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노동'과 '생산/재생산', 당연한 듯 빠져있었던 이야기

[무슨 일 하세요] (1) 노동과 생산/재생산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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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각각의 정체성과 운동 영역에서 계급/노동, 생태/환경, 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아울러 고민해온 이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전망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자율적인 네트워크 형태의 ‘적녹보라 네트워크’를 시작하고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내년 상반기까지 총 10회에 걸쳐서 ‘노동, 생산/재생산의 전환을 위한 연속 간담회’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참세상에 연재하며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연속 간담회 논의를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공동의 의제와 쟁점, 전망들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일’하고 있나요? 무슨 ‘일’ 하세요?

“무슨 일하세요?” 누구나 1년에 몇 차례씩 접하게 되는 질문이다. 신상 정보를 확인하는 서류나 회원가입 양식 등에는 언제나 ‘직업’을 묻는 질문이 포함된다. 중요한 건, 이 질문이 단지 직업을 확인하는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 사회적 지위, 그 사람이 지닌 가치와 사회적 자원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연히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일로 취급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임신/출산이나 가사, 돌봄, 육아 노동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이런 일들은 그저 누군가의 책임이나 의무로 간주될 뿐 사회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성별이나 연령, 질병이나 장애 여부 등에 따라 누군가의 노동력, 또는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거나 아예 무시되기도 한다. 일례로 아동/청소년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보호’를 이유로 노동이 금지된 대상이지만, 동시에 현실에서는 가장 저렴한 노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는 당사자들이기에 대표적으로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주체들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노동자’라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한편 여전히 ‘노동자’라는 말은 때로 무언가 전문성이 없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될 말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일단 ‘노동자’는 ‘생산’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생산’은 이윤을 생산해낼 수 있는 물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어야 하며, 그 가치와 효율성에 따라 ‘노동’과 ‘생산’의 위계가 결정된다. 그리고 ‘재생산’은 이런 ‘생산’의 가치와 효율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로 전제된다. 게다가 이 ‘재생산’ 영역에서도 ‘얼마나 효율적인 노동력을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가치와 위계가 결정된다. 결국 이렇게 이런 저런 조건들이 붙은 결과, 우리는 ‘노동자’하면 일단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 이성애자, 20대 중후반에서 60대 이전의, 비장애인, 남성, 임금 노동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즉,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가 없는’, ‘비 이성애자’이거나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20대 중후반 이전’ 혹은 ‘60대 이상의’, ‘여성’, ‘트랜스젠더/섹슈얼’ 등은 노동을 할 수 없거나 노동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 가족이나 사회를 책임지기보다는 그저 자기 생계를 꾸리거나 용돈벌이나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게 된다.

‘노동’과 ‘생산/재생산’은 지금까지 이렇게 가치와 위계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아 왔다. 우리는 ‘노동’과 ‘생산/재생산’에 절대적인 가치가 부여되고, 이를 잘 수행하는 이들만이 시민으로서의 권리, 주체될 권리를 가진다고 전제되는 사회, 엄연히 사회적인 ‘노동’과 ‘생산/재생산’을 하고 있음에도 누군가의 그 일들은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않거나 그저 자연스럽고 부차적인 일, 또는 일종의 당연한 의무나 도리로만 여겨지는 사회, ‘노동’이나 ‘생산/재생산’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전제된 선을 그어놓고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는 사회, 그리고 그것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왜, 언제부터 해고는 곧 살인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지금, 해고를 살인으로 만들고 있는 조건들은 무엇인가? 양성평등을 목적으로 한다는 ‘일, 가정 양립정책’에서 ‘일’은 무엇이고, ‘가정’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낙태한 여성은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쪽에서는 버젓이 우생학적인 선별 낙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 성적 통제와 규범, 저출산 논리 등은 과연 ‘노동’, ‘생산/재생산’을 둘러싼 위계나 규범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작동되고 있을까? 또한, 사회적 관계나 성적 관계, 출산과 돌봄, 가사 노동 등에 기술이 개입하고 자본이 적극적으로 이를 상품의 영역으로 만들어가는 동안, 우리의 몸과 노동, 생산/재생산이 또 다시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구획되어 가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차별은 과연 개인적 권리의 영역일 뿐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안고 먼저 우리 각자는 지금 자신의 운동 영역에서 현재의 노동, 생산/재생산 개념들에 어떠한 부분에서 부딪히고 있고, 쟁점을 고민하고 있는지,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지 함께 고민들을 나누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나가기 위해 열 번의 ‘노동과 생산/재생산의 전환을 위한 연속간담회’를 기획했다. 앞으로 이 간담회에서 모인 이야기들을 함께 정리해 나누고자 한다.


임금노동과 가족-가족이 없으면 책임감도 없다?

지난 6월 5일 진행된 첫 번째 간담회 “노동과 생산/재생산, 당연한 듯 빠져있는 이야기들”에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공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이자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곽이경,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정책국장,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의 조미경 소장,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최성화 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앞으로 세부 주제들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질 연속 간담회의 첫 번째 자리인 만큼 다양한 패널들과 참가자들이 폭넓은 문제의식을 나누었다. 다섯 명의 패널들은 먼저 각자의 경험과 맥락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곽이경 씨는 논문을 쓰던 당시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결혼과 가정에 대한 직장에서의 압박으로 모멸감이나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압박은 단지 사귀는 이성 애인이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등의 질문을 받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가정을 꾸려야 회사를 책임질 줄도 알고, 나라에 보탬이 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더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책임질 가정이 없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런 인식은 여성 성소수자에게는 더욱 차별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더욱 복합적인 문제들이 작동하는데, 우선 일반적으로 ‘가정을 책임지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할 사람’은 곧 ‘남성’으로 간주된다는 것, 때문에 여성들은 고용이나 노동조건에서도 더욱 차별받는 위치에 있는데, 여기에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기대하는 여성으로서의 외모나 행동 규범에 맞지 않을 경우 더욱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자 ‘성소수자’라는 조건은 안정적인 임금노동을 유지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곽이경 씨는 자신이 인터뷰한 성소수자 노동자들 중에서도 여성 성소수자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를 찾는 것조차 어려웠고, 10년 동안 열다섯 번쯤 직업이 바뀌었는데, 직종이 모두 다르다거나 30대 중반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경우 상시적인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특히, 파트너가 있다 해도 ‘가족’이라고 인정받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거나 홀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경우 고용불안과 노동 불안이 더욱 삶을 압도한다. 임금에서의 가족수당이나 연금, 주택, 의료보험, 복지 수당 등 대부분의 사회적 지원이 이성애 관계의 가족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상시적인 고용, 노동 불안의 상태에서 수당이나 사회적 지원체계에서조차 배제된다는 것은 질병이나 노후에 대한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임금 체계나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이런 현실들은 지금까지 현재의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에서도 잘 고려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래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면, 얼마 전 민주노총에서는 상근자 내부 규약을 개정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함께 논의한 결과 동성커플 뿐 아니라 이성 간 동거 커플이나 사실혼 관계에 대해서도 가족수당을 지급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임금, 수당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검토하는 과정에서 비단 동성 커플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 형태/돌봄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곽이경 씨는 민주노총의 이런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족수당’ 자체에 대한 고민이 더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족 제도와 분배의 법칙, 그리고 가족수당이 함축하고 있는 것들

곽이경 씨는 사실상 수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임금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때문에 임금 단체협상에서도 수당을 중심으로 협상이 진행되는데, 수당 자체가 혼인 여부, 자녀 여부, 가족 구성 등을 중요한 요건으로 하게 되어 현재로써는 제도적으로 승인된 이성애 가족을 중심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민주노총에서 5년, 공공연맹에서 1년여 동안 여성위원회 활동을 했던 최성화 씨 역시 가족수당에 대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에서 가족수당을 중요한 협상 의제로 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토로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수당이 매우 절박한 문제기이 때문에 사실상 노동조합 활동이 중요한 현장에서는 임금협상에서 가족수당에 관한 문제의식을 넓혀서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식을 좀 더 파고들어 보면 가족수당만이 아니라 가족 제도를 중심으로 한 각종 수당과 복지 지원의 문제는 결국 사회적 분배의 법칙, 그리고 이를 통한 ‘가치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격 부여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임금노동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 혼인 상태나 자녀 여부, 질병이나 장애 여부 등에 따라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현실은 단지 사회적 소수자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갈수록 가족을 구성하거나 가정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이대로 사회적 책임을 가족 단위나 민간에 떠넘긴 채 공중 보건의료 제도를 비롯한 공공복지 체계가 붕괴되면 결국 이는 모두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곽이경 씨는 따라서 이 문제는 ‘언젠가 반드시 노동운동의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여성환경연대의 이안소영 씨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가족수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가족수당이 단지 ‘가족부양의 책임자에게 주어지는 수당’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노동에 대한 가치화와 그에 대한 지불이라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의 가족수당은 이 노동의 가치를 포함하기에는 너무 적으며, 애초에 남성으로 전제되는 생계부양자에 대한 추가 수당일 뿐 가족 내 구성원들의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은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안소영 씨는 따라서 가족수당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지불을 사회나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돌봄의 사회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는 탈 가족화를 언급하는데, 그게 과연 행복할지 반문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돌봄과 요양을 시설화하거나 국가가 관리하는 요양시설, 서비스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공동체들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을 모색해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이안소영 씨는 이러한 제안을 통해 ‘시설을 사회화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가치를 사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 생산/재생산으로부터의 배제 : ‘미래가 없는 사람들’과 ‘미래밖에 없는 사람들’

한편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의 조미경 씨는 “장애인들은 ‘미래가 없는 사람들’로 취급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들의 경우 임금노동으로부터 배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에 대해서도 아예 그 기능을 전제하지 않는 존재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자연히 성적 실천이나 권리도 부정당하고, 여전히 가족을 구성하거나 출산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진다.

조미경 씨는 이런 인식으로 인해 장애여성들은 ‘남자를 멀리하라’는 이야기만 들을 뿐 구체적인 피임 교육이나 성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며, 장애인의 몸에 맞는 피임약이나 피임도구는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아 자신의 몸에 맞는 피임법을 찾아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지적장애 여성들의 경우에는 성폭력에 대한 불안감으로 강제 불임 수술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의료기관에도 장애여성의 몸에 맞는 지원 체계나 진료 기구가 없기 때문에 장애여성들에게는 비장애인의 몸에 맞추어진 침대에 올라가는 일부터 몸무게 측정까지 하나하나가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구성하는 일은 한편으로 장애여성들에게 사회의 구성원이자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애초에 무성적 존재 혹은 과잉 성애화된 존재로서의 장애 여성의 경우 재생산 능력을 증명할 것과, 재생산 자체를 억제 혹은 기대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모순된 위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함께 키울 파트너가 없더라도 아이를 낳는 장애여성들도 많으며, 심지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출산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힘들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에 의해 임신이 중지되거나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조미경 씨는 이런 점에서 가족구성이나 재생산 역할에 관련해 어떤 측면에서는 성소수자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지만, 장애인들의 경우 가족을 구성하는 것 자체도 선택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장애여성들에게는 재생산 권리에 대한 선택지가 거의 없으며,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과 그 과정이 가족 안에서 종속된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공현 씨는 “장애인들이 ‘미래가 없는 존재’로 취급된다면, 청소년들은 ‘미래밖에 없는 존재’로 취급된다”면서, 청소년은 생산을 하는 주체도 아니고, 재생산 과정에 결합하더라도 가치를 인정받기보다는 재생산 대상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노동하는 주체로도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보호주의’와 ‘근절주의’의 모순 속에서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에 복합적으로 놓여 있다는 점을 짚었다. 오랜 논쟁 가운데 현재는 근절보다는 권리 보호 쪽으로 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청소년의 노동권에 대한 논의는 요원하다. 기본적으로 청소년은 ‘아직 노동해서는 안 되는 존재’, ‘노동을 하기에는 미성숙하거나 미숙련된 존재’로 전제되면서 청소년들의 노동은 단지 경제수업이나 용돈벌이, 유흥비를 위한 것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현 씨는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한쪽에서는 청소년들이 저임금 임금노동시장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청소년들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노동조건의 질을 저하시킨다고 비판하고, 주류 담론은 청소년들의 노동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의 위계와 노동운동 공간에서의 경험들, 그리고 연대를 위한 고민

노동, 생산/재생산에서의 위계와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패널들뿐만 아니라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운동에서의 경험으로까지 확장되어 이어졌다. 노동에 대한 개념과 노동자 정체성이 ‘비장애인-성인-이성애자-남성-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보니 노동운동 현장에서도 그에 따른 괴리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형태 씨는 노동운동 현장에서 연대할 때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자신을 보는 시선이 전환되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며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는 심정을 밝혔고, 청소년 운동을 하고 있는 쥬리 씨도 청소년들의 문제제기는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다’거나 ‘말꼬리를 잡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공현 씨 역시 최근 민주노총의 공무원 연금 관련 투쟁 포스터 문구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연금을 지키자’는 것이었다며, 이런 부분에서도 앞서 이야기한 문제의식에서처럼 청소년을 ‘미래를 위한 존재’, ‘돌봄의 대상’으로만 둘 뿐 현실의 변화를 위해 함께 싸우는 주체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알바노조에서 활동하는 김희정 씨는 알바노조가 생겼을 때 ‘우리는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노동자’라는 구호를 외쳤다며, 노동에 대한 개념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개념도 전환을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일례로 현장 조직에 있어서도 이전까지는 주로 몇십 년간 공장 등의 현장에 들어가 조직을 했지만, 아르바이트의 경우 맥도날드에서 10년씩 일하면서 조직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노동의 현장에서는 소수자들이 더 많은 차별을 받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참석자 철이 씨는 예전에도 비슷한 연대를 시도했던 적이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노동이라는 용어 자체의 정의가 너무 획일화되어 있고, 그 외의 얘길 했을 때 일종의 투정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부차적인 일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이제는 노동의 정의 자체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고, 이는 노동운동 자체의 부흥을 위해서도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궁시렁 씨는 ‘청년’이라는 호칭이 이전에는 나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개념이었는데, 지금은 그 개념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국가는 ‘가족을 구성하기 전’, ‘정규직이 되기 전’의 개념으로 청년을 호명하려 하는데, 이제는 그 나이대가 20대 뿐만 아니라 3, 40대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궁시렁 씨는 임금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특정한 정체성에 국한되지도 않는다며 이런 변화의 지점과 맥락들을 잘 포착해서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연대의 방식과 운동의 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는 패널들의 마지막 발언에서 곽이경 씨는 참석자들의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민주노총에서도 변화가 계속되려면 담당자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리를 통해 계속해서 만나고 함께 논쟁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언어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노동에서의 소수자들의 위치와 차별의 맥락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한 가치 기준, 모두가 임금노동을 하는 세상이 평등한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부터 전환을 시작해볼 수 있을까?
이안소영 씨는 ‘왜 모두가 임금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냐’는 문제의식을 던졌다. 우리 모두가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형태는 다양하며, 우리는 이를 일이나 활동, 노동 등 여러 차원으로 하고 있는데, 애초에 임금노동만을 노동이라고 하다 보니 자꾸 헷갈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같이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중 하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안소영 씨는 인생의 주기에서 모든 남녀노소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일이나 활동을 해야 하며, 모두들 하고 있는데, 임금노동만을 중심으로 한 가치화의 구조가 다른 다양한 일이나 활동의 가치를 드러나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임금을 받지는 않지만 다른 형태로 하고 있는 다양한 일과 활동, 노동을 임금이 아닌 형태로 가치화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인정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한 가치 체계에 대한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근본적으로 성장과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런 시스템에서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 교환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안소영 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이 모두가 다 같이 돌봄과 살림에서 벗어나서 임금노동을 하는 것이었는지,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평등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다시 질문해 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석자 토론에서도 이에 대한 공감과 제안이 이어졌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백희원 씨는 “우리는 평등해질 권리를 쟁취해야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서 임금노동, 평범한 가정, 출산과 재생산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요구받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정작 현실은 이런 삶 자체가 재생산되는 게 힘든 사회라고 토로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평등을 보편적인 조건에서의 최저선을 설정하는 문제로 보면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가 제안한 최저선의 기준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의 결정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임금과 소득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동과 소득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기본소득이 그런 문제를 급진적으로 던질 수 있는 하나의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궁시렁 씨는 ’생산과 재생산을 엄밀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노동이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정의되어 왔듯이, 재생산 역시 가족을 만드는 행위나 생식,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만을 중심으로 정의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재생산 역시 자본을 중심으로 왜곡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생산은 사실 ‘세계의 지속을 위해서 진행되는 모든 활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예술이나 연구, 정치 등 다양한 활동들을 재생산으로 볼 수 있다고 정의했다. 즉 ‘자기 삶의 활동들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재생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안소영 씨는 본래 ‘돌봄’이란 부모나 가족으로서의 돌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돌봄과 자기 돌봄, 땅과 환경에 대한 돌봄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라며 상품 생산의 임금노동 중심이 아니라 돌봄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 너무 당연히 여겨지는 ‘쓸모 있는 것’과 ‘쓸 데 있는 사람’의 기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미경 씨 역시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 결과를 내야만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현재의 노동과 생산에 대한 기준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효율성과 정상성, 생산력 중심의 임금노동 패러다임을 깨기 위해 어떻게 기준을 새롭게 잡고 다른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할 것인지, 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가치화할 것인지에 대해 상상력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간담회는 거의 세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현재의 노동과 생산/재생산 개념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적인 위치에 있게 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간담회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한 가치 구조, 이와 연결되는 재생산에서의 위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되었다. ‘임금노동을 할 권리’의 평등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활동들이 생산이자, 재생산이 되고 이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사회, 요구되는 정상성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기준과 패러다임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경제가 아니라 삶의 비용 자체를 줄이고 서로의 다양한 활동과 노동을 서로 지원하며, 관계를 통해 돌봄을 만드는 경제를 상상하고 구체화할 필요성에 공감하며 첫 번째 간담회가 마무리되었다.

9월에 이어진 두 번째 간담회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생산하는 사람, 재생산하는 사람, 재생산되는 사람’이라는 주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계속)

*정리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

간담회 진행 일정

네 번째 주제_여성 노동 : 여성-노동자의 생산과 노동, 현장과 쟁점
다섯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재구성과 성/노동
여섯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재구성과 청소년
일곱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재구성과 노동운동
여덟 번째 주제_노동, 생산/재생산의 지구지역적 이동과 국경
아홉 번째 주제_생태/환경 운동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노동, 생산/재생산
열 번째 주제_종합토론 : 노동, 생산/재생산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