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일자리 나누기, 중국 물량 이전으로 총고용 보장”

대우조선노동조합 양병효 고용안전부장의 ‘대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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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국민들의 시선은 조선업의 메카인 거제도로 쏠리고 있다. 막대한 적자와 분식회계 등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거제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한 축이다. 이곳에서 대우조선의 생사를 놓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모 경제지 데스크는 ‘대우조선해양 하나 죽이지 못하는 나라’라며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우조선을 죽여야 한다는 명제는 참인가. 여기 모두가 조선업 구조조정을 이야기할 때 조선업의 재도약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의 양병효 고용안전부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28년 동안 일하며 말 그대로 청춘과 열정을 다 바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 구조조정의 매서운 삭풍을 맨몸으로 맞고 있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위해 2년 동안 갖은 활동을 마다 않은 사람이다.

지금 고개를 들어 대우조선해양을 보라. 아무도 그 소중함을 얘기하지 않을 때 한국 조선업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고 그 잠재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 애타는 목소리로 국내 조선업의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삭풍을 맨몸으로 맞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전경[사진/ 이채훈 기자]

합병이냐 폐업이냐, 독자생존 목소리 미미

23일 평소보다 흐린 날씨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거제 옥포동. 이곳의 상징인 오션플라자 앞에서 만난 양병효 부장은 최근 산업은행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을 다녀간 사실을 언급했다. 대우조선 식구들 모두 사업장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분분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합병이냐 폐업이냐를 놓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지만 독자생존을 외치는 목소리는 미미하다고도 했다.

비록 지금은 탈출구가 없는 상황이라지만 사실 대우조선해양은 알짜기업 중에 알짜기업이었다. 산업은행 등 정부기관을 통해 1980년대 경영합리화 조치 이후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 위기 때까지 정부는 대우조선에 2조4000억원을 투입해 3조3000억원이라는 이익을 챙겨갔다. 대우조선해양 자체가 문제 있는 사업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연임 문제가 걸린 낙하산, 비전문가 경영진들이 단기 실적에만 골몰해 근시안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사를 그르쳤다는 것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은 한 차례 기대감이 있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사면되면서 그 조건으로 대우조선 등의 사업장을 인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 공기업을 인수하며 커온 SK그룹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지만 과거 하이닉스가 어려운 시기를 딛고 부활했듯 대우조선도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실제로 SK와 대우조선간 인수 협의는 최종 합의 직전까지 갔으나 인수가격 조율에 실패하면서 무산된 바가 있다는 전언이다.

그 이후 급부상한 소문이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삼성은 현재 성동조선해양의 경영위탁을 맡으면서 조선업 구조조정에 일부를 떠안고 있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삼성 특유의 스타일도 한몫했다. 반대로 관료들이 이재용 일가의 삼성 경영권 승계 불법성을 피력하면서 대우조선 인수와 경영 승계 보장을 ‘딜’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것.

관계 부처발로 조선업 빅3를 빅2로 재편해야 한다는 뉴스가 쏟아지면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합병하는 방안은 거제에서도 거의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예상일뿐 그 결말은 알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삼호, 미포조선소 인수 이후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에서 자유롭다는 지적이다. 세계 1위 조선소라는 상징성과 가치가 구조조정 여파로부터 한 발 물러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평이다.

사업장별 특성화 전략으로 암흑기 버텨야

양 부장은 합병이냐 독자생존이냐도 중요하지만 조선업의 기둥뿌리가 뒤흔들려서는 안 되기에 어려운 시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거제 조선업 필승의 플랜은 무엇일까.

우선 양 부장은 국내 조선업이 암흑기를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에 남겨둔 삼성과 대우의 사업장에 있는 물량을 가져오면 최소 2년은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물량은 70~80만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호황기에 샴페인에 취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지 못했던 사업장별 특성화 전략을 하루속히 착수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사업장별 특성화라는 것이 한 회사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여기는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을 분야별로 특화한다고 해서 삼성만 살아남고 대우는 망할 것이라는 예상은 짧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고의 LNG선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물량 중에도 LNG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양 부장은 LNG선도 엄청난 기술력을 요하는 분야라며 중국에서 겉모습을 흉내 낼 순 있어도 그 속에 기술까지는 구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LNG선만 십여 년 넘게 만든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다.

“남해안에 조선소가 이렇게 많은데 시설이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사업장별로 특성화한다고 해서 그 ‘케파’가 사라지는 게 아니란 말이죠.”

선박금융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중국은 아예 OECD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선주들에게 건조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지원을 펼 수 없는 일본은 대만 등 우회로를 바탕으로 선박금융을 융통해주고 있다. 한국도 선박금융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를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이런 조선업 발전에 대한 기초적 고민만 있었더라도 작금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중국도 하고 일본도 하는 것을 어영부영하다가 못하는 동안 15년을 쌓아온 세계 조선 1위의 금자탑이 모래성처럼 파도에 휩쓸릴 수 있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지금 어렵다고 조선업 재도약의 기회를 놓치면 향후 모든 시장을 일본에도 뺏기고 중국에도 뺏깁니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은 수주 잔량은 어떠할까. 그가 보여준 자료는 충격적이다. 대우조선에서 올해 안에 선주에게 인도하는 선박이 모두 8척. 이를 위해 1만6000여명의 인력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10월 31일을 기점으로 올해 작업은 거의 대부분 끝나게 된다. 당장 올해 여름에 절반 정도의 작업이 마무리된다.

내년 상황은 더욱 불투명하다. 여덟 척의 작업이 기다리고 있지만 한 척은 선주가 착수시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고 두 척은 아예 취소해버렸다. 나머지 다섯 척은 건조해야 하지만 이 작업에는 현재 인력의 20%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내년에 1만여명 정도가 길바닥에 나앉게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우조선노동조합 양병효 고용안전부장

고용안정 묘수 ‘고용재난지역’

이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부도 지자체도 사측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우조선 노조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가 묘수를 내놓았다. 고용재난지역 지정이다. 박근혜 정부 공약으로 수년 전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된 고용재난지역은 특정지역의 대량실직 피해에 대응해 실업급여 확충과 재취업 지원 등을 돕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역 지정이 되더라도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사내하청노동자들, 물량팀 노동자들은 뾰족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4대 보험 가입률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량팀 인원들을 어느 소속이며 어느 작업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인원을 파악해 4대 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양 부장은 이것이 그들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사내하청, 물량팀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인원 확인은 보건안전 담당 부서를 통해 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산재예방을 위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물량팀은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다. 원청 밑에 사내하청이 있고 사내하청 밑에 물량팀이 존재하고 있다. 일용직으로 변변한 근로계약 없이 4대 보험도 들지 못하고 조선업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사고가 나더라도 제대로 산재 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노력 덕에 물량팀, 사내하청노동자중 80~90%가량이 고용안정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부 신용불량자이거나 당장 세금과 의무보험을 못 내더라도 돈이 급한 사람들은 이를 기피하기도 한다.

실제 수도권 등지에서는 ‘사지육신이 멀쩡하면 신용불량자여도 환영’ 등 믿기지 않는 내용의 물량팀 노동자 모집 공고가 더러 있다. 원하는 사람은 4대 보험 가입이나 근로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조건 제시가 따라 붙는다.

고용재난지역은 해당 지자체나 노사를 포함한 업종당사자들이 신청할 수 있다. 해당 업종의 제조업 경기실사지수 경기 동향과 대량 고용변동 상황 등을 검토한 다음 재난지역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거제에서는 올해 하반기 4만여명의 실업 피해 발생이 예상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실업자들의 실업급여 지원 등 구제책이 보장되는 고용재난지역 지정이 절실하다.

이견이 없다면 재난지역 지정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아쉬운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사항인 고용재난지역 지정이 법적으로 가능한 상황이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인력 구조조정 등 업계의 자구 노력이 없이는 지원도 어렵다”고 말하며 거제시민들을 애태우고 있다.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조선업 구조조정도 필요하지만 고용재난지역 지정 등 실업 문제에 따른 사회안전망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총선 이후에 이런 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바다. 특히 친박근혜계 인사로 분류되는 이동걸 회장이 올해 초 산업은행 수장을 맡으면서 이 같은 시나리오는 수면위로 떠올랐다.

구조조정과 고용안정 문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공감하는 사안이다. 유일호 장관도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구조조정을 구두로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기식 의원, 을지로위원회 등도 고용안정에 초당적 대처를 호소하고 있다.

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쳐버린 해운업

조선만큼이나 해운도 저성장의 직격타를 맞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정점을 찍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프랑스는 인수합병을 통해 머스크라인이라는 세계 최대의 해운사를 발족시키면서 규모의 경제로 세계 교역량 감소의 늪을 뛰어넘었다. 덴마크도 2년간의 구조조정을 거쳐 2만 TEU의 운송능력을 확보했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한국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잘 알려졌듯 용선료 문제다. 정주영 회장 때만 해도 인도하지 못한 상선은 해운사를 만들어 직접 운용하는 묘를 발휘했지만 IMF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해운업체는 해외 업체에 배를 빌리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호경기 때는 거액의 임차료를 내고 많은 배들을 빌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용선료는 그대로인 채 불황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해운업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을 해외에 지급하고 있다.

다만 STX팬오션은 법정관리 이후 임차계약을 해지해 용선료 부담을 벗어났다. 강제성 없는 채권단간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하고 있는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은 지지부진한 대처로 수렁에 빠져들었다. 현정은, 조양호 오너 일가는 경영권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경영권을 반납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오너들의 도덕적 해이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임금은 나누고 모두의 일자리 보장받자

다시 거제로 돌아가 조선업 불황 타개책을 고민해본다. 구조조정이 말 그대로 체질 개선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된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을 칼바람 속으로 내몰았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표현은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경영진들이 노조 전임자 같은 미운 털이 박힌 노동자들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정리해고가 진행됐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객관성을 빙자해 근태를 통해 나타나는 데이터로 해고대상을 끊어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노조활동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노조 전임자가 첫손에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

노동개혁을 빙자한 쉬운 해고로 요약되는 노동지침은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편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회통과를 재촉하고 있는 지침의 골자는 저성과자 해고다.

구조조정이 고용안정과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도록 하지 않기 위해 대우조선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양 부장의 복안은 총고용 보장이다.

이 전략은 임금 반납, 일자리 나누기, 가불제 등의 고통 분담 키워드로 정리된다. 자칫 개량주의나 야합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는 큰 오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용안정부장으로 있는 2년 동안 1만여 노동자의 체불임금 약 40억원을 되찾아줬기에 그의 고민은 더욱 컸을 터. 산업은행 채권단 방문 이후 오는 8월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이에 맞서는 노동계의 무기로서 총고용 보장이라는 화두를 던진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 우리 집이 불타들어 가는 상황에서 ‘이거 아님 안 돼’라고 맞서는 것보다 정부와 사측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그들보다 먼저 선제적으로 내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노조는 그동안 뭐했냐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반대로 노조가 정부와 사측에 너희들은 그동안 뭐했냐고 할 말은 하고 따질 수 있는 권리와 명분을 갖게 된다는 거죠.”

양 부장은 그 날카로운 제안으로 총고용 보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공생과 투자의 논리, 고용보장을 이끌어내는 사회보험의 지혜,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수세에 몰리지 않고 가드를 올릴 수 있지만 개량주의로 비춰지지 않는 방법 등을 고민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실업 여파에 밀려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노동자들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내몰리지 않고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연대해 고용안정을 지켜낼 수 있는 해법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반납해서 노동자들이 함께 살길을 모색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정부와 사측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30대 대기업의 이익잉여금이 대한민국 1년 예산을 가볍게 뛰어넘는다면서요. 정몽준 회장은 사재가 3조원이라는데.”

어쩌면 이는 구조조정을 목전에 둔 대우조선이어서 가능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사회적 파장이 어마어마할 수 있다. 일자리 나누기 공론화에 있어 대기업 노동자들이 먼저 전격적으로 제안한 최초의 시도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그의 고민은 그가 노조에서 맡고 있는 일이 ‘고용안정’이기에 비롯됐을 수 있다. 원청 노조의 감시와 개입을 통해 사내하청노동자와 물량팀이 폐업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체불임금 지급 등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일. 폐업 발생시 계약조직은 물론 유관조직이 합류해 1억이든 2억이든 임금을 떼이지 않도록 돕는 일이 그가 2년여 동안 주로 해온 업무다.

“삼성중공업에서도 올 가을은커녕 오는 6월부터 고용절벽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현대중공업에서도 70여 하청업체가 폐업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는 공허한 요구만 있는 대정부 투쟁보다는 그럴싸한 정책적 제안으로 조선업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내보고 싶다.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동시간 예치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 할증요율을 가산한 시간과 연차휴가 중 일부를 시간예치구좌에 적립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시간을 회사에 빌려준 가치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 ‘노란 봉투’를 내미는 자연 감소에 의한 인력 조정으로는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구조조정 앞에 선 노사정의 ‘사회적 책무’

당장 대우조선이 산업은행에 4조원의 지원을 요청한 건 큰 부담이지만 세계 경기의 어려움을 2년만 버틴다면 한국이 다시 조선업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 거란 관측이다.

“국면 전환을 하려면 자본을 상대로 명확하게 가드를 올려야 합니다. 사회주의자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투쟁을 하는 사람일 수 있어요.”

임금은 나누고 모두의 고용을 보장 받자는 파격 제안이 노동계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왜 가정에서 가족들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검진 결과가 안 좋으면 앞으로 술 끊고 담배도 끊겠다고 선언하잖아요. 총고용 보장도 그런 겁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회사와 노동자의 고용을 위해서는 그러질 않죠?”

그래도 신용불량자거나 당장 목돈이 급한 사람, 정말 병이 있거나 아파서 일을 계속하기 힘든 사람들은 그와 뜻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들은 아마 희망퇴직을 신청할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앞으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노조의 울타리 안에서 같이 지켜야 하는 이들을 위한 정책적 제안입니다.”

도발적인 주장과 발칙한 메시지. 그의 제안이 사회에 미칠 파장이 두렵다. 노사정 협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때 조선업과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우조선노조 내부에서도 이렇듯 조선업 전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정작 정부와 사측은 그동안 수수방관했다는 느낌. 조선업 체질 개선에 무대응으로 일관했었던 정부와 제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했던 사측, 또 ‘대우조선해양 하나 못 죽인다’는 등 자극적 표제를 뽑으며 불난 집에 부채질했던 언론에 대한 불만은 없을까. 이에 대한 양 부장의 대답은 간명했다.

“그것이 저들의 본질입니다.”

그는 대기업 노조라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이 같은 의제를 던진다고 말했다.

“저는 누가 귀족노조냐고 그러면 ‘귀족노조 맞다’고 맞받아칩니다. 물론 귀족과 노조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죠.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이슈를 만들고 정부와 사측에 떳떳이 요구해 사내하청을 비롯한 조선업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양 부장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단어는 사회적 책무였다.

“사실 조퇴도 당연한 권리인데 반 월차를 도입하다보니 이를 잃게 됐죠. 어쩌면 우리 스스로 포기했을지 모르는 일할 권리를 찾으려 합니다. 귀족노조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대기업 노조의 사회적 책무에 눈뜨게 된 것이죠.”

궁금하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이 이 지경으로 되도록 정부와 자본과 언론은 스스로 ‘사회적 책무’를 다했을까. 그의 말을 옮겨 적는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조선업 위기 진단과 그 돌파구에 대한 인터뷰가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말

이채훈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 권병장

    삼성엔지니어링을 매각한다고 너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이냐

  • 김현동

    정정 보도 안내면 주주로서 고소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