤집어썼지만 축하공연이기에 화내거나 울 수 없었다.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결혼식 무대에서 “괜찮아요. 우리 행복해요. 동요하지마세요”라고 했지만 여전히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큰 상처는 밴드를 붙여도 아프듯이. 공연 후 천막에서 물티슈로 몸에 묻은 똥물을 닦는 모습은 정말 처참했다. 무엇보다 “그나마 똥물이어서 다행이에요”라는 단원의 말은 너무 아팠다. 화학물질이나 칼 같은 무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니, 얼마나 혐오 범죄에 노출됐으면 저렇게 위안할 수 있나.

사실 똥물투척 같은 심한 혐오범죄가 자주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냐”라는 식의 혐오 발언은 자주 접한다. 사람들은 그 말을 차별과 혐오의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더 노래해야 하는 이유

소리는 허공에 흩어지고 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삶을 담은 노래는 우리를 붙든다.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시간을 우리 마음 속 영원의 시간으로 만드는 게 음악의 힘이다. 그러니 단원 남웅의 말마따나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노래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박근혜가 파면됐지만 다른 세상의 모습이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차별금지법은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그의 지지자들이 성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고 외치는 현실이다.

그럴수록 힘을 내서 함께 노래 부르자. 지금은 “우리가 숨차게 외쳤던 세상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작은 용기 하나 둘 모여 당당한 화음 되어”,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연대의 합창을 부를 때가 아닐까.[워커스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