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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에서 두시 사이

[연정의 바보같은사랑](88) 갑을오토텍 투쟁 연대하기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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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두세 시간 자며 이어가는 투쟁

“단결투쟁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승리를 향한 힘찬 첫걸음을 내닫도록 하겠습니다. 투쟁 투쟁 단결투쟁!”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2016년 8월 6일, 새벽 6시.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갑을오토텍 직장폐쇄 12일차 기상투쟁이 시작된다. 4백여 명의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과 연대를 온 노동자 시민들의 목소리가 공장 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회사의 노사합의 파기와 경비업무 일방적 외주화, 교섭해태 등에 대해 쟁의행위 중이었던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이하 ‘지회’)는 7월 말에 회사가 직장폐쇄 후 용역, 경찰병력을 투입하자 전 조합원이 공장 안에서 공장을 지키는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밤새 돌아가면서 공장 정문을 지키느라 하루에 2~3시간 정도 밖에 잠을 못자고 있는 조합원들의 눈에 핏발이 서있다.

아침 기상 집회 중인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

공장 안 천막에서 잠을 청하는 조합원들

입추가 내일이건만 연일 최고기온 35~36도의 뜨거운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밤에는 열대야와 모기 등 각종 벌레가 극성이라 공장 안 천막에서 잠을 자고 있는 조합원들의 수면 질이 높을 리가 없다.

집회 사회자가 전날 ‘Q-P 전략 시나리오’(파업유도 후 직장폐쇄와 공권력 투입 등을 통한 노동조합 파괴 전략 내용이 담긴 사측과 노무법인 ‘예지’가 작성한 문건) 관련 기자회견 이후 노동부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조합원들의 경직되어 있던 얼굴이 풀리기 시작한다.

기상투쟁이 끝나고 6시 30분부터 아침식사가 시작된다. 정문 사수 중인 조합원들이 먼저 먹고 나서 연대를 온 이들이 식사를 한다. 배식 담당 조합원들의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 덕분에 식사 대기 줄은 길지 않다. 아침식사 메뉴는 북어국이다. 북어국 위에 깍두기를 얹어주는데, 김치를 따로 먹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작은 접시에 담아주는 배려도 이루어진다. 지회 식사팀은 연대 온 이들까지 포함하여 하루에 평균 1500명 분 이상의 식사를 준비하게 되는데, 쌀만 하루에 20kg 짜리 10푸대가 들어간다. 매 끼니마다 500인분 이상의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식사팀 조합원들 역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아침 식사로 나온 북어국


모든 것이 현장을 분열시키기 위한 노조파괴 시나리오

아침 식사를 마친 조합원들이 다시 정문 앞에 착석하자 지회 간부가 노조파괴 시나리오 내용 설명을 다시 진행한다.

“관리자들은 지난 5년 동안 이 모든 것을 숨기고 조합원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나눌 것처럼 힘없는 관리자로 불안하다며 정보를 달라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장을 분열시키기 위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있는 내용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관리자들은 이전부터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다 알고 행동해왔던 겁니다.”

갑을오토텍 관리자들은 오늘 아침에도 모자와 티셔츠를 맞춰 입고 회사 정상화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왔다고 하면서 들어오지 못하고 정문 옆 구석에 교대로 앉아있다. 매일 회사 정문 앞에서는 중앙에 경찰과 유사한 복장을 착용한 용역, 양 옆에는 경찰, 구석에는 모자와 티셔츠를 맞춰 입은 관리자들이 즐비해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노조파괴 시나리오 발견으로 2009년 갑을오토텍이 인수하자마자 폐업까지 포함된 노조파괴를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합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또한, 한 공장에서 이삼십 년 한솥밥 먹어온 관리자들이 사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미리 알고 있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움직여왔다는 사실도 큰 충격이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이 문건을 입수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합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7월에는 재판부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된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이사에게 검사 구형 8개월 보다 높은 징역 10월을 선고하여 법정구속을 시키는 일도 있었다. 이제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과 함께 투쟁하는 동료, 가족과 연대동지들 뿐이다. 그래서일까. 조합원들의 연대동지들을 향한 따뜻한 배려의 모습이 필자의 마음을 여러 번 울렸다.

정문 사수 중인 조합원들

가족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등 오전 일정이 끝나자 점심 배식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연대동지들이 먼저 식사를 한다. 정오부터 두 시간 동안 연대 온 동지들이 정문 사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자정에서 새벽 두시까지 연대 동지들이 사수를 하고, 조합원들이 휴식을 취했다.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는 졸음과 열대야 때문에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현재는 하루 두 차례 두 시간 씩 연대 온 사람들의 사수가 진행되고 있는데, 사람이 많아지면 시간을 늘려 조합원들을 좀 더 쉬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연대동지들의 식사가 끝나자 인근에 사업장이 있는 금속노조 세정지회 대의원이 사왔다는 아이스크림이 역시 연대동지들에게 먼저 돌아간다.

정오가 되고 연대 동지들의 정문 사수가 시작된다. 조합원들은 연대온 이들이 옆에 서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십쇼.” 인사도 잊지 않는다. 오후 2시까지 조합원들은 잠시나마 그늘에서 쉬거나 밤에 못잔 잠을 보충할 수 있게 될 거다. 일부 조합원들은 연대동지들에게 미안해서인지 떠나지 못하고 정문 옆 그늘에 앉아 집회를 함께 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 제가 더 힘을 받고 가요

날이 밝는 대로 공장을 나갈 계획을 세웠던 필자는 여섯 시간이 지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땡볕과 열대야 속에 고생하는 조합원들을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날 와서 밥 세끼를 먹으면서 만들어진 관계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앉아서 자리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왔다가 비슷한 마음으로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공장을 나갔다가 자꾸 마음에 밟혀 짐을 챙겨 다시 온 이들도 있다. 민주노총 이경자 부위원장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광주민중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한 동호를 지켜주지 못해 마음아파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휴가기간 용역, 공권력 투입의 위협 속에 있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한 명의 몫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2박 3일 짐을 챙겨 왔는데, 오늘로 7일 째를 맞고 있단다.

정문 사수 중인 연대대오

식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성준 씨 역시 비슷한 경우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박성준 씨는 경남 창원에서 왔다. 일주일 전에 창원에서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 연대하고 공부했던 이들과 왔다가 ‘엮였다’고 했다. 계속 있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남고, 식사 준비하는 조합원들이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고생을 많이 하는 걸 보면서 도움이 되고자 식사팀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갑을오토텍 투쟁이 인상적이에요. 노동자가 주체가 된 하나의 공동체 사회인 것 같아요. 조합원들이 아버지 어머니 뻘인데, 동지이면서 인간적인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투쟁의 교과서 같은 곳이에요. 조합원들이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잘 해주세요. 갑을오토텍의 비정규직 없는 공장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 사용자가 착해서 가능한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용자는 이윤을 위해 비정규직을 만들고 싶어 할 테니까요. 결국 비정규직 없는 공장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운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더 힘을 받고 가요.”

성준 씨는 공장에서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업무와 인격적으로 몹시 열악한 조건에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회가 청년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비정규직이나 열정 페이를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했다. 투쟁 현장에서 청년들의 노동이나 실업 문제도 고민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야기한다. 잠시 짬을 내서 집회 참여를 하고 있는 성준 씨에게 한 지회 조합원이 다가오더니 슬쩍 양말을 건네고 간다.

조합원들과 함께 식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성준 씨(가운데)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기꺼이 해야죠

집회 사회를 맡은 금속노조 충남지부 엄태광 수석부지부장이 더운 날씨에 집회 참여하는 이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애를 쓴다. 그닥 재미있지 않은 유머를 하며 스스로 민망해하기도 한다. 날씨가 더우니 발언을 짧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민주일반연맹 전순영 위원장이 힘주러 왔다가 힘 받고 간다며 다음번에 더 많은 동지들을 조직해서 함께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해당 연맹 투쟁사업장인 서산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과 부산 방문간호사 투쟁을 소개하고, 투쟁 기금도 전달한다.

“이제 곧 투쟁 시작한지 육백일이 되는데, 투쟁이 장기화 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여기에 와서 갑을오토텍 동지들과 식사하면서 그 간의 과정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우리도 연대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부산에서 온 방문간호사 해고노동자 역시 갑을오토텍에 연대하러 와서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천에서 온 대학생 오선희 씨는 여기에서 못 잊을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진실을 배웠어요.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라는 게 너무 놀랍고 공장의 주인이 노동자라는 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지난 해 408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충남 아산에 있는 공장으로 복직한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였던 차광호 씨는 함께 복직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휴가 기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휴가가 끝나고 난 뒤에는 거의 매일 퇴근한 후 이곳에 와서 저녁 문화제부터 새벽 정문 사수를 마치고 다시 회사에 출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우리 일이니까요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기꺼이 함께 해야죠. 갑을오토텍 투쟁은 현재 자본과 노동자들 간의 분수령이 될 겁니다. 여기서 노동자가 꺾이면 힘들어질 거라고 봐요. 노동자가 이기면 열악한 노동자 현실 변화의 시작이 되거나 최소한 지금보다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의미 있는 투쟁입니다.”

차 씨는 많은 연대동지들이 함께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힘을 주고 있지만, 최근 연대동지들이 문화제 중에 단체로 가거나 자주 드나드는 등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며 연대동지들이 좀 더 긴장감을 갖고 정문 사수 일정까지 마치고 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평화로운 노동자 권리 주장에 대한 과잉 대응의 결과

자유발언과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면서 집회를 이어가다보니 어느덧 한시가 된다. 햇볕이 몹시 뜨거워지면서 점점 힘들어진다. 폭염 속에 시멘트 위에 앉아있을걸 예상하지 못하고 준비 물품을 챙겨오지 못한 필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그 위에 모자를 써서 햇볕을 가렸다. 하지만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고 팔은 따갑다. 아스팔트 위에서 계란 후라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뜨거운 날씨다. 조합원들은 이 힘겨운 시간을 하루 종일 견디고 있다. 폭염으로 인해 정문 앞에 있던 의경 세 명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는 일관되게 매우 합법적으로 질서 있고 평화롭게 우리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이야기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경찰은 과잉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수십 개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필요 이상으로 경찰을 운용하면서 의경들을 힘들게 하고, 노동자들을 겁박하고 한 명 두 명 물품 지원하는 것까지 막고 있습니다. 저는 그 결과가 여기 있는 젊은 의경들이 35도 36도 육박하는 날씨에 한명 두 명 쓰러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방효훈 대외협력국장은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한 비판과 함께 폭력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불필요한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노동자들에 대해 과잉 대응하는 태도를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갑을오토텍 정문 앞. 좌측이 경찰, 우측이 용역

발언과 노동가요 함께 부르기로 집회는 계속 진행진다. 시간이 몹시 더디게 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오후 1시 30분. 오존 때문인지 시야가 뿌옇다. 갑자기 민중가수 류금신 씨가 나타나서 노동가요 메들리로 시작되는 문화공연을 시작하자 집회 장소에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생기가 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연대온 이들의 노래 부르는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휴식 중인 조합원들의 박수 소리도 커진다. 공장 밖에 서있던 용역들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고, 공장 안에서는 조합원과 연대동지들이 서로 배려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같이 싸워주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문화 공연으로 집회 분위기가 급상승하자 사회자가 연대 동지들의 집회를 한 시간 더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순간 눈 앞이 아찔해진다. 다행히 농담이었다. 민주노총 최종진 직무대행의 마무리 발언으로 집회는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연대투쟁가> 힘차게 부르면서 연대 조직은 물러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투쟁투쟁~!!”

그래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
보아라 연대의 깃발 들어라 단결의 함성


내일 모레면 이곳을 나간다는 박성준 씨는 떠나면 자꾸 생각이 날 것 같다며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러 오고 싶다고 했다.

갑을오토텍 앞. 무더위 속에 용역들은 철수하고 없다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연대동지들이 같이 싸워주고 있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연대동지들이 같이 사수를 해주시는 덕분에 우리가 잠시나마 쉴 수 있고요. 사수를 안 해주신다 해도 같이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죠. 지금 우리 문제가 노동계에서 뜨거운 감자잖아요. 이렇게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여론 면에서도 힘이 됩니다.”

집회 장소 옆 그늘에서 휴식을 취면서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치며 함께 했던 갑을오토텍지회 한 조합원은 연대동지들을 보면서 조합원들을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아 자신들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십쇼.”


오후 두시. 연대동지들이 정문 사수를 마치고 일어나자 조합원들이 다시 그 자리를 메운다. 한여름 낮 더위도,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자신들의 공장을 지키겠다는 노동자들의 의지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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