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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국민투표 패배

원인과 의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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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연임제한 폐기 국민투표는 반대 51.27%로 부결됐고, 현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2019년 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등록 유권자의 약 85%의 유례없는 높은 투표율을 보여줬고, 야당의 근거지인 산타 크루스 주의 일부 폭력사태를 제외하면 별다른 사고나 부정 의혹 없이 공정하게 치러진 투표였다.

개표 초반 반대 62.69% 대 찬성 37.31%로 격차가 크게 나타났지만, 2월 23일 밤 발표된 최종결과는 찬성 254만5747표(48.73%) 대 반대 267만8526표(51.27%)로 약 13만2779표(2.54%)의 격차로 확정됐다.(99.91% 개표결과) 모랄레스 정부의 지지기반인 원주민 지역의 개표결과가 나중에 집계되면서 격차가 줄어들었다. 이 최종 수치는 투표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의 수치와 거의 일치했다.

찬성측은 인구가 많은 지역인 라파스, 코차밤바, 오루로 주에서 승리한 반면, 반대측은 나머지 6개주와 도시지역에서 승리했다. 찬성측이 승리한 지역의 경우 격차가 크지 않았던 반면, 반대측이 승리한 지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격차가 컸다.

패배의 원인

무엇보다도 패배의 첫 번째 요인은 반정부적 주류언론의 악의적인 선전공세이다. 언론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200달러짜리 이발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선거 직전에는 헤어진 파트너인 가브리엘라 사파타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폭로기사를 터뜨렸다. 여기에 덧붙여 페이스북이나 트워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반대진영의 악의적 비방공세 역시 반대진영의 주요한 무기였다.

또다른 요소는 미국의 개입이다. 반대진영은 미국 대사관과 미국 NGO들을 통해 상당한 자금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원과 컨설팅 지원 역시 받았다. 미국 해외지원청(USAID)과 전국민주재단(NED)은 볼리비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반정부진영을 지원, 지도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미국 대사관은 반대 캠페인 측에 20만 달러를 지원했고, 전국민주재단 역시 2003년에서 2014년까지 20여개 단체에 770만 달러를 지원했다. 과거 냉전시대 CIA가 담당했던 좌파대항공작을 수행하는 미국 기관들의 개입은 노골적인 수준인데,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까지 조종했고 볼리비아도 예외는 아니다.

패배 이후

선거결과 발표 이후 2월 24일 모랄레스는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사회운동과 협력해 공동체주의 혁명을 강화할 것이며,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을 위해 통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며, 반대진영의 승리에서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은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국민투표 패배로 에보 모랄레스 정부와 집권 사회주의운동(MAS)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물론 현정부의 임기가 2019년까지 남아있고, 야당의 경우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세력이나 지도자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적 타격이 정치적 패배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부에서 현재 부통령인 가르시아 리네아의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백인 지식인인 그가 에보 모랄레스의 카리스마를 대체할 지도력이 될 수 있는지도 두고봐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임허용 개헌전략 자체에 대한 자기비판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패배에 이어 국민투표의 패배가 주는 의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같다. 에보 모랄레스는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으로서 지난 10년간 볼리비아 역사에서 길이 기억될 업적을 남겼고, 그 어떤 정치 지도자도 누리지 못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절차상 하자는 없다고 하더라도, 군부독재의 상흔 속에서 민주주의가 제도로서 정착했다고 보기 힘든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에서 집권연장을 위한 국민투표가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국 문제는 에보 모랄레스 개인이 아니라, 사회주의운동당과 민중운동의 집단적 조직력이다. 지난 해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당과 지도부의 관료주의와 부패가 지적된다. 현재의 정세에서 에보 모랄레스 개인은 6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지만, 집권 당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것인 공동체혁명의 주체적 취약성이다.

어느 혁명에서나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진정한 혁명적 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지도자를 배출하고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기층의 운동과 조직이 필수적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핑크 타이드의 쇠퇴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존하는 운동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기층의 운동과 조직화의 과제,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한 성찰할 기회를 다시 한번 제공한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