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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

[연정의 바보같은사랑](91) 현대중공업·미포조선 비정규직 이성호·전영수 씨 고공농성투쟁① 62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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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소음과 진동 스트레스

“여보세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제가 통화하기로 한 거 깜빡하고 잠이 들었네요.”

6월 11일 밤, 잠에서 막 깨어 전화를 받은 이는 울산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업체 폐업으로 해고를 당한 이성호 씨다. 그는 울산 북구 염포동 현대중공업 출근길에 있는 성내삼거리 인근 고가도로 20미터 높이 교각에서 62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차 소음 때문에 어렵게 잠이 들었을 텐데, 잠을 깨워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내가 미안해하자 성호 씨는 원래 일찍 안자는데 오늘 저녁을 너무 맛있게 먹어 잠이 들었다며 내게 미안해한다. 함께 올라간 전영수 씨도 잠이 들었다고 했다. 며칠 전 전영수 씨는 생일을 고공농성장에서 맞이했다. 밑에서 연대하고 있는 이들이 고구마케익을 올려주어 둘이 생일파티를 했다고 한다.

수화기 너머로 차 지나가는 소리와 진동소리, 경적소리,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4개 차선이 있는 교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교각 1개에 기둥 4개가 있는데, 그 기둥 사이에 한 사람 누우면 딱 맞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함께 올라간 전영수 씨와 그 공간에 각각 들어가 침낭 하나 덮고 잠을 잔다고 했다.

울산 미포조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장면 [출처] 이한별 금속노조 울산지부 조직부장

“차가 아래 위로 다니니까 자동차 소음이 심해요. 차 지나갈 때 진동이랑 오토바이 엔진 소리도 힘들죠. 처음보단 적응이 되긴 했는데, 그래도 한 번씩 깜짝 놀라요.”

힘든 점을 묻자 이성호 씨는 소음 스트레스를 이야기한다. 귀마개를 해도 차가 다닐 때의 진동은 차단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간이 좁아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허리 통증도 있다. 전영수 씨도 허리 통증과 목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비 피할 공간이 있는지 물으니 가운데에 눕지는 못해도 앉아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단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이야기를 하는데, 이씨는 “비가 와야 하는데...” 하며 오히려 농촌 가뭄 걱정을 한다.

“공간이 좁아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아요.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어서 윗몸일으키기나 제자리걸음을 걸어요. 밑에 사람들이 오면 손 흔들고 인사도 해요. 가족들하고 통화도 하고...”

가족들 이야기가 나오자 성호 씨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가족들이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비정규직은 파리 목숨이에요

이성호 씨는 2003년 울산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을 왔다갔다 하면서 배 만드는 일을 해왔다. 중간에 거제도 삼성중공업이나 통영에 있는 성동조선해양에 다니기도 했다. 모두 조선소 비정규직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그는 두 달 전에 미포조선에서 비정규직으로 5년 간 일하다가 업체 폐업으로 직장을 잃었다.

“비정규직은 파리 목숨이에요. 1년 다니면 업체가 폐업을 하고 다른데 가게 되는 거죠. 4월 9일 날 업체 폐업이 됐어요. 업체 노동자가 70~80명 정도 됩니다. 다른 동료들은 다 다른 업체로 고용 승계가 되었는데, 하청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만 고용승계가 안되고 쫓겨났어요. 폐업 공고가 나고 다른 업체 가려고 이력서를 40군데나 넣었습니다. 서류 넣고 면접 보고 거의 합격 분위기로 사무실을 나왔어도 한 시간 지나면 전화가 와요. 갑자기 일이 없다고 안 되겠다고 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하청지회 소속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안 되는 거였다. “조합원을 어떻게 쓰냐?”고 얘기하는 업체도 있었다. 일명 ‘블랙리스트’였다.

40번의 불합격 끝에 그는 고공농성이라는 결단을 내리고, 같은 상황에 있던 전영수 씨와 함께 4월 11일 새벽 이 교각에 올랐다.

“밑에서 할 수 있는 건 한정이 되어있고,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는 오르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아니면 분신을 하거나... 우리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랙리스트 철폐와 하청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대량해고 중단이 그들의 요구사항이라고 했다.

6월 13일, 고공농성 64일차에 전영수(왼쪽)․이성호 씨

여기 올라와서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농성장에 가서 손 한 번 흔들어주지 못하고 전화로 어쭙잖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처지에 이런 저런 질문을 계속 하기가 미안하다. 필자가 이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건 우연히 이성호 씨가 SNS에 올린 아래의 글을 보고나서다.

고공농성 55일 만에 페트병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현수막 뒤에서 웅크리고 한 두 번 째 샤워...! 십 수 년 동안 안전화로 단련된 발바닥을 만지는 순간.. 헉!! 1mm 정도 두께의 굳은살이 뚝! 부드러운 피부로 다시 돌아왔다~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페트병에 구멍을 뚫어 샤워를 하며 버티는 그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50여일 고공에서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서 십여 년 조선소 노동의 증표였던 굳은살이 사라졌다는 내용에서 상실감과 서러움이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차별과 억압을 숙명으로 생각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지금의 과정이 굳은살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살로 바뀌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공농성장에 가지 못해도 내가 있는 곳에서 작은 거라도 해야겠다는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이성호 씨에게 연락을 했는데, 따뜻하게 맞아준다. 고공농성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필자의 자기 위안인지도 모를 연락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특식을 올려주더라고요. 초밥을 식당에서 사서 올려줬어요.”

밑에서 동지들이랑 연대 온 분들이 음식을 잘 챙겨주고 있다며 성호 씨가 고마움을 표현한다. 밑에 있는 동지들이 집회며 기자회견도 많이 하고, 방송에도 와 많이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시민들이 응원해주고, 고공농성장에 찾아와 밑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도 관심 가져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아린 이유는 무엇일까?

전화 인터뷰를 마치려고 하는데, 성호 씨가 이야기한다.

“50년 가까이 살면서 노동조합 가입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여기 올라와서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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