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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비행기, 제주강정 구럼비 안녕

[파견미술-현장미술] 2011년 ‘놀자놀자 강정놀자’ 평화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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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희망버스가 4차까지 진행되고 2007년부터 해군기지반대, 평화를 외치는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평화비행기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9월 3일 ‘놀자놀자 강정놀자’ 평화비행기 탑승자를 위한 연대의 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물감을 챙겨 들었다.

파견미술팀은 이틀 먼저 강정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엔 경찰버스가 쭉 들어서 있었고, 마을 곳곳에 경찰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중덕삼거리에서 구럼비 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갔다. 작은 망루가 보인다. 망루를 지나 좁고 긴 발길로 만들어진 흙길로 내려가면 구럼비 바위가 나온다. 평화 활동가들은 이곳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산다. 거기엔 작은 텐트도 있고, 문정현 신부님과 많은 신도가 기도를 드리는 미사 터도 있다.

우린 검은 구럼비 바위 위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구럼비 바위 하나하나 꼼꼼하게 둘러보며 사람의 얼굴 모양에 적합한 바위를 찾아다녔다. 재미있는 모양의 바위가 많았다. 어떤 바위는 사람 얼굴 모양을 그대로 하고 있었고, 어떤 바위는 구부정한 할매의 등짝 같아 보였고, 어떤 바위는 옆모습의 친구 얼굴 같았다. 바위 중간중간 시원한 용천수가 나오기도 한다. 구럼비 바위 탐사를 마치고 전진경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시작했다.

바위에 종이 한지를 올려 바위 모양을 그대로 떠내는 작업이다. 햇살과 바람이 좋아서인지 금 새 한지가 마르고 본이 떠졌다. 잘 떠진 본을 챙겨 들었다. 아직 덜 마른 종이는 구럼비 위에 덮어 놓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때가 구럼비랑 놀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몸으로 지키는 이 구럼비가, 우리가 매일 앉아서 먼 바다를 보며 이대로의 자연을 지켜 달라며 소원했던 바로 그 자리가 없어질 줄은 진심 몰랐다.


숙소로 돌아온 파견미술팀은 옹기종기 모여 낮에 뜬 구럼비 본을 이용해 얼굴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종이 박스를 자르고 틀을 만들고 그 위에 구럼비 본으로 만든 한지를 붙여가며 구럼비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 한쪽에서는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돌고래, 산호 등의 조형물을 종이 박스로 만들고 색을 입히고 있었고, 이윤엽과 몇몇은 강정 초등학교 앞 창고에서 걸개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걸개그림은 인쇄로 대체되었다. 걸개 이미지를 작은 화폭에 그리고 그것을 파일로 전환하고 다시 현수막 천에 인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이런 편한 방식이 아니라 모두 수작업으로 걸개를 그렸다. 광목천을 펼치고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채색을 했다. 구럼비도 그리고 산호랑 돌고래도 그렸다. 걸개그림에 <강정을 지켜내자>는 글자도 썼다. 우리의 의지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작업은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은 다음 날 마저 진행하기로 했다.







온종일 작업으로 새벽 즈음 잠이 들었다. 잠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9월 2일 새벽 5시. 경찰 1000여 명은 강정마을 외곽에서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구럼비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차단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잠든 새벽 중덕삼거리로 들이닥쳤다. 아마도 평화비행기의 연대가 두려움이었나보다. 전날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활동가들은 삼거리 식당 주변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고 구럼비로 내려가는 길옆 설치된 망루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몇몇 활동가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저항했다. 경찰의 폭압에 뜯겨져 나오듯 하나둘 연행되기 시작했고 구럼비로 내려가는 길은 저들의 펜스로 모두 막혀버렸다.

부스스 눈을 뜬 상태로 멀리서 호송차에 끌려가는 활동가들을 지켜봐야 했고, 구럼비로 내려가기 위해 출구를 찾아야 했다. 사방 모든 곳이 경찰과 펜스로 막힌 상황에서 파견미술팀은 경찰에게 신경질적으로 질문했다. “저 구럼비 바위에 우리의 물건이 있다. 가져올 수 있게 들여 보내라” 한참 동안의 승강이 끝에 경찰은 자신의 차로 안내하고 경찰이 따라붙어 물건을 빼 올 수 있게 동행했다. 그때가 구럼비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오랜 시간 강정 주민과 함께한 구럼비 바위, 개구럼비당과 할망물, 물터진개 이 모든 것이 포크레인에 의해 구멍 뚫리고 깨지고 발파되어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엔 군함이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새벽부터 어수선했던 마을에서 우린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적잖은 패배감에 울분을 가슴에 담고 작업을 이어가야 했다.






평화비행기 탑승자들이 처음 모이는 장소인 법환 포구에서 먼저 도착한 파견미술팀과 강정 지킴이들은 평화비행기를 타고 온 탑승객들을 맞이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전날 있었던 경찰의 폭력에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평화를 누리러 왔다”고 외쳤다. 바다를 뒤로하고 하늘 위로 올라선 구럼비 바위, 돌고래, 산호 등이 바다 속을 헤엄쳐 노는 듯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조금은 서글픈 날이었다.

밤새 만든 걸개그림은 행사가 진행되는 강정천 옆 운동장으로 옮겨갔다. 경찰들이 따라다니며 호위를 한다. 운동장 한쪽에 걸개를 설치하고 행사에 참석했다. 노래도 하고 풍등도 날리고 울분에 찬 연설도 했다. 평화는 신나게 노는 것이고 우리의 힘을 즐거움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분노가 아닌 신남으로 즐거움으로 미친 듯이 놀았다. 전날의 분노가 폭발한 듯 한라산의 분화구가 터져 솟아오르듯 그렇게 말이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온 파견미술팀은 이소선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하늘과 땅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함께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꼭 함께 가자고 그렇게 약속했는데…. 이윤엽과 전진경에게 부활도와 영정이미지 작업을 제안했고 우리는 서둘러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장례를 치르고 이소선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다녀왔다. 어머니의 희망버스는 이후 5차 희망버스로 이어졌고 결국 309일 만에 사측과의 합으로 희망버스는 더 이상 부산으로 가지 않았다.

평화비행기는 2차 3차로 이어졌고 2014년부터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전체를 걸어서 행진하는 연대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 매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년이 넘어가는 동안 강정마을은 전쟁기지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끝까지 웃으며 투쟁이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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