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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에서 위기사회로, 국가란 무엇인가?

[워커스 23호/이슈] 워커스 정세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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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단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국가의 의미와 대안을 묻는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일까? 자본주의 위기가 확대하면서 개인과 사회, 국가의 위기가 구조화된 현재, <워커스>는 이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 / 홍진훤

홍석만(워커스) 국내로 보면, 박근혜 정부 이후 세월호 참사로 시작해 다양한 사고와 희생 속에서 사회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일본 원전사고, 금융위기 후 미국, 유럽 등 정치적 분열이 가속하고 있다. 또 미국이 경찰국가로서 군사적인 형태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했는데 이 또한 헤게모니 위기에 빠져 있다. 이른바 ‘위험사회’에서 ‘위기사회’로 가고 있는 양상에 대해 최근 현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자.

배성인(한신대) 박근혜 정부의 분석은 어떤 의미에서는 간단하다. 박근혜라는 개인 위상 자체가 가진 커다란 규정력 때문이다. 집권 세력 모두 대통령인 박근혜에 집중돼 있다. 신자유주의 도입 후에도 작동하는 국가 메커니즘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 전반이 돌아가고는 있지만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비합리성이 전면에 깔려 있다.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이명박 정부가 없었다면 박근혜 정부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경쟁이 가속화되는 최정점에 박근혜 정부가 존재한다.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공동체로서의 삶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가 바로 ‘박근혜’였다.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가 가능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정치적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홍석만 최근 우병우 사태나 구조조정 관련해서도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싸움은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혜진 정권 재창출을 앞두고 여러 분파 간 갈등이 나타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30%에 달하는 보수층의 안정적인 지지 외에도 재벌들도 지지하고 있다. 사실 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국의 대자본, 재벌의 태도다. 박근혜식 정치에 재벌이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미르재단에서 보듯 기업을 마구잡이로 동원한다. 북한과의 대립, 개성공단 폐쇄, 중국과의 긴장 고조 등 한국 자본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재벌은 여권과 청와대의 정치적 기반으로 남아 있다. 재벌의 이런 태도는 장기불황의 불안감 속에서 돌파 방식의 하나로 박근혜식 정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장 전망을 세울 수는 없고 당장 현 상황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 아닐까. 한편에서는 박근혜 정부로서도 정치 검찰을 통한 재벌에 대한 조정과 통제가 쉬워진 것을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

김태연(사회변혁노동자당) 최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지하철 사고 등 일련의 사건이 있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사건들은 언제나 있고 이를 관통하는 원인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박근혜라는 인물로 비난이 모이고 있는데, 그가 상징적인 인물이어서 공격을 받지만 원인 제공자는 아니라는 점을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문제의 원인이 사장되는 면이 있다. 결국 그렇게 되면 사람만 바꾸면 된다고 하는 인물교체론으로 빠져 버리거나, 내년 대선의 정권교체론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위기 극복, 각자도생의 길로 갈 것인가?

홍석만 이명박 정부 당시 세계경제위기가 확대되자 국가가 시장개입을 상당히 많이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현 상황에 대해 거의 손을 놓고 있다. 거꾸로 역사 문제나 교과서 문제, 전교조 이념 논쟁 같은 것은 청와대 주도로 키우고 있다. 또 구조조정은 문자 그대로 시장 주도로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노동에 대해서는 임금체계까지 건드리고 있다.

김태연 어떤 곳에서는 무정부 상태고, 다른 곳에는 과할 정도로 정부가 개입한다. 이를테면,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계속해서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다. 다른 곳은 무정부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이 있다. 예전에는 국가가 일정 정도 조절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신자유주의의 막바지 단계를 실행하는 전담자의 역할을 박근혜가 맡는 것이 아닐까. 결국 노동을 쥐어짜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김혜진 구의역 사건 대책위를 하면서 정말 우리 사회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느꼈다. 세월호 때도 그랬지만 더욱 실감했다. 당장 책임을 어떻게 모면하고 덮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있다. 이러면 필연적으로 일방적, 폭력적인 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 서울대병원 파업을 보면서도 성과주의 시스템이 병원을 얼마나 망가뜨릴지 의사도 관리직도 다 알고 있지만, 노조 외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현실이 나빠지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각자도생의 길로 가버리고 있다.

홍석만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에 맞서 고용안정을 요구하는데 다소 방어적이다. 세월호나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해서도 해결 전망을 뚜렷이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배성인 다소 근본적이긴 하지만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듯이 이념 논쟁, 정치군사적 대립을 격화하면서도 무너진 시장 기능을 다시 회복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사회적 위기관리도 실패하면서 노동에 대한 공격만 강화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다. 현 상황을 방치하면, 한국에서도 미국의 트럼프나 유럽의 극우세력과 같은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면서 대중 또한 분열하기 때문인데 여혐이라든지, 지역감정, 이주민, 동성애자 차별 등 혐오 발언이 확대되는 양상도 자본주의의 위기 확대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김태연 여기서 단순한 인물교체나 정권교체는 다른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실망과 분열을 더 확대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20년 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나고 이어서 외환위기와 엄청난 구조조정이 불어 닥쳤다. 그러면서 민영화, 비정규직이 도입되고 외주, 하청 등 신자유주의 재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즉, 당시 위기 속에서 자본은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로 이끌었는데, 지금의 위기는 대안이 없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상상하지 않았던 여러 전망이 얘기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의 사회화, 국유화 얘기만 하더라도 좌파의 고루한 담론 정도로 치부됐지만 지금의 조선업, 해운업 구조조정 사태에서 검토해야하는, 현실적 공론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한국 사회 모든 정치세력이 구조조정을 필요악이라 생각하고 실업대책을 확대하는 것 외엔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혜진 지금은 각자도생의 사회로 갈지, 공동체를 회복하고 국가를 다시 세워야할지 기로에 서 있다. 야당도 박근혜 정부의 안티세력으로만 존재하지 대안적인 자기 논의가 없다. 결국, 대중이 얼마나 나서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운동 세력이 각자의 신뢰를 복원할 헌신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또한, 비정규직 등 아직 사회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가시적인 운동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