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성소수자 유권자운동, ‘레인보우 보트’로 커밍아웃하다

[기고] 혐오에 맞선 성소수자의 정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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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하루 앞두고 국회 정론관에 섰다. 성소수자 인권과제를 19대 국회 회기 내에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19대 국회는 성소수자 인권을 기준으로 봤을 때 낙제점에 가까웠지만 군형법 제92조의6(군대 내 동성애 행위에 대해 강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징역형 처벌을 받도록 한 조항-편집자 주) 폐지법안과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어 있는 상황이라 정치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이 비장한 마음으로 발언문을 읽는 것과 달리 기자들은 딴청을 피웠고,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오늘 기사가 나오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를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유일하게 비마이너에서 기자회견 스케치, 발언을 정리해 기사화한 바 있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국회 정론관에 서기 위해 우리는 정당에 문의하고, 기자회견 시간을 정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무엇보다 국회에 늦지 않기 위해 아침잠을 설쳐야 했다.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국회의원 사무실을 이동했다.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 계류 중인 법안은 모두 폐기되기 때문에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법안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시작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문이 닫혀 있으면 작은 틈새에 공문을 넣어놓았고, 비서관에게 인사하며 꼭 의원님께 꼭 전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 규약 위원회(이하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해 성소수자를 보호하는 법률체계의 강화,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인권침해적인 ‘전환치료(탈동성애)’ 행사의 공공건물 대관 금지, 성소수자 포함적인 포괄적 성교육 제공,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요건 완화, 대중캠페인 및 공무원 교육을 실시할 것을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권고했다. 하지만 국회 정론관 앞에서 마주했던 기자들의 태도처럼 국회의원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혐오에 동조하고 있어 유엔 권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2월, 국회에서 내가 마주했던 인권의 모습은 무관심이었다.

우리의 한 표도 소중하다!

2016년이 시작되면서 국회는 이미 선거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성소수자 차별선동세력은 19대 국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한 국회의원들을 낙선대상으로 올려놓고 서로 그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동성애 찬반을 묻는 질문으로 후보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퀴어문화축제를 돈, 언론, 사람을 앞세워 방해하려고 했던 것처럼,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 자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혐오폭력과 발언을 쏟아낸 것처럼, 그들은 정치권을 향해 성소수자 차별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의 선택은 ‘레인보우보트’, 바로 유권자 선언운동이었다.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동성애 지지여부를 검증받고 성소수자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치상황을 그냥 넋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선거 때 마다 성소수자 인권의제를 발굴하고,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그 연장선에서 당사자와 지지자들을 드러내고 혐오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약속캠페인을 시작했다. “투표권을 가진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시민으로서 나의 한 표가 세상을 평등하게 바꾸길 바랍니다!” 라는 문구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성소수자들도 투표하는 시민이고 후보자를 충분히 검증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4500명

3월8일부터 시작한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에 약 4500명이 등록했다(3월31일 기준). 이 숫자를 두고 기대를 많이 했던 사람들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이 정도면 첫 시작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등 다양한 반응이 오고간다. 레인보우보트 홈페이지(http://rainbowvote.org)에 방문하면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에 몇 명이 등록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만이 아니라 거의 전 지역에 성소수자 당사자이거나 지지자가 거주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다. 내가 거주하는 서울 강서구 지역은 아는 친구 몇 명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88명이나 참여했다. 만 명을 목표로 한 것에 비해 속도가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유권자 운동 첫 시작으로서 큰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생각한다.

레인보우보트의 첫 활동은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했거나, 탈동성애 행사에 국회공간을 대관해줬거나,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를 반인륜, 비도덕, 비정상, 패륜으로 묘사하는 정치인 12명의 이름과 발언을 공개하고 투표를 하는 일이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고심 끝에 12명을 선별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후보 출마지역에 직접 찾아가 성소수자 인권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약속을 했다.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한창이었을 때였다. 헌법의 가치를 묻고,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에 대해 연설이 진행되고 있을 때 보수교계 주최로 개최된 국회 기도회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목사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을 막겠다는 ‘차별선동 동맹’을 약속했다. 전광훈 목사는 ‘항복선언’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박영선 의원의 발언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혐오 중의 혐오 정치인 1위에 오를 만큼 공분을 샀다.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 “누가 이거를 찬성하겠습니까”, “특히 동성애법은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이다.”

성소수자 차별하는 정치인은 이제 그만

캠페인 준비 차 구로지역을 다녀왔다. 구로역 광장은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질 것 같았다. 애경백화점 앞은 무지개 현수막을 펼치기 좋은 구름다리가 있었고. 신도림역은 백화점과 높은 빌딩 숲 사이에, 남구로역은 중국동포 밀집지역이, 대림역으로 가는 방향에는 인력사무소가 즐비해 있었다. 고려대 구로병원 앞 사거리에는 박영선 선거사무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캠페인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지역이었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이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을 이들이 새벽마다 모여드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차별금지법 제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박영선 후보가 과연 이 지역과 어울리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레인보우보트는 약속대로 구로을 지역에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선거법 때문에 대외적인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성소수자 차별하는 정치인은 이제 그만”, “문제는 차별이다. 정답은 차별금지법”이라는 내용을 출퇴근길의 구로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유의 꽃씨

4월13일 선거결과를 보는 우리의 표정은 어떨까. 레인보우보트 유권자 운동은 12명의 성소수자 혐오 정치인 몇 명이 20대 국회에 입성하는지, 낙선하는지 확인하는 것에 멈출 수 없다. 이미 당선이 확실시되는 후보 가운데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없거나 차별을 선동하는 후보들이 너무나 많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유보하는 입장을 내지 않았던가. 앞으로 입법활동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성소수자 혐오선동과 정치인 괴롭히기 전략은 지속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그래서 4월13일 당일 보여질 표정보다 선거대응을 해 가는 지금의 상황을 더 소중히 여기고,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성소수자 인권의제를 시급히 재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레인보우보트 활동을 지속하며 국회 안을 자유롭게 출입하게 될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문제제기해야 할 것이다.

아침 일찍 구로지역을 방문하고 나서 ‘인권재단사람’에 출근을 하고 나니 박래군 소장이 서울구치소 수감시절 가져온 분꽃과 코스모스씨를 화단에 심고 있었다. 자유가 허락되지 못한 곳에서 가져온 꽃씨가 인권의 터에 심어지게 되었고, 곧 그 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이 정치를 흔드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억압과 차별을 극복한 봄꽃들을 레인보우보트 활동 이후에 마주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